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시선] IT ‘끼워 팔기’…그 논란의 역사

묶음 판매. 일명 번들링(Bundling)은 전통적인 마케팅 기법 중 하나로 여러 개를 묶어 개당 가격을 낮추거나 메인 상품 외에 다른 상품을 끼워 넣어 신규 고객을 유입하는 방식이다. IT 업계에서도 왕왕 발견되곤 하는 데 하나를 사면 다른 기능까지 함께 제공하는 솔루션이나 소프트웨어(SW)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끼워팔기’로 불리며 제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 스타트업이나 비교적 작은 기업의 제품의 시장 진입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팀즈(Teams)’의 끼워팔기 논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빅테크의 상징인 마이크로소프트가 팀즈를 자사 오피스SW인 마이크로소프트365에 기본 탑재하자 같은 기능의 협업툴 업체가 들고 일어났고,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IT 업계의 끼워팔기의 역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까. 거대 공룡 기업들은 영원히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

처음이 아닌 논란…과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시간을 1990년대로 돌려보자. 인터넷이 태동한 1990년대 초반. 월드와이드웹(www)이 생기고 인터넷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브라우저 시장은 1994년 나온 ‘넷스케이프(Netscape)’가 먼저 깃발을 꽂았다.

웹의 잠재력을 확인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부랴부랴 브라우저 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여기서 운영체제(OS) 시장을 장악한 파워가 작용했다. 윈도우95에 익스플로러를 처음 탑재한 이후 인터넷을 익스플로러로 처음 접하는 사용자들의 록인(Lock-in) 효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8년 7월 익스플로러는 43.8%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41.5%의 넷스케이프를 처음으로 앞서나갔다.

물론 규제당국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1998년 9월 미국 법무부는 연방법원에 윈도우에 익스플로러를 끼워팔았다는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소했다. 넷스케이프의 자리를 부당하게 뺏으려 했다고 판단한 법원은 OS 부분과 기타 SW를 파는 부문으로 기업을 쪼개라는 처분을 내렸다.

공방 끝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 분할은 피했지만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했다. 물론 넷스케이프의 타격은 이보다 컸다. 이미 초기의 우위를 지키지 못한 채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난 브라우저가 된 이후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윈도우XP에 미디어 플레이어와 MSN 메신저를 묶어 제공한 점을 불공정행위로 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를 내렸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272억3000만원, 한국마이크로소프트 52억6000만원 등 325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익스플로러 또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파이어폭스나 크롬 등 경쟁자가 나타났고, 액티브X 등 불편한 기능에 결국 2022년 익스플로러도 은퇴(?) 수순을 밟았다. 현재는 엣지를 내놓았지만 90%가 넘던 웹브라우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랜 상황이다.

데이터베이스(DB) 1위 기업 오라클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오라클은 유지보수 서비스 계약에 버전 업그레이드 권한을 함께 넣어 팔았다는 혐의로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다수의 기업이 DB하면 오라클을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이미 유지보수 비용 안에 다음 버전 요금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라, 추격하는 DB 업체 입장에서는 맞상대 하기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지보수 서비스와 업그레이드가 각각 독립된 시장을 형성하고 별개의 상품으로 인정돼야 하지만, 별도 시장을 형성한 것도 아니고 서로 독립된 상품이 아니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도 일각에서는 오라클의 고자세에 대한 볼멘 소리가 나온다. 과거 오라클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단단하게 굴어도(고자세로 나가도) 잘 팔리던 시절”이라면서 “아무리 대체 DB들이 늘었다지만 오라클이 예전보다 힘을 못쓰던 것도 과거 이런 행위들 때문일지 모르겠다”고 바라봤다.

플랫폼마저…국내 앱스토어 밀어낸 구글

직접적인 끼워팔기 논란은 아니어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의 이익을 높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 4월 구글은 다른 앱마켓에 게임 출시를 막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21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공정위는 “압도적인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 모바일 게임 매출 등에 매우 중요한 플레이스토어 1면 노출 및 해외진출 지원 등을 구글 플레이 독점 출시 조건으로 제공해 게임사들이 자유롭게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부작용은 통계로도 확인됐는데, 공정위는 원스토어가 2017년과 2018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2016년 7월부터 2018년 4월까지의 구글의 이 같은 행위가 이뤄진 시기와 겹친다. 원스토어의 게임 유료 구매자 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구글 플레이를 통한 게임 유료 구매자는 약 30% 늘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구글은 국내 게임사의 해외 시장 진출을 미끼로 내걸어 원스토어를 고사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정위가 공개한 구글 내부문서를 보면 ‘대형 게임사 A와 미팅시 1순위 목표는 구글만이 해외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임을 강조하는 것’ ‘(원스토어를) 마이너 루저 리그로 만들어야’ 라는 표현 등 경쟁자의 성장을 꺾으려는 의지가 그대로 녹아있었다.

정답이 있을까

끼워팔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입장에 따라 엇갈린다. 솔루션의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는 언뜻 편한 정책이기도 하다. 별도의 구매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다른 제품까지 함께 쓸 수 있어서다. 허나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가능성이 약이 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한 번 손에 익은 솔루션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기업이라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예컨대 팀즈에 익숙해진 팀원들이 있다면 다른 협업툴로 바꿨을 때 일어날 반발을 어떻게 감당할까. 의도하지 않게 팀즈를 썼지만 구성원들은 이미 익숙해진 상황. 갑자기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싼 요금을 청구한다면? 반발과 비용 부담을 저울질 했을 때 “그래 어차피 익숙해진 것, 그냥 쓰는 게 낫겠다”가 자연스러운 수순일 터. 끼워팔기가 노리는 게 바로 이 포인트다.

몇 년 후면 생각보다 두툼해진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고, 후회해도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을 테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각 규제당국이 끼워팔기 근절에 집중하는 것도 공정한 경쟁(+과도한 락인 예방)이 선행돼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 때문이다.

IT 솔루션 끼워팔기는 면도기에 면도날을 묶어 파는 것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솔루션 생태계에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만큼 삭막한 일은 없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이 경쟁의 운동장은 평평해야 하지 않을까. 비즈니스 생리를 무시한 이야기일까? 그래도 모두가 공생하는 세상이라는 낭만 섞인 바람이 마음 속을 간질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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