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왜 CBDC 도입에 적극적일까?
디지털화폐를 통한 차세대 결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한국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한국은행은 CBDC 금융 기관 연계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달 인프라 구축 방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에서 CBDC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부여받기도 했다.
CBDC란 디지털화된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현금이다. 현금없는 경제가 도래할 것을 대비해 공신력 있는 중앙은행이 직접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CBDC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특히 올해를 디지털화폐의 기반을 마련하는 해로 만들겠다고 선언할 만큼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리는 “중앙은행은 화폐 제도와 지급제도의 신뢰성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구조 변화를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CBDC가 현행 지급 결제 시스템 및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면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성급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여러 실험 및 사업을 전개하면서 CBDC 도입 요구가 제기될 때 언제든 부흥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CBDC 모의 시스템 금융 기관 연계 실험’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인구의 CBDC 결제 시스템 참여를 가정했을 때의 실험을 진행했고, 문제 없이 동작함을 확인했다. 분산원장 노드간 통신 지연으로 인한 시스템 성능 저하는 10% 수준이었지만, 이는 수용 가능한 범위인 것으로 판단됐다.
한국은행은 “향후 금융 기관과 분산원장 기반 CBDC 시스템 연계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파악했다”며 “관련 연계 실험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며, 참가기관들이 개발한 스마트계약을 ‘CBDC 모의 시스템’ 상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CBDC 사업에는 크러스트,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엔글 등 총 6개 업체가 수행 업체로 참여했으며,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의 15개의 금융기관이 실험에 참여했다.
한국은행이 CBDC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
한국은행은 ▲디지털 형태 법정 화폐 인프라 구축 ▲개방형 공공화폐 시스템을 통한 경쟁과 혁신 촉진 ▲사용자 데이터 및 프라이버시 보호 ▲디지털 경제 내 신뢰를 지닌 보편적 지급수단으로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CBDC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화폐 또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같은 민간 디지털화폐가 확산 중이고, 현금 사용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는 점, 소수 상위 빅테크 업체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CBDC를 주목한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지급제도 컨퍼런스에서 강환구 한국은행 경제 연구원 실장은 “디지털 환경에서 편의성과 신뢰성을 갖춘 법정 통화가 필요했고, 금융 규제 미비로 인해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증대될 우려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며 “(CBDC가) 디지털 경제에서 안전하게 혁신을 추구할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국내 외에도 중국, 스위스,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의 국가에서 CBDC 도입을 위한 활발한 논의 및 개발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기인한다.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는 ‘CBDC의 금융법적 검토’ 논문에서 “국가마다 CBDC 도입 목적과 제도 설계 내용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CBDC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국의 금융산업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CBDC 도입과 관련해 국가들이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CBDC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CBDC 선도국으로 불리는 중국은 누구나 사용이 가능한 소매용 CBDC를 발행, 유통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중앙은행과 은행 등 금융 기관의 거래를 핵심으로 하는 도매용 CBDC를 중심으로 관련 시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탈리아 또한 유럽 중앙은행과 연계돼 있는 도매용 CBDC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6년 도매용 CBDC 연구 개발을 시작해, 지난해 소매용 CBDC를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국내는 구체적으로 CBDC 발행 계획을 밝히지 않았으나, 소매용 CBDC보다는 도매용 CBDC 인프라를 중점으로 두겠다고 시사한 상황이다. 지난 5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제결제 은행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은이 2년 동안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한국의 경우 신속 자금이체 시스템이 발달돼 소매용 CBDC 도입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며 “도매용 CBDC를 기반으로 토큰화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CBDC, 수요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현재 시장에서 집중하는 건 CBDC 상용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은행 측은 “CBDC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은행의 모의 실험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금융당국과 은행 간 문제 해결 방식, 담당자 간 의사소통 등에 어려움이 있는 걸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측은 “CBDC 시스템의 운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관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업무 과정을 수립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이 비대해져 시중은행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제주체들의 안전 자산 선호가 높은 상황에서는 무위험 자산인 CBDC로 자금이동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되고 대출 등 자율배분의 효율성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다.
안 교수는 “CBDC가 어느 방식으로 구현되는 간에 자금 중개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의 기능과 지급결제 제도에 영향을 미칠 영향이 크다”며 “CBDC 도입이라는 새로운 지급 수단이 현재의 지급수단과 직접 경쟁하는 관계로 설계될 경우에는 기존 금융규제 프레임에서 나아가 종합적인 개편을 해야한다”고 분석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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