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오브레전드] 컴투스, ‘야구 시장 제패’ 이유 있었네

바이라인네트워크가 <게임오브레전드> 연재를 시작합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갓 나온 신작이 아닌 오래된 구작을 조명합니다. 급변하는 유행 속에서 적어도 10년간 서비스를 이어오며 인지도를 쌓은 게임과 그 관련 콘텐츠가 대상입니다. 레전드 게임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보는데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스테디셀러의 발자취를 되짚고, 전설의 탄생 비화와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해온 성공 노하우를 담아냅니다. <편집자 주>

홍지웅 컴투스 야구게임 제작총괄 인터뷰

한국야구위원회(KBO) 라이선스 게임이라면 첫손에 꼽아야 할 기업이 컴투스다. 자체 추산으로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했다. 사실 이견이 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막강한 이용자 기반을 갖췄다.

컴투스 야구 게임은 스마트폰 이전인 피처폰 시절부터 역사를 쌓았다. 그때부터 내공을 쌓은 인물이 현업에서 야구 게임 조직을 이끌고 있다. 홍지웅 컴투스 야구게임 제작총괄(상무이사·42)이다. 회사는 미국 메이저리그야구(MLB) 게임으로도 지평을 넓혀 글로벌 시장을 공략 중이다.

현재 컴투스가 자체 개발 서비스 중인 야구 게임은 4종으로 ▲컴투스프로야구 ▲컴투스프로야구V ▲MLB 9이닝스 ▲MLB 라이벌이다.

여기에 외부 개발사(에이스프로젝트) 게임을 퍼블리싱 중인 ▲컴투스프로야구 for 매니저와 ▲MLB 9이닝스 GM 그리고 2020년 인수한 독일 게임사 아웃오브더파크디벨롭먼츠(Out of the Park Developments)의 글로벌 야구 매니지먼트(구단경영) 게임인 ▲OOTP(아웃오브더파크) 베이스볼도 있다.

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창 바쁜 홍지웅 제작총괄을 가산동 사옥에서 만났다. 흔쾌히 시간을 낸 그는 야구 시리즈 롱런의 이유를 풀어냈다. 어떻게 야구 왕국을 구축했는지 제작 히스토리와 사업 현황 그리고 향후 계획까지 전해 들었다.

홍지웅 야구게임 제작총괄 (사진=컴투스)

인력도 매출 목표도 ‘비교 불가’

회사는 작년 기준 야구 게임 매출 150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목표는 2000억원. 놀라운 수치다. 성장세에 탄력을 더하기 위한 미공개 야구 신작도 준비 중이다.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현재 야구 게임 제작 인력은 178명. 팀장 인력만 33명이다. 지원 부서 인력은 뺀 수치다. 이 중 10년 이상 같이 일하면서 눈치만 봐도 통하는 인력들이 상당수다. 단순 인력 규모만 해도 비교할 국내 기업이 없다.

그러나 자체 개발 게임 4종을 매 시즌이 지날 때마다 더욱 고도화해 제작 대응하는 까닭에 현재 인력으로도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다. 홍 총괄은 “여전히 배고프다”며 웃었다.

“야구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다 똑같을 거 같습니다. 야구 선수들처럼 움직여요.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11월부터 2월까지 있고요. 3월은 미친듯이 바쁜 시기죠.(웃음) 개막을 준비해야 되고, 개막에 맞춰 다양한 콘텐츠를 내고 이때 마케팅에도 집중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유저들을 계속 끌어 모을만한 초반 요소들을 많이 개선하는 작업을 합니다.”

“저희가 다양한 야구 게임 시리즈를 많이 내고 있는데요. 플레이 성향이 다른 게임으로 모든 유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타깃 영역을 선명하게 공략 중입니다. 이러한 형태로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KBO 라이선스 게임으로는 저희 점유율이 70% 정도 되는 거 같고요. 이렇게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계속 성장을 목표하고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신작도 부지런히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컴투스 야구도 실패 있었네

컴투스는 2002년에 KBO 라이선스를 적용한 야구게임을 낸다. 피처폰 게임이다. 이때부터 야구 게임 역사가 시작됐다. 2004년에 ‘컴투스프로야구’ 타이틀명을 쓴 첫 게임을 낸다. 다음해 컴투스프로야구2를 출시했다. 홍 총괄은 컴투스프로야구3 개발팀의 기획자로 합류한다.

“당시 피처폰 개발팀이라고 하면 기획자 1명, 프로그래머 1명, 디자이너 1명 이렇게 해서 한 6개월 개발해 게임을 내는 게 일반적인 프로세스였습니다. 굉장히 하드한 일정에서 움직였죠.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어쨌든 피처폰 기반이었기 때문에 콘텐츠의 볼륨이 그렇게 크지 않았었고요. 그러니까 이제 그 사이클로 움직였죠. 그때 프로젝트 PD께서 퇴사를 하게 되면서 제가 맡게 됐죠. 3명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홍 총괄이 맡은 컴투스프로야구3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예정된 개발 기간을 훌쩍 넘겨 2008년에 내는 바람에 ‘컴투스프로야구2008’이 됐다. 간판 게임 ‘컴프야’의 시초다. 그러나 첫 시작은 누적 매출도 다운로드 수치도 높게 나오지 않았다. 당시엔 라이브(운영) 개념이 없었다. 신작 출시 이후 흥행 여부를 떠나 바로 차기작을 준비하는 형태로 대응이 이뤄졌다.

그는 피처폰 기반 위피 플랫폼인 ‘네이트 버튼’의 추억을 떠올렸다. 보통 이용자들은 접속료가 무서워 버튼을 눌러 들어 갔다가 급하게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네이트 버튼 등을 눌러서 들어가면 웹 페이지부터 비용이 발생하니까 일단 게임 카테고리에 딱 들어가 순위에 있는 걸 받거든요. 순위에서 빠지면 사실상 그때부터 쭉 (지표가) 가라앉기 때문에 라이브를 하기보다는 신작을 준비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죠. 당시 회사에서 기회를 한 번 더 줬어요. 최후 통첩 느낌이었습니다.(웃음)”

컴투스프로야구2024 대표 이미지

환골탈태 이후 성장 페달…외길도 결심

컴투스프로야구2008은 KBO 라이선스가 없는 야구 게임이었다. 2009버전부터 KBO 라이선스를 붙이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컴투스프로야구2009) 론칭하고 한달 뒤에 시즌2 형태로 메이저 업데이트를 하는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또 처음으로 서버에서 로스터 데이터를 받아와 새로운 선수나 타순 등이 앱을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바로 적용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땐 거의 최초였죠. 이 시스템들이 꽤 호평을 받으며 전작의 4배 정도 달하는 성과들이 나왔고, 궤도에 올라오게 됐죠. 인력 1명이 더 붙어 4명이서 9개월 만에 냈습니다. 브랜드로 자리를 잡게 돼 자연스럽게 2010 2011 이렇게 준비를 할 수 있게 됐죠.”

당시 업계 분위기는 게임 PD가 한 장르를 맡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홍 총괄에게 다른 게임 제작이 어떠냐는 제안들이 들어왔다.

“컴프야2008이 기대에 못 미쳤고, 2009에서 꽤 반전을 했죠. 그리고 그 다음 시리즈를 내면 계속 성장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작품만 더 할께요’로 바뀌었죠.”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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