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빨리 충전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전기차를 살까 말까, 고민의 중심에는 ‘충전’에 대한 걱정이 자리한다. 도로를 달리는 와중에 자동차가 방전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빨리 100% 충전을 해야 혹시 모를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테슬라를 비롯한 수많은 전기차 회사들도 ‘급속 충전’을 주요한 기술적 지표로 강조한다. 그런데 이 급속 충전이 사실 만사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잦은 충방전은 자동차가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명 자체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커다란 자동차의 배터리를 빨리 채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전력 인프라도 더 깔아야 한다. 상용차가 아닌 일반 자동차는 대체로 하루에 서너시간 정도만 도로를 달린다. 뒤집어 말하면 나머지 시간은 주로 주차장에서 머물러 있단 이야기다. 그 긴 시간에 천천히 충전하면 안 될까? 그게 자동차 배터리를 위해서나 전력 사용의 효율성을 위해서나 더 나은게 아닐까?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에바 본사에서 회사 창업자인 이훈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사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씨랩에서 이동식 전기차 충전 기술을 만들다 독립했다. 이 대표는 완속 충전이 미래의 전기차 충전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전기차의 입장에서도, 국가 전력 인프라 차원에서도 완속 충전이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그에게서 전기차 충전 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키워드1. 완속 충전

모두 전기차 급속 충전 기술을 강조한다. 그런데 에바는 반대로 완속충전기술을 개발한다

전기차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가 지금까지의 화석 연료 중심 에너지 소비를 전기로 바꿔서 탄소 배출량을 조금 더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가장 큰 노력인 거지 않나.  탄소중립을 위해 사람들이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인의 필수소비재인 차를 전기차로 바꾸게 되면 그거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봤다. 그 전기차 보급이 잘 되게 하는 게 에바의 한 가지 미션이고, 그러려면 급속보다는 완속이 더 알맞다.

회사의 목표가 ‘충전 걱정 없는 전기차 라이프’인데 사람들이 전기차로 전환하는 걸 주저하는 이유가 충전에 대한 불편함, 걱정 같은 것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아닌가. “내가 불편하게 충전을 감수하면서 전기차를 끌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그 걱정을 덜어주는 걸 목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바가 개발하는 솔루션에는 그런 철학이 녹아들어가 있다.

사람들은 빨리 충전하는 선호하지 않나?

급속충전 기술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관점에서 볼 때는 결국 국가의 전력자원인 전기를 소모하는 거다. 그렇다면 100% 전기차로 전환되면 원전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도 있다. 또, 건물에 들어와 있는 전기가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 장비의 (전기) 사용량을 감당할 수 있는냐의 문제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급속 충전은 별로 좋지 않은 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총 전기 소비량을 보면 보통 여름철 대낮에 냉방 수요가 있으므로 피크타임이 있다. 밤이 되면 떨어지고. 문제는 발전량은 피크치를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발전 설비는 최대 기준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만약 전기차 급속 충전기 중심으로 가게 된다? 이런 상황이 더 심해질 거다. 전기차 급속 충전을 쓰는 사람은 보통 주간에, 완속 충전은 주차하고 나서 즉, 상대적으로 전기가 남는 밤에 쓴다. 전기차 입장에서도, 국가의 전력 인프라 관점에서도 밤시간에 주차했을 때 완속으로 천천히 충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건물 설계 시점에서 들어올 수 있는 전기 자체를 제한한다. 아파트 같은 경우는 세대당 사용량을 기준으로, 그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설계한다. 지금은 그 여유분을 가지고 충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유분이 2030년이면 고갈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때 충전기 설치를 늘리고 싶으면 한전에서 전기를 추가로 끌어와야 하고 추가로 변압기도 설치해야 한다. 되게 큰 공사가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아파트 같은 경우 그렇게 전기를 가져오게 되면 재건축도 어렵다. 재건축은 건물의 노후도가 중요한 요소인데, 전기 설비가 개비되면 노후도가 줄어든다.

인프라 관점에선 이해가 갔다. 그런데 전기 입장에서는 완속 충전이 나은 방법인가?

