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에게 물었습니다 “내년 스타트업은 어떨까요?”

스타트업 인터뷰를 하면서 늘 물어보는 게 있는데 “요즘 무엇을 가장 고민하나요?”라는 질문이다. 한동안 창업자들의 고민은 십중팔구 ‘조직문화’였다. 작은 조직은 더 좋은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직이 커지면서는 구성원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최상의 성취를 위해 달려가기 위해서 어떠한 조직 문화를 가져가야 하는지를 고심했다. 그러나 이 대답은 한동안 돈이 많이 풀렸던 시장 팽창기의 이야기다. 최근 1년 사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생존’으로 바뀌었다. 십중팔구 “투자가 어렵다, 일단은 버텨야 하는데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문제다”라는 답이 주로 나온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지원하는 이들은 지금 시장을 어떻게 바라볼까?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을 아우르는 네트워킹 행사가 최근 열렸다. 이 자리에서, 벤처투자사와 창업지원기관 관계자 7인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지금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내년을 희망적으로 볼 근거가 있을까요?”

<답을 준 고마운 분들(가나다 순):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영덕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정재호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부대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허진호 HRZ벤처스 파트너>

그놈의 ‘돈’ 언제 풀리나

“새로운 산업군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은 미래 성장을 보고 판단하는 건데, 경기가 여전히 어렵다보니까 성장주들의 미래 기업가치가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납득되긴 어렵다.”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투자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었다. 지금 시장이 어려운 것은 예전만큼 좋은 기업이 없어서라거나, 혹은 투자 생태계 자체가 죽어버렸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 금리나 전쟁 등의 여파가 투자 시장을 위축시켰다. 외부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당장 내년엔 경기가 좋아져 투자 시장이 회복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다만, 모두에게 힘든 시기는 아닐 것으로 본다. 내가 투자 받기 어려워서 그럴 뿐이지, 시장에 돈은 있다. 이미 결성된 펀드 보유금이 소진되지 않은 채 투자 대기 중이다. 성장성이 있는 분야에, 충분한 미래가치를 지닌 회사라면 언제든 투자에 나서겠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특히, 지금처럼 시장이 어려울 때는 기업가치가 다소 박하게 매겨지기 때문에 오히려 현금을 든 투자자 입장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타트업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지난 2~3년 사이에 만들어진 펀드가 보유한 드라이파우더(Dry Powder,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가 만든 펀드 중 아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당장이라도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자금이 많다. 투자 기준이 까다로워지다보니 스타트업 입장에선 (투자 유치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돈은 있다.” (허진호 HRZ벤처스 파트너)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이므로, 투자를 해야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훨씬 공격적으로 투자를 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CJ그룹 차원에서 장기 성장의 시너지가 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산업에 접근해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CJ그룹에서 확보하면 좋을 만한 기술이나 테마를 가진 역량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협업기회를 확대하겠다.” (김도한 CJ인베스트먼트 대표)

펀드가 각자의 목적이 분명히 있으므로, 이에 맞는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면 투자의 문은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성과가 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김도한 대표는 “성과가 나더라도 산업(industry)이 새롭지 않은 부분은 확실히 매출이나 손익 면에서 훨씬 더 큰 숫자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거나 정책적으로 수혜를 입는 분야(segment)가 펀딩에 확실히 유리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부문이 내년에 도드라지게 성장할까?

AI희망이자 걱정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분야로는 다수가 생성형AI를 꼽았다. 웹과 모바일에 이어 세상을 바꿔 놓을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봤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져갈지 여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시장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업자는 늘어나겠지만, 투자 규모나 인적 자원 등을 고루 살필 때 험난한 경쟁을 예상했다. 진짜 경쟁자인 미국 기업들이 엄청난 자금과 인재를 모두 흡수하고 있어서다. 우리가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가장 커질 분야는 역시 챗GPT와 관련한 생성형AI 시장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에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한 금액만 우리나라 돈으로 12조원 규모다. 우리나라 벤처 전체에 들어간 투자금(2022년 기준 6조7640억원,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의 두 배다. 규모가 너무 달라서 정말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생성형AI로 생태계가 확 만들어질텐데 이걸 놓치면 안 된다. 변화에 한국이 잘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올해 가장 많은 투자를 끌어모았던 부분이 AI인데, 당연히 내년에도 이 트렌드는 지속될 거라고 본다. 오픈AI나 구글,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와 같은 큰 기업들이 생태계 경쟁에 들어섰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오히려 기회가 더 많을 수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내년에 더 주목해봐야 할 분야

