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로 시작한 가상인간 열풍…현재는 어떤가

‘뉴진스’라는 걸그룹 다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난 8월 데뷔한 뉴진스는 획기적인 콘셉트로 데뷔한 지 한 달 여 만에 K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걸그룹입니다. 방송과 SNS를 넘나들며 여러 영향력을 미치는 모습인데요.

로지 공식 인스타그램 中

지난해 이맘쯤에도 엔터계에서 센세이션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상인간 ‘로지’입니다. 로지의 등장으로 가상 인간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기업들은 재빠르게 가상 인간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야 이를 한둘씩 공개하고 있지만 영 시원찮은 반응에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MBN 예능 프로그램 ‘아바타 싱어’는 ‘복면 가왕’과 비슷하게 아바타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무대에 올라 목소리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인데요. 회당 10억이라는 역대급 제작비를 썼음에도 0%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다소 떨어지는 아바타 퀄리티와 어색한 표정, 불편함 움직임, 오그라드는 CG 연출 등 해당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돈 아깝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MBN 프로그램 ‘아바타 싱어’ 캡처

‘가상 인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JTBC 또한 지난달 아바타를 통해 소개팅을 진행하며 진정한 연인을 찾는 데이팅 프로그램 ‘러브in’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싱글남녀 8인이 러브타운이란 공간에서 출연진의 실제 모습이 아닌 아바타를 앞세워 소개팅하고, 아바타에게 다양한 지령을 내리며 자신의 인연을 찾아 나서는 내용입니다.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 또한 그야말로 ‘바닥’입니다. 13일 자로 종영한 해당 프로그램은 6일 기준 0.4%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가상 인간’에 관심이 쏠린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산업의 거품이 꺼진 듯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가상 인간 산업은 점차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가상 인간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6배 성장한 14조원에 달합니다. 이는 인간 인플루언서 매출 규모인 13조원을 추월하는 수치며 지금까지 국내에 등장한 가상 인간 수만 1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요, 산업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도 국내에선 ‘로지’를 이을 성과를 낼 가상 인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방송, 엔터, SNS 등 여러 분야에서 가상 인간 인플루언서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지만 ‘로지’의 영광을 잇는 주인공은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인 겁니다.

쏟아져나오는 가상 인간… 반응은 ‘씁쓸’

가상 인간 사업에 가장 주력 중인 업계는 바로 게임사입니다. 스마일게이트는 가상현실(VR) 게임 ‘포커스 온 유’의 캐릭터 ‘한유아’를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제작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한유아는 YG케이플러스와 전속 계약을 맺고 5월 음원 ‘I Like That’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공개했는데요.

한달 전 한유아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커버곡 영상. 데뷔 뮤직비디오 첫 공개 5일 만에 600만 조회수를 기록했던 과거에 비해 낮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첫 공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600만회를 돌파하는 등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듯 보이지만, 국내 음원 기록은 멜론차트 1000위에도 들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이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채널에 커버곡을 올리는 등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나 사람들의 관심은 떨떠름합니다. 이때문일까요? 사측은 한유아의 남은 연내 공식 활동은 데뷔곡을 끝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습니다.

넷마블 또한 작년 8월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올해 안에 4인조 가상 인간 걸그룹을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VR 플랫폼 개발, 가상 아이돌 매니지먼트 등 게임과 연계된 메타버스 콘텐츠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사업을 펼칠 계획을 공개했는데요. 그러나 걸그룹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넷마블 관계자는 “현재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변동 없이 올해 안으로 걸그룹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크래프톤의 ‘애나’,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 넷마블의 ‘제나’

크래프톤의 버추얼 휴먼 ‘애나’는 이달 오리지널 음원 발매를 시작으로 엔터테인먼트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을 넓혀갈 예정인데요. 지난 8일 공개된 데뷔 음원 ‘샤인 브라이트’의 티저 조회수는 13일 기준 약 140만회를 기록해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례인 한유아에서 보았듯 유튜브 조회수에 비해 낮은 음원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를 성공의 지표로 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습니다.

가상 인간 산업은 가능성 있을까?

엔터업계는 잔인할 정도로 새롭고 획기적인 것만을 원합니다. 가상 인간 산업의 인기 또한 로지의 성공으로 잠시 반짝였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도 가상 인간을 찾지 않는 모습입니다.

가상 인간의 한계에 대해 최홍규 EBS 연구위원은 “가상 인간도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과 같은 콘텐츠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라는 정체성과 완벽한 인성을 구현했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 개발한 기술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더 사람 같은 가상 인간을 원하면 원할수록 이에 대한 생산량이 늘어나 일개 콘텐츠 형태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1998년 공개된 사이버가수 아담 (출처 : 아담소프트)

‘불쾌한 골짜기’라고 들어보셨나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유사점이 높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가상 인간 개발에 있어서 이 부분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요즘 가상 인간들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인플루언서’로서 소통을 중심으로 개발 및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반응인데요.

예컨대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의 경우에도 성명, 출생, 성격, 취미 등이 이미 마련돼 사람들에게 공개됐고 사람들은 이러한 한유아의 프로필을 참고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발간한 ‘2021 KISA REPORT 10월호’에 따르면 버추얼 휴먼은 기존의 가상 캐릭터들과 다르며, ‘소통’ 요소를 통제했다면 버추얼 휴먼 시장의 성장이 지금처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상 인간 산업이 ‘원히트 원더’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더이상 ‘얼마나 사람 같은지’ 같은 기술적 측면보다 트렌드를 반영한 브랜딩과 포지셔닝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수준 높은 기술 구현은 기본으로 가져가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인만큼 그들에게 공감될 만한 ‘스토리’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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