상식적으로 무엇이든 혹사당하면 수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급속 충전은 배터리를 혹사시키는 과정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급속과 완속의 비중을 9 대 1로 했을 때와 완속을 75, 급속을 25로섞어서 충전했을 때 패턴을 비교하면  배터리 수명이 최대 10배나 차이가 난다.

그렇 차이가 많이 나나?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성이 충·방전 횟수가 늘어날 수록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명이 점점 줄어든다. SOH(State Of Health, 배터리 용량이 얼마나 열화되었는지를 나타내는 )라는 지표가 있는데, 전기차를 계속 쓰다보면 이 SOH의 숫자가 달라진다. 전기차는 주행 가능 거리를 기준으로 값이 매겨질 수밖에 없다. 이 SOH의 숫자가 낮아지면 중고차 가격이 확 떨어지는 거다. 심지어, 전기차 회사들의 차량 매뉴얼에도 급속 충전을 가급적이면 쓰지 말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에바가 집중하는 시장은 거주지 중심이겠다

일단은 그렇게 시작을 했다. 차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완속 중심으로 가는게 맞다고 본다.

전기 100% 시대가 왔을 완속 충전과 이동형 배터리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모든 차량의 완충을 책임질 있겠나? 스마트폰을 써본 습관상, 충전이 100% 안되어 있으면 매우 불안해진다

충전기끼리 서로 통신하면서 전력 자원을 공유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보통은 하나의 전선에 하나의 차량만 연결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지 말고 멀티탭처럼 하나의 전선에 여러대를 연결해 먼저 충전이 된 차량에는 전기를 더 공급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전기를 보내는 식으로 움직인다.

멀티탭도 너무 여러개를 연결하면 차단기가 떨어지거나 혹은 화재가 날 수 있는데 그런걸 제거하는 게 기술의 핵심이다. 충전기마다 블루투스가 들어가 있어서 현장에서 서로 계속 통신하면서 “너 얼마나 쓰고 있어? 나는 이만큼 쓰고 있으니 이렇게 전기를 나누자”는 식으로 운영하게 되면, 같은 전기 사용량을 기준으로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숫자가 최대 다섯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도 전기 설비를 증설하지 않고 주차면의 70%까지 전기차 충전을 커버할 수 있단 이야기다. 혹시 하루에 몇 시간 운전을 하나?

일반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통상 서너시간 아닐까?

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모든 전기차가 매일 충전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주차면이 70% 커버는 해당 건물의 모든 전기차를 다 충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마 출퇴근 시간이 다른데, 언제까지 완충이 되는지 시간을 따로 정할 있을까?

충전을 예약하는 기능도 추가하려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다른 회사들이 모르는 것은 아닐텐데, 왜들 완속 이야기를 하지 않나

완속은 돈이 안 된다고 보니까 그런 것 같다. 급속 충전기는 한 대당 몇천만원씩 드는데, 완속은 한 대당 몇십만원 수준이니까, 상대적으로 돈이 더 많이 되는 급속 중심으로 치중을 하고 있는 거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아예 급속을 안 하는 건 아니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 급속의 가장 큰 문제가 전력망에 부하를 주는 거라면, 그걸 줄여주는 방식의 급속 충전을 연구하고 있다.

키워드2. 이동형 충전

전력망에 부하를 주지 않는 급속 충전? 어떻게 가능한가?

“배터리가 들어간 이동식 충전기”로 가능하다. 이동식 충전기에 탑재된 배터리가 평소에 전기를 담아놓고 있다가 급하게 충전이 필요로 하는 차량에 그 전기를 한 번에 확 쏟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용화된 기술인가?

기술 검증은 마친 상태다. 예를 들어서 300킬로와트급 충전기가 주차장에 들어오게 되면 그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두꺼운 파이프를 한전에서 끌어와야 한다.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 파이프에 계속 전기가 흐르느냐, 그건 아니다. 잠깐 충전할 때만 전기가 흘렀다가 그 전기차가 떠나고 나면 다음 전기차가 올 때까지 그냥 놀고 있다. 비싼 자원이 놀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동식 배터리 충전기가 들어가면, 저 인프라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을 확연히 줄일 수가 있다. 이동식 충전기가 갖고 있는 배터리가 평소에 천천히 충전을 해놓고 있다가 급속이 필요할 때 쏟아주면 되니까.

