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라인네트워크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납니다. IT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 그리고 기사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업계 내 실력자들의 얘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이런 분들을 최근 신조어로 ‘짬바’라고 칭하더군요. 짬바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유와 노련미를 뜻합니다. 성공한 창업자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죠.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일궈온 열정피플의 연재를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과학키트 만지던 소년…오픈소스 DBMS 개발 이끌어
“기초 공사가 중요, 유행보다 자신만의 기술로 승부하라”

IT 개발자들 사이에는 “노안이 오면 준비해야 한다”는 슬픈 우스개가 전해 내려온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전직 혹은 은퇴다. 일이 취미가 아닌 이상 은퇴는 힘들테고, 보통 관리직으로 옮기거나 고문이라는 명함을 달고 현장에서 물러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늘도 현장에서 직접 코드와 씨름하는 시니어 개발자가 있다. 코딩을 시작한 지 37년. 사회에서 ‘코딩밥’을 먹은 시간으로 좁혀도 25년이 넘는 김병욱 큐브리드 이사(사진)가 주인공이다. 큐브리드 연구소 개발 3팀장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코딩을 할 것”이라며 “기존 것을 답습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스킬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코딩 사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생인 그는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들이 세운상가에서 사 온 라디오나 과학키트를 뚝딱거리는 게 10대 소년 김병욱의 일상이었다. 기계와 컴퓨터에 관심이 커진 건 당연지사. 8비트 애플 컴퓨터에서 돌릴 테트리스를 만든 게 그의 첫 코딩 경험이었다.

“사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코딩은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어요. 당시에 또 컴퓨터 산업이 막 태동하는 단계여서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진 부분도 있었죠.”

코딩은 고사하고 IT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 원서를 참고해 일주일 만에 만든 테트리스는 조악했지만 코딩에 대한 불씨를 지피기에는 충분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20대 청춘을 오롯이 개발 공부에 바쳤다.

정보통신공학 박사가 된 김 이사가 사회에 뛰어든 시기는 벤처 붐과 맞물린다. 수많은 닷컴 기업이 생겼고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IT 국가로 나아가는 시기와 발걸음이 맞물렸다. 그는 “본래 교수를 하려고 했지만 인연이 잘 닿지 않았다”며 “열풍이 일어난 벤처 업계와 함께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사까지 했으니 스킬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테다. 가장 사랑하는 일이 코딩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게임과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 연구개발에 매진하던 그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애플리케이션 제작까지 발을 들였다. 안드로이드 코딩을 통해 배경화면 앱을 만드는가 하면 사전 콘텐츠를 담은 앱도 만들었다.


벤처 붐에서 모바일의 시대, 모바일을 넘어 블록체인까지 등장한 지금의 2022년. 50대 중반 개발자의 눈에 우리나라 IT 산업은 어떻게 비칠까. 김 이사는 “시장이 만들어지는 시류를 보고 개발자들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우리나라 SW 시장은 웹, 모바일, 게임, 그리고 블록체인까지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뉜다는 게 김 이사의 말이다. 여기에 최근 사회의 근간 기술로 부상한 인공지능(AI)까지 확실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응용 SW 분야로 트렌드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니 새로 시작하는 개발자들도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김 이사는 묵묵히 뒤를 받치는 개발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 SW가 결국은 토대가 된다는 뜻이다. 그는 “(개발은) 결국 패턴을 찾는 것이 기본”이라며 “찾아낸 패턴을 갖고 룰을 만들어내는 조합 과정이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또 트렌드가 바뀌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라서 유행만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개발도 건설과 같은 맥락으로 기초공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컴퓨터 시스템의 가장 밑부분을 잘 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알고리즘(로직)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스스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고리즘을 만들지 못한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이 무너지듯 어느 순간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를 만드는 큐브리드에서 하는 일도 이와 연결된다. 데이터를 쓰지 않는 SW는 없다. DBMS는 모든 SW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다. 특히 큐브리드는 오픈소스이니만큼 커뮤니티에서 나온 새로운 코드를 들여다보거나 유지보수, 패치가 항상 이어져야 한다. 김 이사는 “오픈소스의 완성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진다”며 “내가 수정하고 패치함으로써 제품이 더 탄탄해진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험의 힘은 강하다. 개발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후배들에게 해줄 말은 없을까. 경험치의 가치는 어디서 발현될까.

그가 생각하는 오랜 경험의 장점은 문제 분석과 분해 능력이다. 재빨리 코딩하는 것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점을 빨리 짚어내는 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다. 김 이사는 “개발은 코딩에서 시작해서 코딩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코딩 ‘능력’은 효율적 코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막 입문한 개발자야 스킬 쌓기에 정신없겠지만, 어느 정도 짬이 쌓인 전문 개발자라면 빠른 시간에 결과로 평가받기보다 분석·설계·코딩에 이르는 전 과정을 긴 호흡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긴 과정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시간 확보를 회사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상황의 등급을 나눠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고, 우회할 것인지 바로 해결할 것인지 결정하는 판단력이 그가 생각하는 좋은 개발자의 능력이다.

기업은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 구직자들은 자리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이 미스매치가 특히 심한 게 IT 업계다. 좋은 개발자의 역량은 알겠는데 또 기업은 이런 사람 한명 모시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김 이사는 “예전보다 근무 환경이 나아졌다고 해도 사람을 갈아서 게임 만든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돌지 않느냐”며 “분명 수요는 늘어나는데 힘든 환경이다 보니까 공급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높은 급여나 좋은 복지, 워라밸을 갖추면 금상첨화겠지만 구직자와 기업의 요구가 딱 맞아떨어지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현재 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갈수록 좋아지고, 전공자가 아니어도 업계에 발을 들이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어 시간이 약이 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이사는 “단 몇 개월 만에 상황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장이 성숙해지는 과도기에 있는 것은 맞다”고 말해 차츰 IT 업계에서의 구인난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채로운 기술에 발맞춰 많은 개발자를 확보해야 하는 점은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더 이상 선배들이 겪었던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고난의 역사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젊은 날로 돌아가도 다시 개발자의 삶을 살까. 후회하는 점은 없을까. 김 이사는 “기록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 “회사에도 기록하는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묻히고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면 찾아내기 힘들다”며 자신만의 히스토리 만들기를 추천했다.

또 “자기 발전만 생각하면 코딩은 힘든 작업일 수 있다”며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는 SW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그 작업에 기여를 한다는 생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딩은 코드를 통해 명령을 내리고 원하는 결과를 내는 작업이다. 그는 인생사 자체가 코딩이라고 여긴다. 오랜 시간 퍽퍽한 IT업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을 거다. 지난해에는 틈틈이 써온 수필과 시를 담아 ‘마음 코딩’이라는 책을 냈다. 필명으로는 ‘이하 여백’을 줄인 하백을 썼다. 숫자와 코드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 그에게도 여백이 소중했을 테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 책 이름은 ‘마음 버스 정류장’. 인상 좋은 이 신사는 다시 태어나도 개발자가 될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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