“디지털 경제 진흥? 규제 새 법 만들지 말고 있는 법 돌아보자”
디지털경제 3.0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있어 보이지만, 사실 별것은 아닙니다. 챗GPT가 나온 이후로, 세상을 바꾸는 기술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죠. 지난 15년간 기술 혁신을 이끌어 온 모바일과 스마트폰이 앞으로는 AI와 빅데이터에 바통을 넘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AI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산업을 진흥할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25일 국회에서는 ‘디지털경제 3.0 포럼’이라는 것이 발족했습니다. 김종민(새로운미래)·이성권(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를 맡았고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도 속한 초당적 포럼이죠. 미국과 중국이 디지털 패권 전쟁 중인 상황에서, 우리도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포럼의 불쏘시개가 됐습니다.
창립식에서 의원들이 어떤 말을 했느냐보다는 초대되어 온 발제자들의 발표 내용을 전합니다. 의원들이야 “AI가 미래의 먹거리, 잘 진흥해야 한다”는 거룩한 말을 하지만, 발제자들은 “우리 지금 다 죽게 생겼다, 제발 우리 말 좀 들어봐라”는 절실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포럼의 취지가 빛을 발하려면, 이 발제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지금은 규제 아닌 진흥할 때”
“오픈AI는 7조달러의 투자 유치를 계획 중이다. 이에 반해 네이버의 투자 유치 계획은 7억달러다. 빅테크와 우리나라 기업의 AI 기술 개발 투자금에 어머어마한 차이가 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AI가 산업 전체의 경쟁 구도를 바꿀 핵심 동력이라면, 일단 우리나라 기업들은 시작부터 밑천이 많이 달립니다. 일단 투자 규모가 다른 데다, 인재도 미국 중심의 빅테크가 빨아들이고 있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야 할 판에, 진흥이 아닌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을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이 했습니다.
“국내 기업이 해외 빅테크 기업의 투자 규모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규제 상황마저 불확실하기 때문에 국내외 투자사들이 국내 기업 투자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죠.
일단, 먼저 말해둘 것은 인터넷기업협회는 인터넷기업들의 이익단체입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쿠팡 같은 곳이 가장 큰 회원사죠. 그러나 이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곳은, 그나마 우리가 글로벌 빅테크가 점령하고 있는 AI 시장에서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IT 기업입니다. 7조달러와 7억달러, 단순 비교해서도 1만배 차이가 날 정도로 덩치가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스로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갖고 AI 기술 역량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후보죠.
박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안이 새로 생기는 걸 우려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와 국회의 플랫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죠. 플랫폼 법 논의에서 정부는 “하나의 플랫폼이 시장을 다 잡아먹는 포식자로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그는 “플랫폼이란 제조업자, 소상공인, 소비자 등 모든 경제주체가 관여된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몇 개의 기업을 찍어서 규제할 수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게다가, 지금 네이버와 쿠팡이 커머스 시장을 다 잡아먹고 있다고 말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습 아래서는 어느 누구도 미래를 보장하긴 어렵다고 현실을 보고 있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은 당연히 막아야죠. 다만, 박 회장은 “국내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규율할 수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법을 잘 활용하고 부족하면 하위법령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규제를 강화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무조건 유럽의 DMA 법을 따라가려 하는데, 이는 자국 플랫폼이 없는 유럽에서 미국의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도 언급했습니다. 저는 박 회장의 “드라이버로 나사 조이면 되는데 굳이 전동 드릴을 구매해야 하나?”라는 발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 “규제개혁 위한 예산 지원해달라”
“국가 R&D 예산의 1%, 아니, 0.3%만이라도 규제개혁 예산으로 써달라. 규제개혁과 관련한 예산이 만들어지면 관련 연구가 돌아가지 않겠나. 그렇게 해야 혁신산업의 아군이 생긴다. 연구를 통해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이들이 생기고,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산업계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신뢰가 생길 거다.”
