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 정보공개’ 불발, 이용자들이 열받은 이유

국내 게임사 매출 기반 ‘확률형 아이템’ 두고 논의
세계 4위 게임 대국, 이용자 보호 목소리 점차 커져
법안 통과 기류였다가 예상치 못한 반대 의견 제기
유무료 결합까지 확률형 아이템 정의…정보 공개 확대
임시국회 짝수달 열려…내년 2월돼야 재논의 전망

확률형 뽑기 아이템에 대한 정보 공개를 골자로 한 게임법(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가 불발됐습니다.

어제(2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김윤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업계가 자율규제를 잘하고 있다는 전제를 들면서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고 결국 논의가 흐지부지됐네요.

다음번 법안심사소위에서 최우선으로 게임법 개정안을 다루기로 했지만, 여느 때보다 통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가 또다시 고배를 들자 게임 커뮤니티에선 아쉬움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 감지됩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일반에선 확률형 아이템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해 관련한 반응이 전혀 없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네요.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 갈무리

참고로 2021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시장 점유율 4위(2020년 기준)의 국가입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뒤를 잇네요.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따돌렸습니다.

서구권의 대표적 게임 선진국인 영국마저 앞섰다니 놀라운데요. 인구수와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고려하면 군계일학의 성과입니다. 모바일게임 매출이 폭증하면서 이 같은 결과를 냈습니다. 이처럼 매출이 많이 늘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저에 확률형 뽑기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네요. 그 많은 돈을 쓰는 이용자 입장에선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가 최대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뽑을 때마다 확률 초기화’ 얼마나 돈 들어갈지 몰라

확률형 아이템 또는 뽑기 아이템이란 말 그대로 확률 기반으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보물상자 아이템을 말합니다. 어릴 적 문방구 앞이나 오락실의 장난감 뽑기 기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나, 현재 확률형 아이템과는 크나큰 차이점이 있네요. 문방구 뽑기는 모수(기계 내 상품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뽑기를 할수록 기계 내 상품이 줄어듭니다. 얼마 정도 돈을 들이면 상품을 뽑게 될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게임에서 확률형 뽑기는 모수 제한이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희귀(레어) 등급 상품 획득 확률이 10%라면, 매번 뽑을 때마다 이 확률이 적용됩니다. 운이 없다면 아무리 돈을 들여도 90% 실패 확률에 들어 내가 원하는 상품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용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이른바 천장 시스템이 나왔습니다. 유료 뽑기가 누적돼 천장에 닿으면 희귀 아이템 보상을 주는 식이죠. 보통 10번 뽑으면 1번 정도 상품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희귀 등급 중에서도 뽑기 확률이 희박한 더 좋은 상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경우는 천장 보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게임이 많네요. 단순하게 접근할 부분은 아닙니다. 뽑기 확률을 높이는 유료 아이템도 있을뿐더러 게임마다 다양한 재료 결합으로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뽑기 종류와 결합을 어떻게 할지 경우의 수가 대단히 많아집니다.

어찌 됐건 국내 모바일게임에선 어느 정도 돈을 들여야 내가 원하는 상품을 뽑을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산 게임이 오히려 이용자 입장을 배려한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중국산 게임엔 보통 VIP 시스템이 있습니다. 돈을 쓴 만큼 높은 등급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는 시스템인데요. 백화점 멤버십 등급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내 게임에선 돈을 써도 이렇다 할 혜택이 없다 보니, 말 그대로 복불복인 상황이죠.

유료만 정보 공개? 유무료 결합까지 포함

이용자들 사이에서 ‘돈을 주는데도 깜깜이 아이템 운영이 맞느냐’는 불만이 잇따랐지만, 업계에선 상당 기간 ‘아이템 확률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반대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래전 게임물관리위원회(옛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업계에 자료를 요청하고 미팅을 요구했지만, 사실상 거부당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정치권에서 법적 규제 움직임이 보이면서, 업계가 등 떠밀려 자율규제를 내세우게 됩니다. 게임사 설명을 빌자면 마침내 영업비밀을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게임 아이템 확률을 공개한 이후, 실제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는 얘기는 들린 적이 없네요. 오히려 뽑기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매출이 더 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자율규제 시행기준 갈무리

자율규제에선 정보 공개를 유료 아이템으로 한정해 놓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습니다. 현행 자율규제에선 무료 아이템을 넣은 유무료 결합 아이템은 정보 공개에서 빠집니다. 자율규제 취지를 회피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게임사가 수익모델을 설계하면서, 유료보다 유무료를 결합해 뽑기를 돌리는 시스템에 가중치를 두고 충분히 운용 가능합니다. 이용자 입장에선 유무료 아이템 결합으로 나오는 결과물에 대한 뽑기 확률까지 보고 싶어 하지만, 방법이 없죠.

이상헌 의원실이 내놓은 게임법 개정안에선 확률형 아이템을 유상 아이템에 무상으로 얻은 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까지 포함해 정의합니다. 무상 아이템 간 결합은 제외하고요. 아이템 정보 공개를 확대하자는 내용인데요.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의 근거가 됐습니다.

김윤덕 의원의 역차별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상 중국산 등을 포함한 외산 게임에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 적용하기엔 걸림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게임법 개정안 논의 자체를 뒤집는 것이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해 역차별로만 접근한다면 더 이상 게임 규제는 불가합니다.

정확히 따진다면, 확률 정보 공개는 규제가 아닌 ‘조치’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요. 정도를 넘지 않도록 막거나 금지하는 법안이 아닙니다. 상품 정보를 추가 공개하라는 것인데요. 업계에선 여전히 영업비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번 규제를 시작으로 추가 규제가 들어올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상헌 의원실 측은 “개정안 통과에 대한 의원 간의 공감대는 이뤘으나, 예상치 못한 어제 반대 의견과 문체부에 대한 자료 요청으로 앞으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상황을 전했습니다. 임시국회는 짝수달에 열립니다. 올해와 내년 1월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인데요. 2월에 이르러야 법안심사소위에서 다시 다룰 수 있겠습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 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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