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IT] 엉따가 매달 유료라면 쓰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이종철의 까다로운 IT,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올 암담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겁니다. 바로, 차량 하드웨어 구독.
상상해보세요. 어떤 스마트폰이 출시됐어요. 그런데 전화 거는 건 되는데 받는 건 구독 서비스해야 된다. 아니면 전화 30초까지는 그냥 되는데 그 이상은 구독료를 내야 된다. 이러면 여러분 그 폰 사시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시작은 테슬라였습니다. FSD, 반자율주행이죠. 써보면 아주 편한데 이걸 유료로 팔았습니다. 그 뒤에는 구독식으로 바뀌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어? 신기하네? 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소프트웨어에 가깝습니다. 하드웨어를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라이다를 안 쓰고 카메라만 씁니다. 하드웨어보다는 AI 방식인 거죠.
그런데 벤츠가, 국내에서 전기차 모델인 EQS를 공개하면서 후륜 조향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넣었죠. 후륜 조향이 뭐냐면, 원래 전륜구동은 앞바퀴만 움직이는 건데 뒷바퀴도 움직이면서 차량 동작에 편리함을 주는 거죠. 원래는 10도까지 회전하는데, 구독을 안 하면 4.5도까지만 꺾입니다. 그런데 큰 차의 경우에 후륜 조향 각도가 클수록 압도적인 성능이 나거든요. 예를 들어서 후륜이 전륜이랑 같은 방향으로 꺾어주면 유턴, 좌우회전 반경이 크게 줄어들고요. 좁은 골목길 갈 때도 유리하겠죠. 주차, 직진 주행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건 엄연히 하드웨어 기능입니다. 기본적으로 차에 탑재돼 있고요. 그냥 못 쓰게 막아놓은 것뿐이죠. 그럼 차가 좀 싸냐고요? EQS 시작 가격은 1억3890만원입니다. 이돈을 내고 또 구독을 해야 하는 거죠. 1년 50만원, 3년 100만원. 그리고 출력을 높이는 기능도 구독 서비스를 할 예정인데요. 제로백이 약간 빨라집니다. 0.8초 정도 준다고 하네요. 여러분, 그냥 0.8초 기다리세요.
자, BMW는 한술 더 떠서 손따, 엉따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도입하려다가 소비자들에게 처 맞았습니다. 이게 되면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항상 돈을 더 내야 되겠네요. 자, 만약 이게 성공하면 다음은 뭐가 되겠습니까? 에어컨 아닐까요? 에어컨 안 되는 차, 여러분 타시겠습니까? 지옥아닐까요?
업체들이 이런 구독 서비스를 내놓는 건 당연히 수익 때문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요. 전통적인 제조사의 수익 추정치는 3년 평균 총 1090억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142조원이죠. 그런데 그동안 구독 서비스를 통한 수익의 추정치는 1180억달러, 약 154조원입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수익이 더 좋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거죠. 소프트웨어가 아닌 영역까지 이 수익모델을 갖고 간 겁니다.
극소수 자동차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자동차도 전자제품이다. 그러니까 구독 서비스를 하는 거다. 전자제품만 10년 이상 다룬 제 입장은 다릅니다. 하드웨어적 제한을 거는 건 전자제품의 영역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폰을 샀어요. 애플 뮤직, 애플 tv+, 안 쓰고 멜론, 넷플릭스 쓰면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못 하게 하고 앱을 못 쓰게 하고, 전화를 못 하게 한다-이건 스마트폰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폰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자동차는 그렇지 않고요.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죠. 차라리 차에 안 달고 나와서 옵션이었다-라고 했으면 우리 불만 없었을 겁니다.
자 그럼 전자제품 업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MS 사례를 보겠습니다.
MS가 최근 서피스 프로 9을 내놨죠. 사양은 다른 노트북 대비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런데 MS는 클라우드 회사입니다. 여기서 기업용으로 기기를 관리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팔아요. 만약 직원들이 서피스로 원격 근무를 하면 보안이나 관리 문제 생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엔드포인트 관리 보안 서비스를 팝니다. 이 관리 서비스, 어느 기기에서 제일 잘 쓸 수 있을까요? 서피스에 제일 잘 맞게 해놨죠. 이런 게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의 본질이에요. 기기 그대로도 아무 문제없지만 같이 쓰면 훨씬 좋아진다-이런 거죠.
자동차는 앞으로 집에 준하는 공간이 될 겁니다. 그러면 그 공간에 대해 정의하고 필요한 것들, 음원, 내비, 영화, 쇼핑 이런 것들을 고민했어야 해요. 이게 소프트웨어적 접근 방식입니다. 소프트웨어의 수익 모델만 따온다고 되는 게 아니죠. 그런데 멀티미디어 생태계, 이미 커넥티드 카 시작도 전에 애플, 구글에 내줬습니다. 그래서 빈약한 수익모델을 하드웨어 제한으로 풀기 시작한 거죠. 잘 생각해보세요. 생태계가 애플 구글에 넘어간 건 소비자 잘못이 아닙니다.
자, 자동차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 이미 금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난 11월에 뉴저지주 민주당 소속 폴 모리아티·조 다니엘슨 하원 의원이 서비스 일부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죠. 제조사의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한 서비스나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의 구독형 서비스는 허용하지만, 제조사가 지속적인 비용을 투입하지 않는 하드웨어 기능은 금지하자-이런 내용입니다. 통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반대 움직임이 법제화되기 시작했다-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물론 전기차 시대가 오면서 자동차 업체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자율주행이 시작되면 차 오래 탈 거예요. 그리고 전기차 부품 수는 내연기관차 1/3 수준이죠. 그렇다고 해서 기능을 있는데 못 쓰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안전에 영향을 주는 건 문제겠죠. 제조사들이 더 현명한 구독 서비스 내놓고 와 차에선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쓰는 거보다 더 좋아-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막 사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할 거라고 봅니다.
자, 저의 마지막 소망은 국산차들이 이걸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 겁니다. 한 10년쯤 지나면 우리 모두 운전 안 하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까지 제조사들이 좋은 서비스 만들어서 우리 모두 차 안에서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그때까지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빵빵!
영상제작. 바이라인네트워크
촬영·편집. 바이라인네트워크 영상팀 byline@byline.network
대본. <이종철 기자>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