두번째 발제자,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의 주장입니다. 스타트업이나 혁신 기술 연구개발을 진흥하는 예산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규제개혁을 위한 예산은 좀 생소한 소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언 부의장의 말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산업은 두 가지 축에 의해 발전하기 때문이죠. 하나는 산업을 혁신적으로 키울 기술의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술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법 제도입니다.
지금의 정부 정책은 기술개발을 진흥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애써 키워내고 있는 이 기술이 현실에 접목될 때는 규제로 벽에 가로막히는 현상이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볼까요? 동영상 서비스는 ‘인터넷 실명제’에, 게임 산업은 ‘게임 셧다운제’에, 모빌리티 산업은 ‘타다 금지법’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그러다보면 지금 현재의 기득권 집단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자연스럽게 이슈가 발생하는데요, 이때 규제 당국은 변화에 인색하게 대응합니다. 당장의 이슈만 해결하기 위해 규제로 새 산업에 즉각 대응합니다. 기술발전과 규제개혁이 이인삼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규제가 기술발전의 단속반이 되어 버린 거죠. 이런 상황을 좀 줄이려면 규제개혁이 왜 필요한지, 그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구 부의장이 짚은 겁니다.
구 부의장은 “우리나라 정부 예산 중 26조원이 R&D에 할당되어 있지만, 규제 개혁을 하는 예산은 없다, 그냥 기술 개발하는 R&D만 있는 거다”라면서 “산업이 디지털 변환을 할 때 규제 변화를 준비하는 R&D가 없으니 정부가 규제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될지에 대한 나침반이 없는 상황이라 현안 대응만 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그 결과는 결국 “온갖 규제 샌드박스에서 주무부처의 수용 불가 의견으로 돌아오는 것”이고요.
규제개혁이 있어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합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를 볼까요? 미국과 중국에서는 택시 산업의 자율주행 전환을 시도하고 있죠. 일부 지역에서는 운전기사 없는 택시가 돌아다니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역시 자율주행 기술을 여러 기업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속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자율주행을 모빌리티의 미래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되나요? 미래에는 택시 운전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겠죠. 그러면 정부는 이 문제를 미리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규제개혁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만약, 그런 문제에 대해 미리 연구하지 않는다면, 자율주행차 기술이 올라와 무인 택시가 가능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수 있을까요? 기사님들은 반발하고, 정부는 자율주행차를 규제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것이 구 부의장이 말한 규제개혁 연구의 필요성입니다.
모빌리티는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구 부의장은 디지털 경제 3.0의 핵심 분야로 AI 산업/ 블록체인 산업/ 빅데이터 산업/ 메타버스 산업을 꼽았습니다. 이 기술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미래를 열 핵심으로 보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대표적 기업이 안 생기고 있죠. 기술을 진흥하고 향후 일어날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는 것까지 가기는 커녕, 그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 이어서 나옵니다.
구 부의장은 “세계적으로 글로벌 기업이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을 기반으로 기반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우리는 ‘블록체인은 진흥, 암호화폐는 규제’ 정책을 갖고 있어 시작도 못했고, 비교할만한 기업도 없다”고 일갈합니다. “빅데이터는 AI의 기초 산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세계적인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기업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도 말하고요. 왜? “마찬가지로 데이터 관련 규제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AI 서비스 ‘소라’의 예를 듭니다. 구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를 긁어 AI 학습에 쓰는 데 문제가 없는 데다, 저작권 침해 소송은 민사에서 담당한다”면서 “만약 네이버가 인터넷 데이터를 가져다가 소라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당장 분당경찰서 앞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AI 진흥을 위해서는\ 비식별정보와 저작권, 그리고 공공데이터를 AI 학습에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이야깁니다.
“단지 진흥법을 두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규제로 인한 구체적인 문제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들여다 봐주길 바란다”
새 국회가 출범했고, 마침 의원들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기술과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들어줬으면 좋겠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