AI 외에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우선 디지털 헬스케어. 어느 분야건 펀드의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고, 투자자는 자금줄을 조이고 있지만 좋은 기업이 계속해 나오고 미래가 보이는 분야에 대해선 당연히 돈도 따라 흐른다고 보는 것이다. DHP는 헬스케어에 전문 투자하는 곳인데, 정재호 부대표는 “초고령화 사회가 기정사실화 됐고, 만성질환 등을 관리하는 데 사람들이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카카오나 롯데와 같은 기업들이 큰 깃발을 들고 뛰어들기 시작했고, 초고령화 시대 진입은 기정사실화다.  만성질환 관리 등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났다. ‘규제 왕국’이라 불렸는데, 그 규제도 점차 풀리고 있으므로 지금은 때가 됐다고 본다.” (정재호 DHP 부대표)

덧붙여,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기술이 환자들에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실질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봤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에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의들이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경우가 속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정 부대표는 “충분히 의료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인류 모두의 문제를 풀어내는 데 큰 규모의 돈이 몰리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유의미한 접근법을 찾는다면 굉장히 좋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란 조언이다.

“그린테크를 관심있게 보고 있다. 일단 그쪽으로 한두푼이 아닌 수백조원 규모의 돈이 몰리고 있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고, 우리나라 기업에도 굉장히 중요한 분야다. 새로운 산업 트렌드가 일어날 때 자본이 먼저 움직이고, 인프라가 생기면 돈이 더 들어가고 사람이 가 시장이 만들어진다. 지금 스타트업도 다른 분야에선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후테크와 같은 곳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김영덕 디캠프 대표)

김 센터장은 “탄소를 줄일 수 있다면 기후테크로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매우 광범위하다”면서 스타트업이 이 영역에서 새로이 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아울러 기후테크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본격적으로 따라올 예정이라 시장을 밝게 봤다.

서울 말고 지방은?

지방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만 창업자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올해 8월 한국벤처투자가 공모한 ‘지역엔젤투자-재간접펀드’에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중 유일하게 단독 선정(GP)되었다. 모태펀드와 지역기관, 개인 투자금을 합쳐 10억원의 펀드를 마련했다.지역 내에도 창업에 대한 수요가 있으나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민간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펀드다. 따라서 요구하는 펀드 수익률 역시 일반적인 펀드에 비해 낮다. 굳이 지역을 위한 펀드는 왜 만들어져야 하나?

“지역에도 사람이 있고, 지역에도 창업자가 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민에 이익을 주기 위한 창업에 대한 수요가 있다. 다만 높은 수익률을 보여야 하는 펀드의 경우 지역을 돌면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케어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지역에 투자를 꺼리는데,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지역에서 창업하는 것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스타트업의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는 지원을 한다.”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기대 센터장은 “코로나 이후 자유무역체제의 근간이 흔들렸고, 세계가 블록화 되고 있다”는 점도 지역에서 창업 생태계 활성화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라 꼽았다. 하나의 상품을 만들고 유통하는데 세계가 분업화되던 시절은 끝났으므로, 이제는 각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제조 스타트업에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

어떻게 하면 우리 스타트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스타트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수준 높은 인력이 많이 공급돼야 한다. (지금은) 공급이 부족해 수요를 못 맞추는 상태다. 대학에서도 컴퓨터공학이나 인공지능과 관련한 인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원을) 조정해야 하는데 교육제도나 시스템이 잘 대응을 하지 못 한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특히 정책자금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언급했다. 송은강 대표는 “정부의 예산이 줄어드는 문제가 스타트업 투자 씬에서는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가 예산을 늘려 벤처나 스타트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허진호 HRZ벤처스 대표는 뻔한 아이디어 말고, “더 많이 상상하라”고 말한다. 당장의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남들 다하는 사업을 해봤자 아주 큰 규모의 성장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의미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회를 찾아야 하고, 남들이 안 하는 미친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그간 컨수머쪽으로 투자를 많이 해왔는데, 모바일부터 시작한 메가트렌드의 한 사이클이 끝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회사만 있다. 언젠가부터 모든 회사가 비슷해 보인다. 상상력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모범답안을 찾는 것에 길들여지지 말고, 미친 생각을 하는 미친 창업자가 돼라.” (허진호 HRZ벤처스 파트너)

김영덕 디캠프 대표는 당장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의 탓을 하지 말고 “협력하라”고 조언한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이 다 당신의 탓”이라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핵심 인력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소모적 분위기만 만든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서로 비난을 한다. 투자자와 창업자도 서로 “네가 잘못 가이드를 줘서 그렇다” “왜 호경기 때 돈을 함부로 썼냐”라고 서로 비난하기 시작하면, 사실은 생존이 더욱 어려워진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분산된다. 이럴 때일수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되고,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 관계가 좋아야 신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영덕 디캠프 대표)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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