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플법, 규모로만 규제하지 말아야”

대형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하 온플법)’ 제정이 사실상 차기 정부로 넘어간 가운데, 온플법 대상 선정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는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 대상 플랫폼을 정하고 있는데, 이런 획일화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거나 산업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국내와 해외의 플랫폼 현황이 다른 상황에서 해외에서 논의되는 법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참조대상이 되는 유럽의 경우 자국 내 플랫폼은 거의 없고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온플법은 유럽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에서는 9일 ‘플랫폼 경제와 노동, 과연 공정한가?’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 정혜련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법 제정에서 주의할 점을 언급했다.

정 교수는 “위협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 우리 실정에 맞는 규제설계, 즉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건전한 플랫폼 시장을 조성하고 육성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논의와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불법 콘텐츠 유통을 비롯한 기타 규제대상이 되는 행위들이 반드시 소규모보다 대규모 플랫폼에서 만연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시장의 독과점이론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다양한 예외적 사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플랫폼 간에는 다양한 측면의 편차가 존재하며 특정 범주의 온라인 플랫폼이 다른 범주의 플랫폼과 반드시 동일한 문제에 노출되지는 않는다. 플랫폼의 크기는 위험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플랫폼에 규제 무게를 더 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규모 이외의 것을 규제 기준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영균 카카오 데이터담당 팀장도 각 플랫폼 종류별로 차이를 두고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 팀장은 “온라인 플랫폼은 이커머스와 같은 쇼핑, 동영상, 검색, 모빌리티 플랫폼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각 플랫폼 별로 사업 구조나 이해관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규모 기준으로 규제 기준을 삼거나 표준계약서같은 정형화된 규제 방식을 채택한다면 혁신적인 플랫폼 산업은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플랫폼 위주 규제책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유럽과 미국 사례를 참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미국의 법안에서 제시된 기준이 반드시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최적의 기준이라 할 수 없다고 전 팀장은 주장했다. 특히 유럽의 경우 자국 시장을 리드하는 타국 플랫폼을 견제하기 위해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이 건재한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전영균 팀장은 “우리나라 온라인 플랫폼 법들은 대형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데 EU 규제를 참고한 것 같다. EU 규제 의도는 2016년 나온 GDPR에서도 드러나듯이 해외 글로벌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균 카카오 데이터담당 팀장

전 팀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봤을 때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가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당근마켓과 같은 새로운 기업이 부상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는 동태적 경쟁이 발생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해외 규제 사례를 참고할 때는 각국 배경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 팀장은 주장했다.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들의 플랫폼 생태계 차이에 대해 정혜련 교수는 “플랫폼은 비즈니스 모델이 워낙 다양하다. 국내에는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와 같은 플랫폼보다는 그런 플랫폼 안에 내재된, 플랫폼 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온라인 플랫폼 법에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자국 플랫폼을 대상으로 안전장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정치를 마련하는 일을 꼽았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자국 플랫폼 육성, 외국 플랫폼 규제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중국은 자국의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는 전략과 함께 타국의 초대형 플랫폼을 규제하는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유럽과 같이 특별법을 제정하는 대신 기존 경제법을 개정해 플랫폼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 중요한 점은 다른 국가와 달리 중국은 개정법으로 기업에 형사 책임을 묻는다는 것. 외국 기업의 사업을 위축시키기 위한 굉장히 강도가 센 방법이다.

중국의 온라인 플랫폼 법을 설명 중인 정혜련 경찰대 법학과 교수

대표적인 자국 플랫폼이 부재한 일본에서는 자국 플랫폼 육성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규제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해 현재 시행 중이다. 유럽과 거의 동일하면서도 강제적인 구속력, 처벌 규정을 가지지 않고 우회하며,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내용을 포함한다.

독점 폐해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이용자 효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플랫폼 자체 성격상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적 편익도 커지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전영균 팀장은 “온라인 플랫폼은 근원 자체가 이용자와 이용 사업자가 모두 윈윈하게 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쇼핑 플랫폼을 예시로 들어보면 다수 이용 사업자가 이점이 있는 곳에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찾고, 최저가로 구매할 수 있는 등 이용자 효용이 확보돼 이용자가 모이게 된다. 이용자가 모이면 입점 사업자 모여들게 되고 클러스터 효과로 사업자들도 효용을 가져갈 수 있다. 플랫폼 규모가 커지는 것이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의 사회적 편익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 특징을 무시하고 규제 기준으로 매출액, 영업이익, 거래액 얼마를 규제 기준으로 설정하면 온라인 플랫폼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박성은 기자<sag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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