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상거래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도 상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학창 시절 학교 밖에서 물건을 사보기만 했지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들이 당근마켓에서 띠부띠부씰(포켓몬 스티커)를 거래하기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당근마켓은 원칙적으로 14세 이상 이용자만이 거래가 가능합니다. 당근마켓을 제외한다면 지역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상품을 판매하는 경험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어린이는 사회에서 성장하는 구성원으로 다양한 기회를 접하며 사회를 익혀야 하지만, 정작 어린이가 안전하게 사회와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게 플리마켓 ‘수내동 돗자리마켓’은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수내동 돗자리마켓’은 일종의 플리마켓으로 인근 거주하는 분당, 판교 주민들이 자신이 사용했던 물건을 자유롭게 판매하는 행사입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매년 봄 가을마다 열린 행사로 한 번 열 때마다 8000여명이 방문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인해 2년간 중단되었다 거리 두기 해제와 함께 행사를 다시 재개한다며 연락이 왔는데요. 

제게 수내동 돗자리마켓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어린이들이 일일 CEO가 되어 상품을 판매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거래해 환경을 생각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만, 제게는 어린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스스로 사장이 되어본다는 대목이 더욱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이들이 물건을 파는 입장이 되어본다는 건 쉽게 경험해보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어린이 사장님들이 있다는 이 행사를 한번 들러봤습니다.

팬데믹 이후 처음 보는 아이들

5월 1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에 ‘수내동 돗자리마켓’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테니스장을 보자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서울 일부 핫플레이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인파는 오랜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방문한 수내동 돗자리마켓 현장

유독 제 눈에 띈 점은 어린이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어린이들끼리 모여 외부활동을 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태원 할로윈 인파 등 코로나19에 아랑곳하지 않는 어른들이 모인 곳은 많았지만 지난 2년간 아이들이 원해서 모여있는 장소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 주민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사업을 하기 위해 다들 돗자리를 깔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 보호자도 동행했고요.

 가게를 여는 법은 간단합니다. 그저 빈 자리에 돗자리를 깔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자리가 다 차있었습니다. 늦게 오면 자리 잡기도 쉽지 않겠더라고요.

들어가보니 안 입는 옷을 파는 어른들이나 꽃집이나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사장님들도 계셨습니다. 어린이 사장님들이 전부일 줄 알고 온 저는 조금 당황해 한 돗자리에 있는 보호자분께 여쭤보니 이번 행사에는 돗자리 까는데 따로 제한을 두는 것 같지는 않다, 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현장에서는 어린이 사장님이 훨씬 많았습니다. 한 사장님의 말씀으로는 집에서 만든 음식 외에는 모든 걸 팔아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옷부터 시작해 더 이상 읽지 않는 동화책 등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았지만 현장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 중이었습니다.

 

각자 사업에 진심인 어린이 사장님들

그래서 저도 물건을 사볼까 싶어 이리저리 둘러봤습니다.

포켓몬카드를 파는 한 사장님, 상자 가득 카드가 있다

한 어린이 사장님은 모은 포켓몬카드를 팔고 계셨구요. 다른 사장님은 상자에 구멍을 뚫고 뽑기를 하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네요)  어떤 사장님은 포켓몬을 주제로 띠부띠부씰과 인형을 파시더라고요. 각자 가게의 컨셉을 잡고 치열하게 오늘을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둘러보다보니 저도 물건을 하나 사보자 싶어 한 가게에 들렀습니다.

한 가게에서 판매하는 상품, 어린이 사장님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판매한다

바로 이 가게인데요. 상품이 싸고 제가 좋아하는 몰랑이 스티커가 있었습니다. 하나에 100원이라니요, 믿을 수 없이 저렴해 이렇게 팔아도 되냐고 물어보자 머쓱하게 웃으셨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스티커 5개를 500원에 샀습니다.

몰랑이 도장을 파는 가게, 직접 종이에 써 가격을 표기했다

이 곳에서는 몰랑이 도장을 샀는데요, 사장님께 어떻게 여쭤보니 도장 뒤 뚜껑을 열어 피규어가 분리된다는 점도 알려주시며 직접 종이에 찍어 보여주셨습니다. 다들 물건을 팔기 위해 진심인 모습이 어른 사장님들 못지 않더라고요.

다른 돗자리에서는 피카츄 인형을 팔아 한번 사보자 싶어 가격을 물어보니 5000원이랍니다. 흥정도 될까? 싶어 사장님께 얼마나 깎아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2초 정도 고민 후 1000원 정도 깎아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00원을 깎으면 4000원이라고, 그게 최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5000원을 냈습니다.

이밖에도 물건이 살짝 고장난 상품은 공짜로 주시는 사장님, 200원에 파는 마스킹테이프에 대해 너무 싼거 아니냐 물어보니 10개에 3000원이고 조금 썼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이라고 답해주시는 사장님 등 여러 사장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물건을 사면서 어린이 사장님들께 이번 행사가 어떻냐 물어보니 여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5초 정적).. 나쁘지는 않아요.” (이 분은 보호자의 권유로 나온 듯 싶었습니다)

“재밌어요, 조금 덥기는 해요.”

“집에 있는 물건 파는 거라 좋은거 같아요.”

한 어린이 사장님의 보호자로 나온 분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플리마켓이 중단되었는데 이렇게 재개된 걸 보니 재밌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저도 어린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소에 나온 것은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점차 어린이들이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는 시대에 창업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중고나라의 물티슈 나눔 행사

이 날 ‘돗자리마켓’에는 중고나라도 참여했습니다. 앱 설치를 위해 열심인 모습이었는데요. 앱을 깔면 상품권을 증정하고 물티슈를 무료로 나눠주는 등 여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있을 때 포켓몬빵 50개 선착순 증정 행사를 하자 1분도 안돼 모든 빵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들어보니 중고나라 홍준 대표가 직접 판매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는 포켓몬빵을 누가 판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곧 어린이날입니다. 대학가에서는 이미 창업지원센터 등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대뜸 창업을 해보라고 하지만 한번도 창업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뭔가 팔거나 상품을 기획하는게 어색하다고 답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학생들을 만나본 제게 ‘수내동 돗자리마켓’은 좀 더 뜻 깊게 다가왔습니다. 어딘가를 이용해보고 다양한 장소를 다녀 보는 경험,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 등 어린이들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린이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이 시기, 저는 이 곳에서 어린이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이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들, 어린이날 축하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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