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가요] PC 부품의 성지에서 AI 확성기로, 컴퓨텍스

“AI의 구심점”

지난 7일 폐막한 대만 컴퓨텍스에 붙은 수식어입니다. 원래는 매년 PC 부품을 주로 전시해오던, 아시아 최대 박람회 컴퓨텍스에 과연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컴퓨텍스의 시초

컴퓨텍스는 1981년생이지만, 실상은 1976년부터 중국국민당이 기획한 국가 규모 대형 IT 프로젝트입니다. “반도체와 컴퓨터 등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구상에 의해 만들어졌죠. 처음에는 타이베이 쑹산 공항의 터미널 내 컨벤션에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로 규모를 옮겨 진행하게 됐고, 이후에는 공간이 더 큰 난강전람관을 전시장으로 낙점해 규모를 키워가며 성장해왔습니다.

대만을 상징하는 커다란 IT 행사지만, 사실은 미국의 CES(소비자가전박람회)나 독일의 IFA(국제가전박람회)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덜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CES나 IFA와는 달리 컴퓨텍스에서는 컴퓨터의 부품을 주로 다뤘거든요. 그러니 완제품 대비 일반 대중이 컴퓨텍스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다소 덜 했죠. 특히 조립PC 대신 완제품 컴퓨터나 노트북이 많이 판매되면서부터는 컴퓨텍스의 중요도가 더 줄어드는 듯한 느낌도 줬습니다.

그렇지만 ‘부품’이라는 핵심 카테고리를 가졌다는 바로 그 부분이 컴퓨텍스 만의 고유한 개성이자 확실한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컴퓨팅 산업의 미래를 보고자 하는 기업들이 계속해 컴퓨텍스에 모두 좌판을 깔았고요, 특히 대만 내에는 기가바이트와 에이수스, 에이서, HTC와 같은 유력 PC 회사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죠.

무엇보다, 컴퓨팅과 당시 ‘산업의 쌀’로 불리던 반도체를 국가의 경쟁력으로 키우려는 정부 의지도 강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는 대만 반도체 산업 진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87년에 공기업으로 설립됐습니다. 또, 대만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도 있죠. 대만 회사는 아니지만,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회사 엔비디아의 창업자인 젠슨 황도 대만계 미국인입니다. 젠슨 황은 올해 컴퓨텍스에 참여, 전시에 큰 힘을 실어주기도 했습니다.

변화의 시도, 이노벡스

반도체와 PC 부품을 주로 전시해오던 컴퓨텍스가 일종의 변화를 시도한 건 지난 2016년이었습니다. 전시 내부 부대행사로 글로벌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산업 파트너를 연결하는 행사 ‘이노벡스’를 신설한 것이죠. 글로벌 전시에서 대체로 스타트업 전시관을 운영하는데 이노벡스 역시 그런 역할을 합니다.

올해 이노벡스에는 무려 400여개 신생기업이 참여했는데요. 대만은 물론이고 벨기에, 브라질, 프랑스, 호주, 일본,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세계 30여개국의 스타트업이 ▲그린테크 ▲AI ▲스마트 모빌리티 ▲반도체 라는 큰 주제에 중점을 맞춰서 부스를 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AI가 주인공이 된 올해 컴퓨텍스

“오늘날 우리는 컴퓨팅의 중대한 변화의 정점에 서 있다. AI와 가속화된 컴퓨팅의 교차점이 미래를 재정의할 것”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올해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청중들을 상대로 한 발언입니다. 올해 컴퓨텍스는 그야말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AI를 키워드로 화려하게 존재감을 다시금 드러냈죠. 젠슨 황 CEO의 이날 기조연설 현장에는 6500여 명의 업계 종사자, 언론, 기업가, 게이머, 크리에이터, AI 애호가들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진=엔비디아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컴퓨텍스2024 기조연설에 모인 청중들.

