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0조를 번다고 해도 제 삶은 특별히 달라질 게 없거든요. (중략) 저는 즐겁게 살아요. 아직도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게 즐겁고 제 일이 있는 게 즐겁고요. 누가 나한테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느냐 그러면, 늘 부담은 크지만 일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해요.” – <플레이 (2015년 출간)> 中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전 NXC 이사가 향년 54세로 눈을 감았다. 1일 넥슨의 지주회사 엔엑스씨(NXC)는 김정주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구체적 사망원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들어 증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게임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같은 서울대학교 컴퓨터학과 선후배 사이로 알려진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고 추모글을 남겼다.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 법인 대표도 “우리의 친구이자 멘토인 김정주 창업자를 잃은 슬픔을 말로 하기 어렵다”며 “그는 세계에 측정할 수 없는 긍정적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이사 내정자도 “업계의 슬픔”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게임 산업 개척한 선구자 김정주

김정주. 1968년생. ‘게임 왕’ ‘은둔의 경영자’. 국내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1세대 창업자인 그를 수식하는 별명은 많았다.

1991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사,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정주 이사는 스물일곱이던 1994년, 대학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함께 ‘바람의 나라’ 개발을 시작했고 국내 1세대 게임 회사인 ‘넥슨’을 창업했다.

출처 : 넥슨

1996년에 세상에 나온 바람의나라는 3년 만인 1999년에 100억원 매출이라는 대성공을 거두며 한국 게임 산업의 성장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과 같은 국민 게임을 탄생시켰다. 넥슨은 국내 IT 기업으로 최초로 도쿄 증시에 상장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그는 게임뿐 아니라 인수합병(M&A)에도 남다른 기질이 있었다. 2004년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개발사인 위젯을 인수했고 2008년에는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을 인수해 넥슨 대표 프랜차이즈 게임을 탄생시켰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텐센트를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한 후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2011년에 매출 1조원, 2020년에는 국내 게임 업계 첫 ‘3조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왼쪽부터)넥슨재단 김정욱 이사장, NXC 김정주 대표, 대전광역시 허태정 시장, 넥슨코리아 이정헌 대표, 대전광역시 임묵 보건복지국장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코딩 교육에 관심을 보이며 어린이 재활병원을 만들어 후원하기도 했다.

넥슨은 ‘장애 어린이 건강한 미래’라는 목표로 2014년 국내 최초 어린이재활병원 ‘푸르메재단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했고, 개원 이후 50억원 이상의 운영 자금을 보탰다. 이외에도 국내 최초 독립형 어린이 완화 의료 센터 건립을 위해 100억원을 약정했고, 경남 창원에 들어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에도 100억원을 기부했다.

앞으로의 넥슨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넥슨의 지배구조는 김정주 이사 →NXC 및 NXMH → 넥슨 → 넥슨 코리아로 이어지는 구조로, 김 이사와 친족이 사실상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김정주 이사가 67.49%, 배우자가 29.43%, 자녀 두 명이 각각 0.68%를 보유하고 있고, 가족 소유 계열회사인 와이드키즈도 NXC 지분 1.72%를 가진 형태다.

넥슨의 경영구조 (출처:NXC)

다만, 생전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바에 따라 기존 사업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넥슨 창업 27년이 지난 지난해 6월, 김 이사는 모든 넥슨 컴퍼니 내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글로벌 투자 기회 발굴과 고급 인재 영입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대표 사임 이후 NXC는 이재교 브랜드홍보 본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2011년 넥슨의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을 이끌었던 알렉스 이오실레비치를 글로벌 투자총괄 사장(CIO)으로 임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표 자리에 물러난 만큼 경영에 큰 관여는 하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겨진 넥슨이 이어갈 김정주의 ‘디즈니’ 꿈

고인은 생전 넥슨을 디즈니 같은 회사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최근에는 디즈니 출신의 인사를 영입, 넥슨을 디즈니와 같이 꿈을 파는 IP 회사로 키워내겠다는 비전을 보이기도 했다.

“제가 디즈니에 제일 부러운 건 디즈니는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뜯기죠. 넥슨은 아직 멀었어요. 누군가는 넥슨을 죽도록 미워하잖아요.”


김 이사가 지난 2015년 출간한 기업의 자서전 <플레이>에서 한 말이다. “디즈니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말은 이용자가 넥슨의 콘텐츠를 불량식품처럼 느끼지 않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뜻이다. ‘돈슨(돈과 넥슨의 합성어로 과금을 유도하는 넥슨의 유료화 모델을 비판하는 단어)’이라는 별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기에 꼭 풀어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했다.

김정주의 디즈니 꿈은 넥슨이 향후 나아갈 목표가 됐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1일 사내 공지를 통해 “저와 넥슨 경영진은 그의 뜻을 이어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