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왓슨 시대 막 내렸지만…의료 민주화 남아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치뤄진 해는 의료계에 있어서도 특별하다. IBM의 의료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이하 왓슨)가 우리나라 병원에 처음으로 도입된 때다. 왓슨을 처음 도입한 주인공은 길병원. 당시 기획실장으로 있던 이언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왓슨 도입을 주도했다.

의료 AI가 생소하던 시절 왓슨을 어떻게 들여올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원래 IT에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이언 교수로 인해 길병원은 도스 환경에서부터 환자정보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병원 기획실장 12년을 하면서 윈도우 환경에서의 환자정보시스템으로 바꾸고 보안 의식을 만들고 마그넷 카드 주차권을 들여왔다.

왓슨을 처음 접한 것은 2013년 학회에서였다. 학회에서 왓슨을 처음 임상에 적용한 발표를 접했고 한국에 들어와 한국IBM으로 갔다. 4명 직원이 붙어 이언 교수에게 ‘왓슨이란 무엇인가’ 단독 과외를 했다. 이후 수도권 빅5 병원을 제치고 길병원이 가장 먼저 왓슨을 들여왔다.

6년이 흐른 2022년 의료 AI를 둘러싼 풍경은 상당히 달라졌다. 환자의 귀중한 목숨을 AI에게 맡길 수 없다고 외치던 의사들이 직접 의료 AI를 연구한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대기업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대형 병원들은 자체적으로 AI를 개발 중이다.

이 모든 의료 AI 유행의 처음에는 왓슨이 있다. 그리고 이제 왓슨 시대는 저물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IBM은 지난 1월 의료 AI 사업을 주관하는 왓슨 헬스를 약 10억달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왓슨을 도입해 사용 중이었던 각 병원들은 작년 더이상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왓슨에 대한 불만이 있냐는 질문에 이언 교수는 “없다”고 딱잘라 말했다. 길병원에서는 오히려 왓슨과의 재계약을 원했다는 입장이다.

“계약이 만료돼서 새로운 버전으로 받기로 했는데 못 받았다. 병원 쪽에서는 계속 쓸 생각이었다. 병원 홍보도 많이 했고 환자들에게 좋은 평도 받았고 충분히 효과를 봐서 계속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길병원 이언 신경외과 교수

왓슨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왓슨의 정확도가 우리나라 유행 암에서 떨어진다, 국내 치료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다수 제기돼왔다.

애초 IBM은 미국의 암병원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왓슨과 의료진의 의견 일치율이 대장암 98%, 직장암 96%, 방광암 91%, 난소암 95%, 자궁경부암 100%라고 소개했다.

2017년 길병원이 왓슨 도입 1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12월 센터 개소 이후부터 2017년 11월까지의 환자 총 5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대장암(결장암) 환자 118명을 대상으로 한 의료진과 왓슨의 ‘강력 추천’ 분야 의견 일치율은 55.9%였다. 4기 위암 환자에 대한 의견 일치율은 40%에 그쳤다.

중요한 것은 의사와 얼마나 같은 의견을 제시하는지를 의미하는 정확도가 아닐 수 있다. IBM이 왓슨을 만든 것은 의사와 꼭 같은 의견을 내서 의료진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근거를 기반으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왓슨을 통해 토론의 장이 만들어지는데 있다. AI가 만든 다학제 진료 문화가 왓슨의 핵심 이점이라는 것이 이언 교수의 주장이다.

“의사 입장에서 왓슨은 거북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의논하는 사이에 AI가 끼어드는데 솔직하게 다 오픈하니 체면이고 뭐고 없다. (다학제 진료에서) 짧은 시간동안 여러 케이스를 봐야 하는데 (의사가) 공부를 안 하고 들어오면 논의가 계속 지연이 된다. 환자를 봐야 하는데 엉뚱한 얘기를 하면 실력없는 의사가 돼버리는 것이다.”

추천 정도가 큰 순서에 따라 그린, 옐로우, 레드로 나눠 치료법을 제안하고 근거가 되는 자료도 모두 제시한다. 레지던트와 펠로우 교육과 오리엔테이션에는 최고다.

가장 이득을 보는 주인공은 환자다. 자신의 질병에 대해 여러 분야 의사들이 모여 앉아 AI와 함께 논의하고 최적의 방법을 제시한다. 황제 진료가 따로 없다.

“왓슨은 그린을, 의사가 레드를 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환자는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다. 의사는 왓슨이 권장하지 않는 치료법을 왜 선택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 환자 진료가 굉장히 민주적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암 진료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왓슨은 전세계 모든 항암제를 망라해서 결정에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의사도 환자도 우리나라에서 쓸 수 있는 항암제가 제한된 것을 알 수 있다.

“AI가 맞고 틀리고 정확하고에만 포커스를 두는데 그 뒤에 엄청난 변화는 놓친다. AI가 들어오면서 암진료 시스템이 건전해지고 투명해지고 환자 권리가 증진되고 의사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의사와 다른 결정을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달라야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적극적으로 설득하게 된다.”

암 치료법 결정에 필요한 한국인 특유의 성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언 교수는 반대한다. 중요한 것은 인종이 아닌 유전자에 있다는 입장이다. 정밀의료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유전 인자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반영한 것이 왓슨 포 지노믹스다. 현재 왓슨 포 지노믹스는 왓슨 헬스 매각으로 왓슨 포 온콜로지와 함께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M이 왓슨 헬스를 매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언 교수는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애초 왓슨에 사용한 것이 아닌 다른 AI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여기에 드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라고 추측한다.

“AI 기술이 단기간에 크게 발전하면서 기존에 사용한 AI 말고 다른 AI 스타일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예측한다. 기술 스타일 자체를 출발선부터 다르게 해야 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왓슨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왓슨 도입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변화한 의료 AI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남았다.

“처음에는 AI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하더니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우리나라에 왓슨을 들여온 이후 AI가 쫙 퍼졌다. 학회들을 가면 AI 얘기를 어마어마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AI가 보편화될 것이다. 처음 AI를 진료에 적용한 사람으로서 들여온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박성은 기자<sag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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