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최태원이 후배 기업가에게 하는 조언

“과거의 기업은 이익 극대화가 선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최고의 가치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에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내라는 것’이 요구된다.”

기업이 명분을 갖고 사회적책임(ESG)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이 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부터 나왔다. 최 회장은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스파크랩 데모데이에 선배 기업가로 참여해 “ESG를 비용으로 생각하지 말고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데모데이는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대상으로 각자의 비전과 강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날 최 회장의 데모데이 참석은 이한주 대표의 제의로 이뤄졌다. 두 사람은 각각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전인 2019년에도 스파크랩의 데모데이에 한 차례 참여한 적이 있다. 이한주 대표는 최 회장을 패널로 초청한 이유로 “회장 취임 이후 SK그룹이 많은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다”면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AI와 같은 신사업을 일구면서 사회의 핵심 영역에 투자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최 회장이 데모데이에 모인 기업가, 투자자들의 선배라는 점을 짚은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특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는데,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ESG’가 기업에 비용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을 반복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기업에 요구되는 역할이 바뀌고 있으므로 이 트렌드를 따라가다보면 ESG의 관점 안에서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많다는 이야기다.

그 대표적 사례로 SK그룹이 2018년 투자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모빌리티 기업 ‘그랩’을 꼽았다. 최 회장은 자신이 최근 그랩의 창업자인 안소니 탄 대표를 만나 나눈 대화를 공유했는데, 그랩의 창업 아이디어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최 회장은 “안소니 탄 회장이 스타트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겠다는 것보다 교통의 약자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고파서 이 모델을 시작했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더라”며 “모빌리티에 이어 그랩이 페이 솔루션을 만든 것도 동남아시아에서 계좌가 없는 인구가 40%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여러분이 돈을 쫓아서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기 꽤 어렵다”며 “조금 더 명분을 갖고 여러분이 하는 (사업) 모델을 ESG 관점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목표를 갖고 회사의 스토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내년 말까지는 소나기를 피해야 할 때”

거시 경제가 힘들고 투자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기업가는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선 소나기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지금은 소나기가 내린다고 보셔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소나기가 계속 내릴 때 세차를 권하지 않듯이, 그간 갖고 있던 계획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소나기를 피해) 스터디를 꾸준히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돈이 씨가 마른 지금 상황에서 (투자처를) 구하려면 여러분의 가치를 싸게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다리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빠른 시간 내에 지금의 투자 한파가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벤처투자업계의 큰 돈줄 중 하나인 사모펀드(PE) 역시 지금은 투자 의향이 없다는 것을 언급했다. 이한주 대표가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느냐”고 묻자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년 연말까지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각자의 가치를 올려 놓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낫다”고 조언했다. 과거와 같은 단일 마켓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으니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해 앞날을 대비하라는 이야기다.

최태원 회장이 스파크랩 이한주 공동대표(오른쪽)와 기업가를 위한 조언을 주제로 대담 중이다.

운으로만 쌓은 금자탑은 없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창조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을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계속해 운좋게 성공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야기도 했다. 어떤 기업이든 계속해 운이 좋을 수는 없으며, 성공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실패와 경험이 쌓여 만들어내는 것이란 뜻이다. 이런 경험을 쌓는 것이 결국은 그 기업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

이는 이한주 대표가 SK그룹의 신사업이 잇달아 성공하는 걸로 보인다며 그에 대한 비결을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이었다. 최 회장은 “실패가 없이 계속해서 성공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주사위를 던졌을 때 계속해서 숫자 6만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똑같은 얘기”라면서 “SK그룹에서도 하나의 투자를 하기 위해서 100건 이상의 스터디를 하는데 그렇게 많은 스터디 후 투자를 결정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덧붙였다.

성공에 왕도가 없어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여러분의 선배가 왜 성공을 했는지 분석을 해보면, 처음에는 운좋게 성공하는 케이스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계속적인 성공을 운으로 가져가기는 어렵다”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스토리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능력을 쌓으면 설사 회사나 제품이 실패하더라도 여러분의 내공은 계속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소통’과 ‘데이터’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각각의 스타트업이 제기하는 문제나 제시하는 솔루션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투자는 얼마나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이중 엑시트한 곳은 어느정도 되는지, 정말 큰 회사가 된 곳은 어떠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지 등에 대해 데이터를 갖고 논의하는 장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짚은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데이터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과 솔루션이 필요한데, 이는 정부의 관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실리콘밸리 문화가 활성화 된 것은 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면서 “그런데 우리나라의 특징은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자꾸 법으로 해결해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좋은 뜻으로 규제를 한다고 해도, 규제를 했다는 것은 자유를 구속한다는 이야기가 되고 결국은 그 규제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 상당히 큰 제약 조건이 될 수 있다”면서 “(실리콘밸리와 같은 문화는) 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협업과 소통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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