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노동정책에서 엿보이는 ‘크런치 모드’ 그림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노동시간 유연화’ 공약이 노동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IT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스타트업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 거란 목소리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임금제나 주  40시간(최대 52시간)으로 노동을 제한하는 법적 규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T 업계에서는 특히 ‘크런치 모드’의 부활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윤 당선인이 후보시절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 폐지 등 노동 유연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크런치모드란 서버가 터지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 혹은 신작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연장 근로를 하는 게임 업계 내 고강도 노동을 말한다. 지난 2017년 과로사한 20대 게임 개발자의 돌연사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면서 게임 업계 내 노동 환경이 문제로 떠올랐다.

사진=윤석열 당선인 후보 시절 캠프 페이스북

크런치 모드 부활 우려에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 측은 “52시간제를 철폐하겠다는 말은 문단을 하나의 문장으로 임의 압축한 것일 뿐 발언 취지와 사실관계가 다르다”며 “현재의 최저임금, 주52시간제는 이미 정해져서 강행되는 근로법이기에 후퇴하긴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시간 유연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점에서 포괄임금제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 산업계의 반응이다. 윤 당선인은 근로시간 유연화와 근로시간 선택지 다양화 등의 정책을 제시하는 등 대대적인 노동 정책 개편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공약집에도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1년 이내로 확대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연장근로 대상에 스타트업 포함 ▲전문직 직무, 고액연봉 근로자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을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약을 밝혔다. 이는 단기간 집중 노동을 허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조 없는 게임사들 더 힘들어질 수도

물론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한 번에 노동환경이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조직 내에 노동 환경이 잘 정착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곳일수록 이같은 우려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주52시간제를 엄격히 지키는 게임사의 경우에는 외부 변수에 흔들릴 가능성이 적다. 기자가 만난 게임업계 인사들은 노동 환경과 관련한 규율이 내부적으로 잘 정착된 기업이라면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갑작스레 노동환경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이와 관련해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제 시행에 맞춰 내부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라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이 시스템을 바꾸려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거나, 노조가 없는 기업들은 다소 긴장하는 분위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노사합의를 전제’로 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가 균등한 관계로 테이블에 나서지 않는 한 결과적으로는 회사 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합의의 방향이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 52시간이 법제화된 지금도 크런치모드가 음성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지적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차상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조 스마일게이트 지회장은 “업계 내 크런치 모드 우려와 관련해서 실제로 걱정하는 분위기는 맞지만 아직 매를 들기만 했지 빼지는 않은 상황이라 정책 상황을 지켜봐야 알 것 같다”면서도 “중소 게임사 뿐만 아니라 대형 게임사들도 노조가 없는 곳은 여전히 (크런치 모드에 대한)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발자 인력난에 허덕이는 현 상황에서 지금 노동 환경보다 후퇴하는 것은 산업적으로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게임업계 노동자 79.6%, 포괄임금제 폐지에도 ‘그대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작년 11월에 발간한 ‘2021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게임 업계 내 노동환경은 개선됐지만, 여전히 회사 규모에 따른 노동환경 격차가 크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과 관련 성과는 일부 대기업에서만 나타날 뿐, 이외의 중소 개발사와 스타트업에서는 초과근무 관행과 임금 체불 같은 게임 업계 내 고질적인 문제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노조 유무 등에 따른 환경 문제가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여전히 주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곳이 많으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일부 기업에서도 무임금 야근이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현재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게임사는 2017년 펄어비스를 시작으로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웹젠, 위메이드, 스마일게이트, 게임빌, 컴투스 등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임금제를 급여를 받고 있는 노동자는 표본 1400명 중 79.6%이었다.

2020년 판교 IT・게임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 조사 결과 (출처: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일부 대형 게임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나 크런치 모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2020년 10~11월 화섬식품노조 IT 위원회가 판교 지역 IT 및 게임 업계 종사자 809명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2%가 지난 6개월 사이 주52시간을 넘겨 일했다고 응답했다. 47.3%는 성희롱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

차기 정부의 향후 게임 정책과 관련해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게임을 생태계의 선순환 혹은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52시간제를 무력화해 저해하려고 한다”며 “미래를 바라보는 게임 정책과 디지털 콘텐츠 창작자들을 위한 제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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