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스법 독소조항에도 미국 투자하겠다는 SK하이닉스, 속내는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s, 칩스법)에 든 독소조항과 별개로 현지 패키징 공장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칩스법 세부조항에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 투자와 더불어 영업 기밀을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SK하이닉스는 기밀 유출 정도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계획대로 미국 투자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29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진행된 주주총회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신공장 투자 관련해서) 현재 거의 주별로 리뷰가 끝났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7월 150억달러(약 19조원)를 들여 미국에 첨단 패키징 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이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칩스법 세부조항에 붙였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은 공정, 수율, 소재, 판매가격 등 정보를 상무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국내 기업에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어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다른 기업에 비해 미국 투자에 대한 부담은 덜하다는 입장이다. 박정호 부회장에 따르면, 현재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지으려는 공장은 반도체를 배치하고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패키징 공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따라서 기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통상 업계에서는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칩을 완성하는 공정인 ‘전공정’을 핵심 기술로 여긴다. 고성능 반도체 설계나 미세 공정 등 첨단 기술 대부분이 전공정에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패키징은 전공정으로 만들어진 칩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방식이다.

박 부회장은 “전공정 공장을 짓는 기업에 비해서는 기술 유출 등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말처럼 각 기업이 민감하게 여기는 핵심 기술은 주로 전공정에 투입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비교적 첨단 기술 유출 우려가 적다고 판단, 미국 투자를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수요가 높은 편인데, 이는 모두 패키징 기술이 중요하다”면서 “미국 고객사는 주로 패키징 기술이 중요한 제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패키징 공장으로 수요를 맞추려고 한다”고 밝했다.

다만 칩스법 보조금 신청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고민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중국 공장 상황도 설명했다. 미국 상무부는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는데, 국내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상황을 고려해 지난해 10월 128단 낸드 등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1년 간 유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조치는 돌아오는 10월에 끝나기 때문에, 추가 계획이 필요한 실정이다.

박 부회장은 “미국 정부와 서로 좀 더 소통해야 할 것 같다”며 “회사도 나름대로 시간을 최대한 벌려고 하며, 각국 전략 및 계획을 변동하려고 한다”고 말해 유예 연장 요청 가능성을 열어놨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도 패키징을 중심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국에 현재 첨단 장비를 반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공장을 가동하지 않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손해다. 이에 첨단 장비가 필요 없는 공정을 중심으로 공장을 돌릴 거란 예측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첨단 장비가 없어도 가동이 가능한 패키징 중심으로 중국 및 글로벌 공장을 재편하고, 주요 기술력은 국내에서 다루는 방안을 옵션 중 하나로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현재의 반도체 경기 불황을 공급 유연성과 기술 개발로 극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SK하이닉스는 기술 우위로 향하는 변곡점에 위치해 있는데, 그간 기술력이 사업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AI 등 수요가 장기적으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회사는 사업 모델을 돌아보고 기술 우위를 유지하면서 고객 만족과 사업 성과를 높이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인텔 낸드사업부로부터 인수해 설립한 엔터프라이즈 SSD 자회사 솔리다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 4분기 기준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인수로 6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냈는데, 올해 안에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미국과 한국의 회사 문화가 다른데, 곧 문화적 시너지 창출에 성공해 기업에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작동할 것을 믿는다”며 “올해 안에는 반드시 가시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회사는 이번 주주총회 안건으로 ▲제75기 재무제표 승인의 건 ▲사외이사 선임의 건(한애라·김정원·정덕균)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한애라·김정원) ▲기타비상무의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을 상정했고, 모두 의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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