그만큼 컴퓨텍스에 쏠린 눈이 많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 자리에서 젠슨 황은 “컴퓨팅의 미래는 가속화되고 있다. AI와 가속 컴퓨팅 분야의 혁신을 통해 우리는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고 차세대 기술 발전의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다양한 엔비디아(NVIDIA) RTX 기반 기능을 갖춘 AI PC와 소비자 디바이스부터 엔비디아의 풀스택 컴퓨팅 플랫폼으로 AI 팩토리를 구축, 배포하는 기업까지, 엔비디아 가속 플랫폼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기도 했고요.

젠슨 황의 발언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올해 컴퓨텍스의 주제는 ‘AI를 연결하다(Connecting AI)’로 열렸습니다. 세부 주제로는 ▲AI컴퓨팅 ▲고급 연결성 ▲혁신 ▲지속가능성 ▲몰입형 현실 ▲미래 모빌리티 등이 있었는데요.

이에 호응하듯 엔비디아 뿐만 아니라 주요한 반도체 칩 회사들이 AI와 관련한 비전과 신제품을 컴퓨텍스에서 공개했습니다. 현재 테크 시장을 이끌어가는 비저너리들은 모두 나왔다고 볼 만 합니다.

AMD의 리사 수CEO는 “AI 도입의 가속화로 인해 AMD의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번 컴퓨텍스에서 차세대 라이젠 데스크탑 및 노트북 프로세서 기반 제품을 출시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HP, 레노버(Lenovo), 에이수스(Asus) 등 전략적 파트너들과 함께 하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말했고요.

퀄컴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PC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을 하면서 “퀄컴과 파트너들은 개인 컴퓨팅 경험을 재정의하고 개발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대를 위한 앱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스냅드래곤 X 엘리트를 탑재한 코파일럿 플러스 PC를 선보이면서는 “시스템 전반에 AI가 통합되어 가장 빠르고 가장 지능적인 윈도우PC이자, 수일간 지속되는 배터리 수명을 구현한다”면서 “ 파트너들과 함께 스냅드래곤을 탑재한 윈도우 코파일럿+ PC를 기술 혁신의 최전선으로 PC 산업의 변화를 기념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발언하기도 했죠.

아, 인텔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AI 기회를 가속화할 개방형 표준과 인텔의 강력한 생태계를 강조하면서 “AI는 업계 역사상 가장 중대한 혁신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실리콘의 마법은 다시 한번 기하급수적인 컴퓨팅 성능의 진전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인간의 잠재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향후 수년간 전세계 경제를 견인할 것이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텔의 역할도 설명했는데요. 겔싱어 CEO는 “인텔은 반도체 제조부터 PC, 네트워크, 엣지 및 데이터센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AI 시장 기회의 전 영역에 걸쳐 혁신을 창출하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기업 중 하나”라고 자리매김한 후, “인텔의 최신 제온, 가우디 및 코어 울트라 플랫폼은 인텔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역량과 결합해 미래의 엄청난 기회를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컴퓨터 부품쇼에서, 컴퓨팅의 내일, 인류의 미래를 말하는 쇼로. 드라마틱한 변화입니다.

여기에도 대만 정부의 역할은 컸습니다. 컴퓨텍스를 AI 중심행사로 전환하자는 노력을 했고, 차이잉원 전 대만 총통이 현장에 나와 축사를 하는 등의 관심을 보였죠. 대만의 정치적, 지정학적 위치 상 국제적으로 중요한 전시를 갖고 있는 것 역시 유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노력이 더욱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AI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프라는 데이터센터이고, 이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서버의 핵심 부품은 칩이죠. 이 칩을 만드는 주요 회사들이 대만을 근거로 하고 있거나, 대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흥행 파워를 도모할 핵심 기업을 대만이 확보하고 있다는 뜻인데요. 이들이 올해 일제히 컴퓨텍스에 참여, 기조연설을 하면서 전시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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