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스타트업은 과연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이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이 농가에 반가운 일이기만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스타트업이 농업의 성장을 위해 제시하는 전략이, 개별 농가의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다.

마이크로발란스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농화학 제품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식물에 맞는 미생물 비료를 만든다. 예컨대 인삼과 같은 작물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같은 밭에서 농작할 경우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 번 인삼을 심은 밭은 당분간은 인삼을 심을 수 없는 땅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이크로발란스는 인삼 연작이 가능하도록 토양의 미생물집합체(마이크로바이옴) 조절을 통해 생산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엄청난 쾌거다.

그러나 농가는 이 방안에 환호하지 않았다. 왜냐. 일단 이 연구가 정말 효용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삼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 재산을 걸고서라도 새 기술에 기대하는 모험을 하고 싶어 하는 이는 드물다. 농가가 당장 원하는 것은 당장 농사를 지어도 탈이 없도록, 이미 인삼을 심었던 밭을 걸러 낼 방법이다.

안타깝게도 회사의 기술과 농가의 요구가 달랐으나, 그래도 이건 “줄 수 있는 것”과 “갖고 싶은 것” 사이의 불일치에 해당하는 문제라 해결할 방법이 있다. 농가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쪽으로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면 된다. 마이크로발란스는 결국 인공지능과 마이크로바이옴 정보를 활용해 인삼 재배지를 선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마이크로발란스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이 농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가져온 경우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문제도 농가와 스타트업 사이에 존재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데, 농업의 규모화, 기업화 주장은 현재 주로 소규모로 이뤄진 농가들이 환영하지 않는다.

한정된 정부 지원을 농가와 스타트업이 나눠야 할 때도 이익 충돌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농업 진흥 정책 자금의 상당부분을 농가 직접 지원에 써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농업의 미래 산업화를 위한 스타트업 지원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농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미래화를 이끌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농가와 스타트업이 시너지를 내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필요를 일치시키거나, 혹은 요구사항의 균형을 맞춘 정책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지난 30일 소풍벤처스와 카카오임팩트가 서울 명동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연 ‘월간클라이밋’ 행사에서 제기됐다. 매월 환경과 기후를 중심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서 이달에 핵심으로 삼은 주제는 “기후위기시대, 농업의 본질적 문제를 겨냥하라”였다.

(왼쪽부터) 한국정밀농업연구소 남재작 박사,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재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 김민석 에이아이에스 대표, 신재호 마이크로발란스 대표, 윤성 엔벨롭스 대표.

발제와 토론좌장을 맡은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이날 우리나라 농업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뚜렷한 방향성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와 민간이 농업의 구조 변화를 제대로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갈 중요한 두 주체가 서로 다른 요구를 갖고 있을 때, 정부는 큰 틀에서 하나의 뚜렷한 방향성을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투자나 지원에도 우선순위를 가져갈 수 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도 마련할 수 있어서다.

그러기 위해서 남 소장은 “농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하는 여러 오해 중 하나는 농업과 농촌을 낭만적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우리가 농사라고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가족농사 식 벼농사는 이제 거의 대부분 전 과정이 ‘외주화’됐다.

남재작 소장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의 70%는 1.0핵타르(hr) 미만의 경지를 경작하고 1년에 1000만원 미만의 농산물을 판매한다. 농촌엔 청년이 없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작아 충분한 돈을 벌기 어렵다. 고령화된 소규모 농가가 생존할 수 있는 기반에는 정부의 직접지원이 있다.

남 소장은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게 되는 농업 현장은 스타트업이 크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분석도 했다. 국내 농업 관련 연구개발 역시 거의 대부분 정부 예산을 편성받아 이뤄진다. 이 경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연구와 사업화가 이뤄지다보니 예산을 넘어서는 투자나 비즈니스 모델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규모화가 이뤄져야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데, 투자나 환경 자체가 규모화를 막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고령화로 줄어드는 농업 인구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로컬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중앙집중식의 농업 문제 해결방안은 지역별로 꼭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로컬에서 시작해 중앙에서 이와 협업하는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이런 로컬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가기 위해서는 농업의 구조 변화에 맞물린 스타트업 정책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로컬 단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남 소장은 “구조변화와 스타트업 정책이 같이 나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개별 프로젝트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필요한데 아직은 우리나라가 그런 역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 농업 현장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업이 서비스 단위로 접근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예컨대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혁신 스마트팜 프로젝트를 네군데 운영하는데 4000억원의 예산을 푼 반면, 일본에서는 전국 단위 70개 프로젝트에 정부 예산을 400억원 정도 썼다. 각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이를 실제 서비스화 할 수 있도록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스타트업 성장에 필요한 시장과 정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우수 스타트업의 서비스의 구매 지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문제라, 직접 보조를 받는 농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 소장은 “스타트업과 농가 사이에 필요로 하는 게 다른 것이 농업 분야 스타트업의 가장 큰 허들”이라고 말했는데, 이날 패널로 참여한 최재욱 디라이트 파트너 변호사는 “스타트업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변화하지 않는 농가를 탓한다기 보다는,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농업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글로벌로 농업 정책 자금이 활발히 투자집행되고 있으므로 이를 타기팅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패널로 참여한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의 농업 환경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므로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정책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국내외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뻗어 있는 정책 시장을 타기팅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해외 정책 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투자업체가 지원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경쟁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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