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제 딛고 과몰입했더니…아시안게임 금은동 우수수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출전 전종목서 메달 획득
금2 은1 동1로 경기 마무리 지어
리그오브레전드(LoL)서 압도적 실력차 입증
오락실 꼬마가 금메달리스트로…김관우 선수
셧다운제-4대중독법 생채기 남겼으나, ‘게임 강국’ 입증
미성년 선수들 출전…배틀그라운드 모바일서 실력 발휘
공부 방해하는 사회악 모는 분위기서 잇단 메달리스트 배출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한다며 새벽시간대 게임 접속을 강제 차단했던 셧다운제 시행(현재 철폐)에 게임을 마약과 술, 담배와 같은 중독물로 보고 국가 주도로 다스리겠다는 4대 중독법이 발의(현재 폐기)된 나라에서 게임에 과몰입(또는 중독)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사고를 쳤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제19회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 e스포츠 부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출전한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출전 종목은 ▲리그오브레전드(LoL) ▲스트리트파이터V(5)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FC온라인(옛 피파온라인) 등 4개로 각각 순서대로 금메달,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세계가 인정하는 ‘게임 강국’이자 ‘e스포츠의 민족’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한국만큼 중국도 강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종목에서 한국이 여타 국가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종목에선 중국이 손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두 종목에서 각각 한국과 중국이 넘볼 수 없는 격차를 벌렸다. 한국 대표팀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서도 금메달 획득을 내심 자신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이 결승전까지 경기력을 숨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앞서 나갔다. 다만 아시안게임 준비기간 등을 감안하면 한국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 국가대표팀은 좋게 말하면 게임에 과하게 몰입했거나 중독됐던 청년들이 출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자리 잡은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모든 체육인들이 해당 종목에 과몰입(중독) 상태가 아닌가 싶다.

스트리트 파이터 V 김관우 금메달 획득 (출처: 아시아e스포츠연맹)

여타 종목과 차이가 있다면 e스포츠 출전 선수들은 국가 제도의 힘을 빌리거나 누가 가르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본인이 게임이 좋아 푹 빠진 열혈 게이머라는 점이다. 스트리트파이터V 종목에 출전한 김관우 선수는 (만)44세로 일반 직장에 다니는 아마추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오락실에서 대전 격투 게임을 꾸준히 즐겼고, 그 분야의 세계적인 실력자가 됐다. 현재 최고 후원자는 부모라고 전했다.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잘하면 근처 형들에게 끌려가서 항상 혼났고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임을 좀 하셨다 하는 분들은 다 경험이 있을 겁니다. 동네에서 맞아보지 않았다 하면 실력을 좀 의심스러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옆구리를 맞아가면서도 기술 콤보를 넣는 데 손을 놓지 않았던 의지로, 그만큼 강한 승부욕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이라는 결실을 맺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김관우 선수 금메달 획득 소감 중에서)

셧다운제가 여전히 남았거나 4대중독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됐다면, 지금 e스포츠 국가대표팀 면면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2012년 스타크래프트2 국제 대회 진출권이 걸린 아이언스퀴드 예선 경기에서 당시 15세인 중학교 3학년생인 이승현 선수가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채팅창에 ‘아, 맞다. 셧다운제 당하는데’라고 글을 올린 뒤 남은 병력을 한 번에 던지고, 게임을 급하게 종료했다. 이날 국제 대회는 여러 나라의 시차를 고려해 우리나라 기준 밤늦게 개최됐다.

이 선수는 사전에 허락을 구한 부모 아이디로 이후 접속했으나, 제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예선 탈락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외국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셧다운제가 뭐냐’ 되묻기도 했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차단한다는 셧다운제가 알려지자, 당시 이 선수를 두고 ‘감옥에 가냐’ 묻는 외국인도 있었다.

출처: 한국e스포츠협회

셧다운제는 잦은 논란 끝에 결국 폐지됐으나, 우리나라에서 게임의 인식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2013년 발의됐다가 국회 폐기된 4대 중독법(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마치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어른들의 시각을 보여줬다.

당시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알콜 등 다른 중독 물질은 어른을 대상으로 하나 게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 국가 미래에 끼치는 해악이 몇배는 더 클 것”이라며 4대 중독법을 두둔했다. 법안을 추진했던 당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게임 등 미디어콘텐츠를 기존 법률안에서 제외하되 별도 게임중독법을 발의하겠다고 주장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엔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국회 시선이 바뀌고 있다. 이종배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7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엔 민간 기업의 실업팀 및 e스포츠구단 운영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일몰 기한을 없애고, 세액공제율을 기존 10%에서 20%로 상향하는 방안이 담겼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