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아트페 “우리 동네 예술가의 작업실로 놀러오세요”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을 리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지역 곳곳에, 일반인이 찾아가볼 수 있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진짜 있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지역에서 시작해야 내 주변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거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동네 예술가의 작업실을 열어, 모두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두 이십대 청년은, 자신들의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연고도 없는 전라북도 익산으로 향했다. 각자 대구와 광주가 고향인데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익산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었다. 관객과 소통할 인프라가 적은 지방에서, 이들의 아이디어는 지역 예술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되겠다” 싶은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작업실을 대중에게 열어달라”고 설득하고 나섰다. 스타트업 ‘아트페’의 이야기다.
아트페를 함께 만들고 있는 정다윤 대표, 이혜리 매니저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이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다윤 대표는 미술교육을, 이혜리 매니저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각자가 학교에서 배운 걸 토대삼아 “내 집 옆 작가의 작업실에서 일반 대중이 살아 숨쉬듯 예술을 배우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한다. 서울 사는 사람만 유명 전시를 볼 수 있는 문화 말고, 각 지역의 개성 있는 작가들이 자신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면 “예술을 보는 기준도 굉장히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평생 예술을 가까이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트페는 어떤 회사인가?
정다윤 아트페 대표(이하 정다윤)_ ‘아트 포 에브리원(Art For Everyone)’, 모두를 위한 예술의 줄임말이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에 사람들이 놀러와서 같이 원데이 클래스도 하고, 작품 구매도 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워크숍이나 아티스트 토크와 같은 것을 작가의 작업실 안에서 작품을 함께 관람하면서 진행해 볼 수 있는 형태다.
흥미롭지만 사업이 쉽진 않아 보이는데, 어떻게 창업을 결심했나
정다윤_ 미술교육을 전공했는데 수업 시간에 “국영수 시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예술교과 시수는 왜 계속 줄어드는가”를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예술의 입장에 섰는데 “미술 모른다고 실생활이 어렵진 않지 않느냐”는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게 마음에 남아서, 예술이 왜 중요한지 알고 싶어 부전공으로 미대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이 이렇게 좋은데, 접근성이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예술이라는 문화자본이 상위계층이 향유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사실 예술은 사회적 계급과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소하는데 굉장히 순기능을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의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예술을 할 수 있을까”로 넘어갔다. 코로나 기간에 가상전시와 관련한 연구를 했고, 그 결과 “가상전시는 대면전시 만큼의 효과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결론을 냈다.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만약에 실물 전시를 볼 수 있다면 가상이 아닌 실물을 택하겠다”는 답들이 나오더라. 우연한 기회에 공학수업을 듣게 됐고, IT 서비스와 대면 전시를 결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스타트업의 매력이 ‘문제 해결’에 있지 않나. 내가 가진 문제가 “왜 많은 사람이 예술을 즐길 수 없는가”였으니, 스타트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 결론이 지역의 예술가를 대중과 연결하겠단 것인가?
정다윤_ 그 아이디어는 내 어렸을 적 경험에서 비롯했다. 광주 출신인데, KTX가 없을 때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서너시간이 걸렸다. 유명한 전시가 지방엔 많이 없으니까 보려면 서울까지 오가야 했다.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전시를 보러 하루 내내 걸려 오가는 건 힘들었다. 엄청나게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예술을 즐긴다”는 데 한계가 있더라. 주변에서 편의점 드나들 듯 가까운 미술관에 쉽게 오갈 수 있다보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텐데. 우리 주변에 문화 예술을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다 “예술가의 작업실”을 떠올렸다.
지역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다윤_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러 서울로, 수도권으로만 오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이 역으로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이 탄생하게 되면 그 지역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유명한 공연, 유명한 전시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연이나 전시가 생겨나게 된다면 사람들을 그 지역으로 불러모을 수 있으므로 지역을 재생시키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 지역에선 쿠사마 야요이라는 유명한 현대 미술가가 지역을 다시 재생시키기도 했다.
지역의 문화 예술가가 많은 편인가?
정다윤_ 생각보다 지역에 문화 예술가가 많이 산다. 한적한 동네 곳곳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숨어 있기도 하다. 부산이나 익산 등 여러 지역에서 지역성을 담는 작업을 하는 분들이 있다.
대형 전시 중심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지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정다윤_ 그 부분을 굉장히 고민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것도 우리가 어릴 때 유명한 예술가를 중심으로 교과서에서 배우고, 내 주변 미술관에 가보지 못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 아닌가 싶다. 피카소, 모네 이렇게 유명한 사람만 접하다 보니 그것이 예술의 기준이 되어 버린 거다.
그런데 만약에 “광화문 일대에 엄청 유명한 화가가 있다. 이 지역 넘버원이다. 이 작가의 작업실에 가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긴다면 어떨까? 그 작업실에 자유롭게 가서 같이 얘기하는 문화가 생기면, 예술을 보는 기준도 획일화 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해질 거라고 본다.
