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안과의사 출신이 주목한 새로운 암 치료 기술
암은 없어져야 할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자라난 덩어리다. 암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암 세포를 도려내는 것과 약물 주입을 통해 퍼져있는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 주로 말기 암에서 쓰이는 치료 방식이다. 이때 정확하게 암 세포만 없애야 한다. 정상적인 세포에 약물이 주입될 경우 부작용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암 세포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위치를 알아야 목표로 하는 암 세포를 약물이 명중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를 위한 연구개발이 국내외에서 한창이다. 지난 2019년 상용화된 ‘공간전사체’는 암 세포의 위치를 알아내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이때 활용되는 것이 ‘리보핵산(RNA, 전사체)’이다. RNA는 핵산의 일종으로, 유전자 본체인 디옥시리보 핵산(DNA)이 가진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공간전사체는 RNA가 분포된 공간 개념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데이터는 RNA의 종류에 따라서도(예를 들어 A-RNA, B-RNA) 각각 얻을 수도 있다. RNA의 위치와 조합을 통해 암을 비롯한 다양한 세포의 유무와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역세포가 A-RNA 10개, B-RNA 10개로 구성됐고, 암 세포가 A-RNA 10개, B-RNA 1개로 구성됐다고 가정하면, RNA 위치를 통해 암 세포를 찾아낼 수 있다.
포트레이는 이 공간전사체 기술을 활용, 암과 싸우는 스타트업이다. 공간전사체 기술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주로 폐암 같은 덩어리 암(고형암)을 치료하는 신약을 위주로 한다. 현재 신약개발을 위해 국내외 병원들과 협업하고 있다. 빠르면, 올해나 내년 중으로 제약사에 기술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특한 점은 포트래이 이대승 대표의 이력이다. 이 대표는 안과의사 출신으로, IT네트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력이 있다. 포트래이를 창업하게 된 것은 의사 출신이자 공동창업자인 최홍윤 최고기술책임자(CTO), 임형준 최고전략책임자(CSO), 나권중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부터 공간전사체 기술을 소개받으면서다. 이들은 공간전사체가 향후 기술력과 시장성이 커질 것이란 공감 하에 포트래이를 만들었다. 이대승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포트래이는 어떤 곳?
지난 2021년 7월 출범한 포트래이는 인공지능(AI) 공간전사체 기술 기반의 신약 개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투자는 누적으로 시리즈A 단계 60억원을 유치했다.
포트래이를 소개해달라
포트래이는 RNA가 분포된 공간 개념의 데이터를 얻고 있다. RNA의 위치와 조합을 통해 암 세포 유무와 위치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데이터는 RNA의 종류에 따라서도(예를 들어 A-RNA, B-RNA) 각각 얻을 수도 있다. 이를 공간전사체라고 부른다.
위 사진을 보면, 세포 데이터를 한 장의 사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를 위해) 2만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몇 만개나 되기 때문이다. 2만장의 사진 정보를 합성한 세포 사진 한장이 최소 20G기가바이트(GB), 100GB에서 많게는 7테라바이트(TB)까지의 용량이 된다. 포트래이는 암 환자 위주의 데이터를 모아 쌓아놓고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까지 포트래이가 쌓은 데이터는 1000TB 정도로, 약 1000명의 환자에 대한 데이터다.
암 세포를 잘라 분석하는 것인가?
암 환자의 조직을 자르면, 이를 AI나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이때 세포 조직은 포토샵의 층위(레이어)처럼 존재하는데, 서로 다른 층의 정보를 겹쳐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때 IT기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다양한 카메라로 과자를 촬영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반 카메라, 적외선 카메라로 각각 촬영할 경우 배율, 해상도 등이 다르다. 이렇게 찍은 각각의 사진을 모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다만, 두 사진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이 불가능하니, AI를 통해 해석 알고리즘을 개발해 분석을 한다.
현재 개발한 기술이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지?
비용 문제로 그렇지 않다. 환자가 암 진단을 받기 위해 1000만원을 쓰기 어렵다. 공간전사체는 진단, 치료에 직접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아직까지 초창기 기술이다. 다만, 신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바이오마커(단백질, RNA 등을 통해 몸 내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찾는데 활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포트래이는 신약개발 시장을 보고 있다.
공간전사체를 신약개발에 활용한다?
약물 치료의 방향성이 달라지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해열제를 먹으면 속이 쓰리는 등 수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몸의 인체는 한 부분을 자극해도 네트워크처럼 복잡하게 연결돼있어 일종의 나비효과가 생긴다. 이런 나비효과를 일일이 찾아가면서 약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최근에는 약물을 원하는 곳에만(예를 들어 암세포)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 생겼다.
공간전사체는 약물을 배달하는 위치와 암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약물 배달 목적지가 암 덩어리 안에 있는지 혹은 어느 한 구석에 몰려있는지, 골고루 퍼져 있는지 등은 단일세포로 알 수 없다. 퍼져있는 암을 전체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약물을 정확하게 배달하려는 위치 관계가 중요해 공간전사체를 활용한다. 핵심은 약물이 정상적인 세포에 적게 분포하고 암에 많이 분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쌓을수록 (정확도가) 좋다.
공간전사체라는 기술의 상용화가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지?
공간전사체는 지난 2019년 첫 상용화가 됐는데, 몇 년간 이 기술에 대한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시장에서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넘어오는 변화의 초입 단계로 보고 있다.
암에도 초기, 중기, 말기 등 단계가 있는데, 포트래이가 주목하고 있는 암의 단계는 어디쯤인지?
