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만원짜리 NFT 시계, 당신이라면 사시겠습니까?
“지금 아트 씬(Art Scene)에서 비싸게 팔리고 인정받는 것이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이라면, 50년 뒤에는 어떤 아트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시계’를 주제로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한남동 마더에서 NFT 전시를 연 그래픽 아티스트 이덕형의 말입니다. 작가의 활동명은 DHL. 네, 그 물류회사의 패러디이자 본인 이름의 이니셜입니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용산 드래곤시티, 가수 박재범이 수장으로 있는 힙합 레이블 AOMG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가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났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부문에서 이름이 알려진 아티스트죠.
이덕형의 전시 파트너는 D2C 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입니다. 더 정확히는 블랭크의 자회사 스튜디오XYZ죠. 블랭크 창업자인 남대광 대표를 필두로, 웹3.0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웹3.0 내에서 기회를 찾아 유의미한 서비스를 내겠다는 것이 이 팀의 목표입니다. 발족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이 두 번째 프로젝트로, 프로필 이미지(PFP)를 신규 NFT로 발행한 것이 이들의 첫번째 시도였죠.
이 전시에 왜 관심을 갖나?
우선은, 이 전시의 주제와 형태가 흥미롭습니다. ‘왈츠 무브먼트(WALTZ MOVEMENT)’. 낭만주의 시대를 완전히 정복했던 왈츠는, 19세기 유럽의 수많은 청춘을 음악에 맞춰 돌고 돌게 했죠. 단순하면서도 반복되는 왈츠의 특성은 정해진 원을 째깍째깍 한 바퀴 돌아 시간을 완성하는 시계를 연상시킵니다.
왈츠가 아름답듯, 제 용도를 잃어버린 시계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이덕형과 스튜디오XYZ가 첫 NFT 전시의 테마로 시계를 이끌어낸 것은, 디지털 시대에 용도가 달라진 대표적 기기라서입니다. 시간은 현대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나 시계의 역할은 그렇지 않죠.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아도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계는 그 역할을 달리하며 살아남고 있습니다. 전시를 해설한 이현종은 “오늘날 시계는 시간을 보여주는 기계적인 역할보다 미적인 영역에서 가치가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을 보기 위해서만 시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스마트워치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람들은 애플워치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심미성을 꼽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예쁠지, 착용함으로써 내 이미지가 얼마나 쇄신될 수 있을지를 효용의 핵심으로 봤죠.
전시도 예쁘게 만들어진 시계를 진열했습니다. 시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내는 서른점의 디지털 시계를 NFT로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NFT를 실물 하드웨어 안에 담았습니다. 정사각형 하얀 하드웨어 틀은 애플의 롤모델로 알려진 디터람스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사각형 시계 틀 안의 디지털 아트는 컴퓨터 코드에 따라 실시간으로 시간 화면을 생성해냅니다. 하루 스물네시간은 8만6400초로 환산되죠. 매 초 다른 그래픽을 코드가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시계 화면은 하루에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하나의 작품에서 총 8만6400개의 화면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 작품은 하나에 480만원입니다. 다소 비싸게 느껴지시나요? 전시 정식 개막 전, 프리 오픈에 모두 판매됐습니다. NFT 작품이 완판된 것은 새로운 뉴스는 아닙니다. 가격 진폭이 크긴 하지만, 더 비싼 값에 팔린 NFT 작품도 많죠.
하지만 이 전시는 NFT 작품을 구매할 때 사람들이 갖게 되는 원초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유명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고, 이것이 진품임을 NFT로 보증하면서, 작품 자체를 실물로 손에 쥘 수 있으니까요. 스튜디오XYZ는 향후 하드웨어 틀이 없는 디지털 시계를 NFT로 발행,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입니다. 심미성에 기능을 더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NFT 작업과는 차별화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죠.
남대광 대표는 “NFT 시장에서 실용성이나 기능성에 대한 부분이 없고, 굉장히 작은 풀에서만 이를 향유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시계는 시간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능성이 있고 이를 거실이나 침실 같은 공간에서 쉽게 경험함으로써 NFT 시장을 대중에 가깝게 만들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설명합니다.
전시 기획은 남대광 대표와 이덕형 작가가 “소주 한 잔 하면서”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다음 먹거리로 NFT를 보고 있는 커머스 기업이 미디어 아트의 대중화를 고민해 온 예술가와 함께 고민한 결과입니다.
D2C하던 블랭크는 왜 NFT 전시를?
많이들 아시다시피, 블랭크는 D2C로 성장해 온 회사입니다. 브랜드를 만들어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의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빠르게 성장했죠. 하지만 이 모델은 경쟁자가 빠르게 생겨났고, 소비자들은 SNS 마케팅에 쉽게 질려 버렸습니다. 기업이 하나의 모델로, 변화 없이 성장할 수는 없기에 블랭크 역시 다른 먹거리를 고민합니다.
블랭크가 찾아낸 것은 브랜드의 지적재산권(IP)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IP화 하는 것도 있지만, 외부에서 IP로 사업을 잘 하고 있는 영차컴퍼니 같은 회사를 인수하기도 합니다. 영차컴퍼니는 국내에서 디즈니와 협업, 여러 굿즈를 만들어 파는 곳이기도 한데요. 이런 IP 사업을 조금 더 새롭게 시도하고자 만든 자회사가 스튜디오XYZ죠. 블랭크는 스튜디오XYZ를 통해 IP와 예술, NFT를 결합하는 작업을 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남대광 대표는 미래 사업의 방향성을 블록체인과 웹3.0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예술 영역에서의 NFT를 발판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2021년 크리스티 옥션에서 6930만달러에 낙찰된 비플의 ‘에브리데이: 더 퍼스트 5000데이즈’ 이후로 관련 시장이 성장했고, NFT 아트 컬렉터나 화랑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판단의 근거 중 하나입니다. 예술품은 진품의 보증이 매우 중요한 영역이고, 예술가들도 지속적인 수익 모델이 필요한데 이를 기술 회사가 서포트 함으로써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죠.
“시간은 공평하다”
왜 시간을 주제 삼았냐고 물어본 질문에 나온 이덕형 작가의 답입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졌고, 예술을 향유할 권리 역시 대중 모두에게 있습니다. NFT는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춰줄 것이라 평가받고 있지만요, 그러나 예술의 본질이 구별짓기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NFT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게 될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NFT의 출현이 예술가와 이를 사업화하려는 기업에는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술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대중에게는 어떨까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