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 올림픽서 中 논문 폭증…산학계 충격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 중국 논문 제출 수 크게 늘어
중국 논문 채택 수 69편…미국 제치고 2년째 최다 국가
자국 내 연구기관 수 늘고 논문 수준도 크게 올라
미국 유학생과 교수, 좋은 조건 받아 본국 회귀 추세
한국 논문 49편 채택 성과…”장기적 관점서 지원 필요”

“올해 연도별 논문 제출 현황에서 굉장히 깜짝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무려 1년 만에 40%에 가까운 논문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논문을 굉장히 많이 내고 있다는 것이고요. 이 부분에 대해선 원인이 무엇인지 대해 토론도 하고 찾고 있습니다.”

반도체 집적회로 설계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가 2024년 2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 ‘반도체 설계 올림픽’으로 불리며 1954년에 설립돼 내년 71회째 행사 개최를 앞뒀다. 세계 각국 3000여명의 학자와 연구원들이 연구성과 및 정보를 교류하고 미래 반도체 산업과 기술을 논의하는 자리다.

최재혁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ISSCC 아시아 지역 부의장)

최재혁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ISSCC 아시아 지역 부의장)는 지난 23일 성남시 판교 경기스타트업캠퍼스에서 ISSCC 논문 채택 현황을 발표하며 이 같이 점을 짚었다.

ISSCC 2024 프레스 컨퍼런스 발표 자료 갈무리

발표에 따르면 내년 학회 개최에 앞서 전 세계 산학계에서 873편의 논문 제출이 이뤄졌고, 이 중 234편이 채택됐다. 전년 논문 제출 수 629편에서 폭증했다. 논문 제출 증가분의 절대 비중은 중국이다. ISSCC 발표가 이뤄지는 논문 채택 현황에선 중국이 69편으로 미국을 제치고 2년째 최다 논문 채택 국가에 올랐다. 이 같은 추이가 일회성인지 지속될지에 대해선 학계도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중국의 연구자들 연구기관의 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고요. 논문의 편수도 굉장히 많지만 퀄리티도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 저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논문 증가 추이가) 원타임이냐 꾸준한 트렌드가 될 것이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적어도 몇 회 정도의 추세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대표 교수한테 물어봤는데 교수 답변이 실제로 기관이 굉장히 많이 늘었고 중국 정부에서 반도체에 대해 강조를 하고 지원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더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희가 아직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추세를 예측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도움이 될만한 것은 중국 내부의 예측이니까요. 근거해서 봤을 때 논문이 더 많이 늘어날 거 같고요. 10년 전에 이 정도까지 될지는 몰랐지만 그때도 미국에서 반도체 공부를 하고 있는 (중국)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고 훌륭한 교수들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서 중국이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그런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다시 본국으로 모셔가는 이런 추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아마 지금과 같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ISSCC 분과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 머신러닝(ML) 분과가 폐지됐다.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기술로 발전했다는 이유에서다. 날로 중요성이 커지는 하드웨어 시큐리티(보안) 분야를 연구하는 Security(SEC) 분과는 새로 생겼다.

ISSCC 2024 프레스 컨퍼런스 발표 자료 갈무리

최 교수는 국내 산학계 연구 성과도 짚었다. ISSCC 논문 채택에서 한국은 49편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중국 등에 비해 열악한 인적 자원과 지원 속에서 일군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내 연구의 부족한 점도 언급했다.

“다 아시겠지만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25배 땅이 크고 인구도 25배 많고요. 그만큼 대학도 연구자도 많습니다. 그 와중에서 우리 반도체 연구자들이 기업이나 학교에서 굉장히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타이완과 재팬은 1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와 각축을 벌였는데 지금은 논문이 많이 줄어든 상황입니다. 한국 논문 채택 현황을 보면 IMMD (Imagers/MEMS/Medical/Displays) 분과에서 독보적으로 많은 논문을 억셉트(채택)시켰습니다.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요. 메모리 분과에서도 또 파워 매니지먼트 분과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반면 TD(Technology Directions)와 와이어라인(Wireline) 쪽에선 논문을 한 편도 제출 발표를 못하게 돼 아쉬운 부분입니다. TD는 지금 산업이 크게 일어나는 부분보다는 미래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논문이 없다는 것은 미래 기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최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정부의 꾸준한 지원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다른 분야도 지원을 잘 해야 하겠지만, 반도체 분야는 정부에서 어떤 분야와 형평성을 유지해서 이쪽에 돈을 투자를 더 하고 아니면 이쪽을 조금 덜 투자할 것이냐 이렇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새로운 분과가, 다른 새로운 산업 영역이 나와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계속 이끌어야 하겠지만 반도체는 중심이 되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과 또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대기업이나 벤처들 다들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겠지만, 정부에서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신호를 가지고 지원을 꾸준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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