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칩 직접 개발하는 빅테크, 범용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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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구글, 아마존, 테슬라. 모두 전 세계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죠.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모두 자체 칩 개발에 나선 기업이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인텔과 같이 범용 반도체를 제공하는 기업으로부터 칩을 받아 왔는데요, 이렇게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하나둘씩 탈 범용 반도체 기업에 나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구글의 TPU입니다. 구글은 2016년 5월에 딥러닝용 자체 프로세서 TPU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당시 넘사벽급의 데이터 처리 성능을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기존에 사용되던 GPU에 비해서도 AI 처리에 특화돼 있다고 하죠.

또 하나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2020년 11월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 M1을 탑재한 노특북을 공개했죠. 그간 애플은 노트북과 PC 시리즈에 인텔 칩을 탑재해 왔었는데, 자체 칩 탑재로 전환하기 시작한 겁니다. M1을 접한 대중은 ‘괴물 칩이 나타났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애플은 M2에 이어 M3까지 자체 칩 개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선 이유는 자사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죠. 좀 더 자사 서비스에 특화된 칩을 만들어 서비스 성능을 높이고, 뭐 이런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선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범용 칩으로 성능을 특출나게 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간 범용 칩을 만들어 오던 레거시 반도체 기업은 제품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회로를 더 미세하게 만들고 트랜지스터를 더 미세하게 배치하는 방식을 택해 왔죠. 그런데 이 회로가 3나노까지 내려오니 더 얇게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고, 결국 칩 단계에서 성능을 크게 강화하는 데 한계가 생긴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금 규모가 큰 기업이라면 자체 칩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페이스북 등 테크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일단 칩 개발에 팔을 걷어 붙인 모양새죠.

이렇게 많은 기업이 자체 칩을 만들기 시작하다 보니 기존에 범용 반도체를 제공하던 기업의 위상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CPU 시장은 인텔과 AMD가 장악하고 있었는데요, 빅테크 기업은 이들 의존도를 점차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칩을 만들면 더 높은 성능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범용 반도체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겁니다.

인텔과 AMD도 더 이상 ‘그저 성능이 좋은 칩’을 메리트로 내세우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체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범용 반도체 제공업체도 조금씩 전략을 바꾸는 분위기입니다. 다양한 서비스에 최적화된, 그런 맞춤형 반도체를 제공하기로 말이죠.

대표적으로 인텔은 지난 1월 서버용 4세대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 일명 ‘사파이어 래피즈’를 출시했는데요, 이 사파이어 래피즈의 가장 큰 특징은 현존하는 CPU 중 가장 많은 가속기를 탑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AI, 보안, 데이터 스트리밍, 네트워크, 스토리지 등 각 데이터 처리 부문 워크로드를 최적화할 수 있는 가속기를 전부 탑재해 놓은 겁니다. 해당 분야를 벗어난 부문에 대한 데이터 처리까지 최적화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워크로드를 최적화한 겁니다. 사파이어 래피즈를 출시하면서 인텔이 강조한 부분도 “우리는 단순히 코어 수를 늘리지 않았고, 사용자 경험을 강화했다”는 것이었죠.

AMD도 비슷합니다. 단적으로 AMD는 FPGA 제공업체 자일링스를 인수했죠. FPGA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로, 기능에 맞게 구조를 수월하게 바꾸고 수정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맞춤형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하죠. AMD는 이 FPGA 강자인 자일링스를 인수함으로써 고객 수요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반도체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로 생태계를 늘리기 위해 라이브러리 종류를 늘리고 소프트웨어 스택을 강화하고 있죠. 지난 3월 진행한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GTC 2023에서 엔비디아는 300개의 가속 라이브러리를 선보였습니다. 양자 컴퓨팅, 물류 및 경로 최적화 가속 엔진, 반도체 제조와 이미지 생성,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다방면에 특화된 라이브러리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발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칩 성능을 강화한 것보다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이처럼 레거시 반도체 제공업체는 칩 성능 자체를 강화하기보다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레거시 칩메이커가 생존하기 위해 만든 전략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칩렛 생태계 강화에 나섰다는 겁니다. 칩렛은 CPU, GPU, 메모리 등 특정 기능을 가진 최소 단위의 칩을 말합니다. 이 칩렛은 필요에 따라 레고처럼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사용자는 칩렛 구성을 다르게 해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텔, AMD, 삼성전자, Arm, TSMC 등 주요 칩메이커는 지난 2022년 3월 칩렛 규격을 제정하기 위해 UCIe 컨소시엄을 구성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칩렛을 규격화해 각 칩렛 간 연결성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죠. 이로써 고객사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더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죠.

이렇게 기존 범용 반도체 제공업체는 빅테크 기업과 추후 다양한 기술을 준비하는 기업이 ‘우리 서비스에 딱 맞는’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략을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그저 코어를 많이 탑재해서 성능을 높이던 그런 전략에서 벗어난 것이죠. 그런데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합니다. 한때 인텔은 ‘반도체 왕국이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반도체를 만든다’라고 할 정도로 그 위상이 매우 높았었는데, 이렇게 고객 맞춤으로 반도체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이 위상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해석되거든요. 역시 과거의 영광과 별개로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결국 살아남는 자는 시장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고 적응하는 기업인 듯 싶네요.

영상제작_ 바이라인네트워크 <임현묵 PD><최미경 PD>hyunm8912@byline.network
대본_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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