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온다” “파티는 끝났다” “진실의 시간”

지난 10년간 가파르게 우상향해 온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올해 강조되는 키워드는 ‘위기’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로 벤처 시장이 위축된 것처럼, 스타트업 생태계의 돈 잔치도 끝나고 혹독한 겨울이 올까?

지금의 상황을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간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가 열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이 행사에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가 250명 가량 모였다. 첫날인 8일, 총 8명의 발표자와 2명의 모더레이터가 공유한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을 공유한다.

9일부터 10일까지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 산업 관계자 250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 스타트업 생태계의 주요 아젠다를 논한다.

일단은 현황

지금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황이 어떠한지 지표부터 짚고 가자.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의 발표다. 대략적으로, 지금까지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돈이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숫자들이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 10억 이상 투자유치 스타트업의 수: 2022년 5월 기준 약 1400개 사 (2015년 10월에는 80개 사에 불과)
  • 기업가치 1조원(10억달러) 이상의 유니콘 수: 2021년 말 기준 18개사
  • 추산되는 스타트업의 수: 4406개 사 (올 1분기까지 등록된 벤처 기업 수 3만7787개사 중 적격투자기관으로부터 5000만원 이상을 투자한 벤처투자형 기업의 수가 4406개. 전체의 7%)
  • 지난해 스타트업 생태계에 풀린 돈: 약 16조원 (2021년 벤처투자조합 약 7조7000억원 + 신기술투자조합 약 8조2000억원. 단, 여기에 창업벤처 PEF(사모펀드)나 정책금융기관의 투자, 해외자본, 기업 등의 직접 투자는 미반영. 따라서 전체 투자금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

이 숫자들만 보면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주 잘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지금 ‘겨울’을 걱정할까?

흥미로운 단어, PDR

PDR은 기업의 가치 평가를 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 등장한 개념이다. 풀이하자면 Price to Dream Ratio로 주가 꿈 비율을 말한다. 냉혹한 자본의 세계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대략 큰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업의 미래 가치에 더 큰 평가를 해주자는 이야기다. 전체시장크기와 그 시장에서 해당 기업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PDR을 계산하는 요소가 된다.

이 PDR이 나온 배경에는 쿠팡이나 컬리와 같은 대표적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높이 평가됐는데 실제 매출은 그만큼 쫒아가지 못한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따라서, 시장 사이즈가 크고 그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가치평가를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됐고, 그것이 수치화 된 게 PDR이다.

PDR이 반영되면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으로 향하는 스타트업들의 가치 평가를 높이 할 수 있다. 더 많은 유니콘을 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기업들이 실적을 내고 있느냐는 다른 부분이다. PDR이 적용된 기업들의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컬리도 경영권 안정, 성장 가능성 등을 문제로 고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우리나라만 이런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국적 불문하고 유력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 중이다. 대표적인 곳이 넷플릭스다. 9일 폐장 기준, 넷플릭스의 주가는 192.72달러로 지난 6개월 간 68.48%나 빠졌다. 스타트업 경영자나 투자하는 이들의 꿈이 커진 것에 비해 시장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

이는 최근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동남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유정호 KB인베스트먼트 그룹장은 동남아에서의 투자 시장도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글로벌 현상과 마찬가지로 테크 기업들의 상장 주가가 크게 하락하였으며, 글로벌 매크로 경제의 영향으로 투자금 시장은 약 50%가깝게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인정하면서도, 닷컴 버블 때와는 지금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 기업의 자신들이 해결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또 그걸 풀어낼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느냐 여부라는 지적이다.

최인혁 BCG 대표는 “닷컴 버블 때는 굉장히 맹목적이었고, 또 풀려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회사들도 굉장히 큰 밸류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지금의 테크 기업들은 풀려는 문제가 명확하고 거기에 더해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전체가 버블이라기보다는 옥석을 가리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지금 다들 투자를 멈춰야 할까?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가 실제보다 높아지고 있고, 많은 돈이 이미 풀렸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투자를 멈출 때는 아니라는 것이 발표자들의 중론이다. 물론, 이날 행사의 발표자들이 투자 생태계에 많이 몰려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메시지를 종합하자면 “지금이 투자할 때”로 정리된다.

근거는 역사적 경험치다. 지금이 불경기라서다. 최인혁 대표는 “1980년에서 2018년간 이뤄진 거래(Deal) 9987건을 대상으로 인수가 대비 이후 1, 2년의 기업가치를 분석해본 결과 불황기 때의 투자 수익이 훨씬 높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성장하고 있는 영역은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산업에 투자하던 PEF도 지금은 스타트업 투자를 놓고 벤처투자사(VC)와 경쟁한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는 이날 “VC와 PEF의 경계가 뭉개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면서 “저금리와 신성장, 비대면 등 지난 5년여간 산업 지형이 변화했고 그에 따라 빅테크, 플랫폼, 테크핀, 미디어와 콘텐츠 등 성장기업의 벨류에이션이 급등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장 환경 변화는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PEF산업에 자극이 됐다. 커지는 펀드 규모를 기존의 전통 산업 분야에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또 투자처를 발굴해도 상대적으로 낮은 예상 수익율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작거나 잘 모르는 분야라는 이유로 검토하지 않은 기회들에 대해 뒤늦은 후회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간 대형 스타트업이 아니면 잘 투자하지 않았던 PEF가 그로스 캐피털 영역에서  VC와 경쟁하고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스타트업의 회사 가치가 높아져서 기업 인수 후 가치를 높여 되파는 일명 ‘바이아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따라서 이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진실의 시간에 대한 공포와 정리된 시장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VC나 그로스 캐피털도 회수 지연과 펀딩의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백억~수천억원의 그로스 투자를 할 여력이 있는 PEF는 선별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