약물을 치료하는 단계로, 보통 후기에 해당된다. 암 1기나 2기의 경우 수술을 한다. 전이가 없으면 암을 도려내는 것이 가장 명쾌한 결론이다. 그러나 (암이 퍼져) 도려낼 수 없을 때는 약물을 써야 한다.
암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지?
암에는 크게 고형암(덩어리를 만드는 암)과 혈액암이 있다. 혈액암은 혈액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공간전사체라는 데이터가 필요 없다. 핏속에 암이 떠다니는 것이니, (치료 약물을) 핏속에 주입하면 도달한다. 그러나 고형암은 성을 공격하는 전투인 공성전이라고 보면 된다. 암이 주변에 성벽 같은 것을 쌓아두거나, 암이 아닌 척 가면을 쓰기도 한다. 따라서 (암이 위치한) 공간이 중요해졌다.
공간전사체를 활용한 약물 치료는 언제쯤 상용화될 것으로 보는지?
신약개발의 경우 상용화에 대한 정의가 단계마다 다르다. (약물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시작해 약물 제작까지) 단계별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서 크진 않지만 연간 억 단위의 매출을 내고 있다. 약물이 시장에 출시되는 의미의 상용화라면, 보통 신약 개발은 적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포트래이는 신약 개발에 대한 기술 이전을 올해나 내년 안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약개발, 구체적인 계획이 무엇인지?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을 하는 것이 포트래이의 주요 단계다. 국내에선 이미 바이오틱이나 제약사들과 협업해 신약의 타깃을 검증하거나 물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11개의 신규 타깃을 찾아서 이 타깃(암)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를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또 약물을 만들어 (제약사들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반대로, (제약사에서) 어떤 조건을 가진 타겟의 (신약을) 같이 만들고 싶다고 제안을 주기도 한다.
기술의 핵심, 데이터
공간전사체, 주로 어떤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나?
고형암 중에서도 폐암 위주의 데이터를 모았고, 그밖에 난치성 암 데이터를 쌓고 있다.
데이터는 어디서, 어떻게 가져오나?
데이터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고 병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결과물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제휴를 맺었다. 국내 5곳의 병원과 함께 협력하고 있고 스위스, 유럽, 영국, 미국 등 외국 의료 연구진과 협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포트래이가 쌓은 데이터 양이 1000TB라고.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 저장하나?
포트래이는 카트리지 시스템을 쓰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하듯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데이터를 읽고 처리하는데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용량이 크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자주 쓰지 않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콜드 스토리지와 4TB 규모의 램(RAM)을 사용하고 있다. 24시간 데이터 학습이 이뤄지고 있어 IT인프라를 직접 구축해 사용하고 있다.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할 것 같다.
내부적으로 AI, 머신러닝을 하는 실험 팀이 있다. 데이터로만 나온 결과를 증명하는 팀이다.
포트래이의 경쟁력
글로벌 경쟁사들이 있을 것 같다
RNA를 활용하는 팀은 많다. 오우킨, 싱글 스트랜드 RNA 라는 기업이 있다. 오우킨의 경우 작년 11월 500억원을 들여서 7000명의 데이터를 모으겠다고 발표를 하는 등 다양한 회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포트래이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포트래이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데이터 자체다. 데이터를 1000명 단위로 모으는 팀은 아직까지 드물다. 병원과의 네트워크가 있어야 환자의 데이터를 윤리적으로 문제없이 연구할 수 있다. 데이터 하나를 얻을 때 비용이 약 1000만원 정도 든다는 점에서 장벽이 있다.
두 번째 경쟁력은 기술 자체에 있다. 공간전사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방법론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히 공동 창업자 전부 의사 출신이어서, 의료계의 수요에 맞는 데이터를 디자인하고 해석할 수 있다. 임상단계부터 어떻게 데이터를 쓸지 계획하고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가지고 있다.
포트래이 창업 이야기
원래 안과 의사였다고. 탄탄하고 안정적인 의사라는 직업을 뒤로하고, 창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포트래이는 두 번째 창업한 회사다. 첫 창업은 IT네트워크 부문으로, 한 인도 교육학자의 영상을 보고 감명을 받아 회사를 차렸다. 한 인도 교육학자가 인도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선물하고 사용 방법을 알리지 않은 채 떠났다. 6개월 뒤 다시 인도로 와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컴퓨터를 다룰줄 알게 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두 번째로 이 학자는 아이들에게 과학 시험을 공지하고 6개월 뒤 돌아와 과학 시험을 봤다. 아이들에게 “암이 뭐냐”고 물으니 “DNA가 망가져거 생기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영상을 보고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같은 시간에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특정 기술로 세상의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됐다.
스타트업 창업을 선택했는데 두려움은 없나?
두려움은 늘 있다. 요즘에도 잠을 잘 때마다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인가?”라는 두려움이 든다. 그러나 창업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겪는 두려움이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밌다. 하루하루 에너지를 느낀다. 가끔 회사 구성원들과 “우리는 문명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수많은 창업 아이템 중 공간전사체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첫 창업을 실패하고 글로벌 기업에 입사해 퇴사를 했는데, 현재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최용현 이사가 RNA를 약물 기술이전에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하면서 창업을 했다. 창업자들도 공간전사체를 꾸준히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있었다.
포트래이 계획은 무엇인가?
국내외 기업과 약물 공동개발, 기술이전 계약을 의미있는 수준까지 진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통 1년 이상의 기간을 거쳐 기술검증을 한다. 두 번재는 보유 데이터를 현재 1000명에서 1800명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연구하는 암 종류도 늘릴 계획이다.
투자유치 현황은 어떻게 되나?
DSC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슈미트 등에서 8억원 규모의 시드,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를 받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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