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 분석 끝… 이제는 논란 종결할 때

게임 업계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자 합니다. 게임이 문화가 아니라는 자들에 대항하여 당당히 맞서고자 합니다. 지능적으로 변신해 온 그들의 논리에 맞서고자 합니다. (중략) 어쩌면 그들은 이제 게임뿐 아니라 인터넷, 유튜브, 영화, 만화에도 이러한 굴레를 씌우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VS

보건복지부 “보건학적으로 봤을 때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만한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국제적 기준을 국내에도 도입해 게임중독 현황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수준인지 중독 수준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3년 전 게임 업계를 뒤집어 놨던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 질병코드와 관련한 논의가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최근 국무조정실 주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관련 민관 협의체(이하 민관협의체)’가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문제와 관련한 세 개의 연구용역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민관협의체는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 질병분류 개정안을 채택함에 따라 이의 국내 도입과 관련한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한 협의체다. 2020년부터 진행된 방안 모색을 위해 진행한 공동연구 실태조사는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 ▲게임이용 장애 국내 실태조사 기획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으로 나눠 진행했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자, 업계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19년 WHO의 ‘게임 중독은 질병’이라는 결정에 복지부가 게임중독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을 고려하자 집단마다 다른 주장이 펼쳐졌다. 민간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사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정부가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해당 문제와 관련해 연구를 진행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에 민관협의체는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연구를 끝으로 최근 세 건의 관련 연구 용역을 모두 완료했다. 민관협의체는 의료계, 게임계, 법조계,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의 민간위원과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청 등 정부 부처로 구성했다.

민간협의회가 ‘게임중독 질병코드’와 관련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지난 1월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분류한 ‘WHO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이 발효됐다. 국내의 경우에는 게임중독 질병코드 도입 여부가 빨라도 2025년 개정 시 결정될 예정이다. 통계청이 통계법에 따라 5년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개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2년 동안은 게임 과몰입이 질병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각 집단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면 남은 3년 동안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할 시간이다.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 과학적이지 않다

먼저, WHO의 결정에 대해 여태껏 의학적, 공중보건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의견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갈렸다. 이에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 조사는 WHO의 게임중독 질병 코드 등재 결정을 두고 객관적 검증을 실시했다. 연구는 WHO가 게임중독 질병화 결정에 참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44편의 논문을 분석했고, 각각의 논문들에서 몇 가지 오류를 발견했다. 즉, WHO의 질병 코드 등재가 과학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게임중독과 물질중독∙타행동중독과 비교한 뇌 연구를 분석한 논문에서 표본 수가 100명 이하이며, 10~40명 사이의 표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다수 존재했다. 표본이 적다는 것은 연구 결과 해석에 있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 게임중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시험한 일곱 편의 논문 중에 실제 게이머들을 추적한 연구는 다섯 편에 불과했다. 아울러 지속성과 안정성이 밝혀졌음을 뒷받침하는 논문은 한 편이었고, 네 편은 시간이 갈수록 결과의 유의미가 감소한 것을 보고한 논문이었다.

WHO가 참조한 논문의 과학적, 경험적 근거 분석 결과 (출처: 보건복지부)

WHO가 참조한 여러 연구에선 게임중독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볼 수 있었는데, WHO에 긍정하는 집단은 ‘실제 진단이나 치료에 있어서 기대 유익이 있다’는 점, ‘유병률의 차이는 원래 사회문화적인 영향에 따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충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는 점, ‘부모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유병률의 편차가 큰 것은 중독 현상으로 보기 무리가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도입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연구를 진행한 안우영 서울대 교수는 “연구들에 여러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은 일관되게 확인되었지만 보상활동, 사회적 관계, 가족 관계를 나타낸 연구에선 일관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불일치하는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 정신건강, 심리학 및 게임 산업 전문가의 협업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덧붙여 연구를 설계할 때 게임 장르 및 게임 시간과 같은 추가적인 게임 관련 요소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게임 자체가 아닌 게임의 사회적 측면이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질병코드 도입, 불러올 사회적 파급은?

가장 최근 발표된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는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 산업‧문화‧교육‧보건의료 등 사회 여러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코드 도입에 있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긍정]

•의료: 질병코드가 도입된다고 해서 크게 변화되는 점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해당 질병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치료 방법이 연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제도 내에서는 게임중독에 대한 전국적인 통계 데이터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봤을 때, 단기적으로 혼란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립]

•교육 : 낙인 효과에 대한 우려가 깊다. 청소년의 경우 또래 집단 혹은 부모 사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질병분류 체계가 존재하면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위험군을 발견하기 쉬울 것으로 판단된다.

[부정]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인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크게 우려된다. 질병코드 도입으로 초래된 사회적 낙인 효과로 게임 이용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게임산업 종사자는 질병 제공자로 인식될까 우려된다.

•문화: 질병코드 도입은 문화 향유의 위축 뿐만 아니라, 창작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중독’은 물질중독이나 행위중독과 다르며, 게임 과몰입 또한 창작 지향적인 중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창작 의욕을 저해하는 것 더 나아가 창작 자체를 범죄시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울러, 질병코드 도입으로 직접적인 손실이 예상되는 게임산업과 달리 사회적 비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질병코드 도입에 따라 1차 연도에 전체 산업 규모의 약 20%, 2차 연도에 약 24%의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했다. 총 게임산업의 규모를 20조원으로 가정할 경우, 1차 연도에 약 4조원 2차 연도에 약 4.8조원의 게임산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총생산 감소효과 5조6192억원, 취업 감소기회 인구 3만6382만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산업에 미치는 손실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질병코드 도입과 미도입 모두 응답자의 수가 평균지불의사액(WTP)가 거의 유사하게 선정되면서, 국민의 절반이 나뉘어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2000명 가운데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한 인원은 963명으로 밝혀졌다. WTP는 3만1086원이다. 대한민국 인구수를 기반으로 사회적 비용을 산정해보면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1조6109억원이다. 그에 반면 질병 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인원은 897명으로, 평균 WTP는 3만2420원이다. 사회적 비용으로서는 1조6810억원이다. ▲게임 규제의 강화 ▲사생활 자유 및 표현의 자유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에 대한 주장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이에 연구는 ‘게임 중독’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에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질병코드 도입 여부와 무관하게 이로 인한 각종 사회적 분쟁이 이미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는 질병코드 도입 논란과 관련된 분쟁을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게임이용 장애 국내 실태조사 기획’ 조사는 게임중독과 관련한 객관적인 진단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시행됐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게임중독을 진단할 경우 네 가지 기준에 따른다. 그 기준은 ▲조절력 상실 ▲게임이 다른 일상생활에 비해 현저하게 우선적인 활동이 됨 ▲부정적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게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행위가 12개월 동안 지속됨 ▲주요기능 영역의 유의미한 손상이다. 이 세부문항에 모두 해당하면 게임 중독에 진단할 수 있다.

국무조정실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게임중독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의 해결방안 도출을 위해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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