그렇게 다양한 기준점이 생기려면 다양한 전시를 항상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의 예술가를 자연스레 만난 세대가 자라 기성세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주변의 문화 예술을 찾아보는 게 보편화된 문화가 되도록 선순환이 일어날 거라고 본다.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예술가도 바라는 게 있을텐데
이혜리 매니저(이하 이혜리)_ 정다윤 대표로부터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걱정이 조금 있긴 했다. “정말 예술가 분들이 문을 열어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다 보니까 예술가들도 그림을 봐주는 분,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과 깊은 소통에 대한 갈증이 있더라.
소통의 측면 외에도 작업실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적인 측면에 대한 수요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경우엔 학교를 졸업하면 정말 혼자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내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겠단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통해서 정말로 내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과 소통이 된다면 그 자체로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어느 정도 수의 예술가가 아트페에 합류했나
정다윤_ 계약까지 오고간 작가님들이 스무분 이상 되고, 더 많은 예술가들과 도 함께 하기 위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제대로 서비스를 론칭하기 에 앞서, 지금은 내부적으로 ‘멀티큐브’라는 개념을 개발, 서비스의 방향을 잡고 있다. 오직 작품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벽면을 하얗게 만든 제도권 안의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화이트 큐브’라고 하는데 멀티큐브는 이와는 좀 대조되는 개념이다.
작가가 더 돋보이기 위한, 이들의 전문성을 잘 지칭해낼 수있는 그런 용어가 필요할 것 같아 만들었는데 작가님들이 이 개념을 너무 재미있어 한다. 각 작가의 작업공보에 대한 정보를 잘 담아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어라고들 말한다.
처음엔 예술가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다윤_ 100명 이상의 예술가한테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안 오더라(웃음). 심지어 어떤 예술가 분은 의도를 오해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게 맞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던 참에 한 분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나도 이런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내 작업실을 사람들한테 소개해주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다 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티켓이 팔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오픈 하자마자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어떻게 보면 그 분이 내 은인이다.
그때는 서비스를 아무도 모를 땐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
정다윤_ 영업비밀일 수도 있는데(웃음), 작가들은 팬이 있고, 개개인의 SNS도 가지고 있다. 나는 예술가가 ‘준 연예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안 보이는 팬층이 있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그걸 잘 모른다. 내 팔로우 중에 내 팬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분들이 예술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지 못 할 뿐이지, 전시장을 찾아가거나 소식을 챙겨보고 있다.
예술을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도 늘 주변에서 예술을 접하거나 배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다윤_ 그 질문이 늘 굉장히 어렵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실용적이지 않다. 그러나 예술 안에 답은 없다. 정답이 없고, 그래서 틀린 답도 없다. 그 말은 즉, “모든 것이 다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얘기고, “너의 표현 방식도, 나의 표현 방식도 맞다”는 말이 된다. 다양성을 수렴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시그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우리 사회가 “무엇이 옳은지,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예술이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문화 예술에 대한 수요는 어떻게 확인했나
정다윤_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게 진짜 될까”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먼저 전북 익산에서 테스트를 해봤다. 왜 익산이냐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지역에서 시작해야 거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이 친구(이혜리 매니저, 이 대목에서 이혜리 매니저와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가 둘다 익산에 연고가 없기도 했고, 그래도 익산에서 문화 프로젝트 같은 걸 진행하면서 아트페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래도 호응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굉장히 좌충우돌하면서 지역의 예술가를 섭외했는데, 당시에 그 예술가 분들이 “이런 걸 너무 기다렸다”고 호응해줬다. 당시에 익산 문화의 거리에 있던 갤러리가 지역 일대 공사로 문을 닫고 철거되었는데, 그래서 예술가 입장에선 전시나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날 인프라 자체가 없어진 상태여서 더욱 그랬다. 사실, 익산에 내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게 맞는건가” 싶었는데, 가서 확신했다. “우리 이거 해야해, 진짜 모두를 위한 일이야”라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많이 했다.
목표는 어떻게 되나
정다윤_ 글로벌 아트 플랫폼 1등이 되는 게 목표고, ‘어느 곳에서든 영감과 힐링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게 비전이다. 더불어 개개인들로부터 “아트페 덕분에 유년시절부터 예술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커서도 계속 예술을 찾게 되더라. 예술이 그냥 내 옆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내 삶과 함께 예술이 간다, 그래서 나의 삶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고 아름다워졌다고 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이혜리_ 나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고, 작가를 하고 싶다. 내가 나중에 작가 활동을 했을 때 좋은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합류했다. 내가 어떻게 조금 더 진심을 예술가와 참여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아트페를 이용하는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꿈이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