그러면 빨리 보급하면 되지 않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규제와 가격이다. 이동식 충전의 핵심은 ‘배터리’인데,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에, 배터리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어느 정도 비싼가?

전기차 가격 중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는다. 그래서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신품이 아닌 폐 배터리를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 폐배터리가 많이 나오지 않겠나. 수명만큼 쓰고 폐차한 전기차 배터리를 다시 충전 인프라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선순환 구조가 되겠나. 여기서 규제 문제가 나온다. 재활용 배터리를 쓰는데 아직까지 규제가 있다.

안전 문제인가? 안전은 실제로 크리티컬한 부분 아닌가?

전기차용 배터리는 가장 높은 안전 기준을 가지고 제조된 배터리들이다. 자동차 충돌 시험도 통과했고, 또 전기차를 몇년간 운행하면서 한 번도 화재가 안 났다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화재가 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만큼 검증이 된 배터리라고 봐야 하는 거다.

규제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보나?

전기차 배터리가 충전기용으로 전환되면, 일종의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로 바뀌는 거다. 우리나라 배터리 기준에서는 배터리 용도가 바뀌면 인증도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 비해 ESS 인증이 훨씬 쉽다. 전기차가 수능이라면, ESS인증은 초등학교 기말 시험 같은 수준으로 훨씬 느슨하다. 다시 말해서 전기차 용으로 안전하다고 국가 인증을 받은 배터리를 왜 더 낮은 수준의 인증을 또 다시 받으라고 하는지 의문이다. 재인증을 받는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폐배터리 사업을 하는 게 어려워진다. 이 규제를 개선한다고 하는데, 그 수준이 어느정도가 될진 아직 모르겠다.

전기차 충전시 스파크가 튀게 되면 감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전기차 화재 사건이 나면 방송국 주요 뉴스에서 다룬다. 전기차가 매우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통계적으로는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 화재의 수는 훨씬 적다. 대신 한 번 불이나면 끄기 어려우므로, 사고의 임팩트가 크다. 사고 위험이 적다는 통계 데이터가 있어도 사람들 마음 속에서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긴다.

더군다나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화재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전기차 인프라를 늘리는 걸 반대할 수도 있다. 전기차에도 타격이지만 충전기 만드는 회사에서도 큰 문제다. 그래서 고민을 한 게, 불이 나면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였다. 화재가 나면 그걸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위치에 충전기가 있을터이니 센서를 달아 즉시 알림을 주는 걸 고안했다. 초동대처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키워드3. 에너지 유통의 패러다임 변화와 글로벌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관심을 갖는 회사들은 주로 어떻게 되나?

전기차 시대가 되면 에너지 유통의 패러다임이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주유소를 중심으로 정유사가 운송용 에너지를 독점하던 시장이다. 그런데 전기차로 가면 점점 거주지, 또는 회사 주차장에서 충전하는 패턴이 늘어난다. 그만큼 주유소의 에너지 매치가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에너지 회사들이 전기차에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다.

전기차 만드는 회사들과 협업은?

현대차 등 폐배터리를 이용한 이동식 충전 등을 실험하며 기술을 확보했다.

전기 충전 표준도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얼마전 뉴욕타임즈 기사를 보니 테슬라가 급속 충전의 표준을 만들어서, 다른 회사들도 모두 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충전 규격이나 프로토콜을 어렵게 생각들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충전 포트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 출장갈 때 플러그 모양만 바꿔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어댑터(돼지코)를 들고 다니면서 쓰지 않나. 마찬가지 원리다. 테슬라 충전을 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를 바꾸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딱 플러그 어댑터만 교체하면 된다.

글로벌 진출 계획도 세우고 있나?

캐나다 쪽은 이미 진출을 했고, 수출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일본에서 투자를 받았는데 현지에 전기차가 도입되는 초창기라 진출하기 시기가 좋다. 일단 두 군데를 먼저 공략하려 한다.

앞으로 계획은?

최근에 투자를 성공적으로 받았다. 그걸 발판으로 해외 진출을 속도 내려고 한다. 서비스 플랫폼을 포함해서 종합 충전 솔루션 회사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다양한 형태의 진출이 될 거라고 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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