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우크라이나 사태와 반도체 산업 여파 총정리

편집자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을 기업 전략과 경쟁 구도, 시장 배경과 엮어서 설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략과 성장 배경을 알면 왜 그 제품을 출시했는지, 회사의 전략과 특성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시장 상황과 전망을 살펴볼 수도 있죠. 하나씩 함께 파고 들어가보면 언젠가 어려웠던 기술 회사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기술산업 이야기보다는 국제 정세와 그 여파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죠. 24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에 외국이 간섭할 경우 즉각 보복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간주하고, 제재 카드를 하나씩 꺼내 들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유럽,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도 러시아를 강력하게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도 벌벌 떨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업계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국가로부터 원재료를 수입하는 나라가 많아, 세계 여러 산업 부문에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왜 싸우는거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싸우는 데에는 역사적, 지정학적, 경제적 원인이 맞물려 있습니다. 역사적인 것부터 살펴볼까요.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으로 자리하면서, 러시아를 완전히 탈피하고 서방 국가와 손을 잡고자 했습니다. 유럽연합(EU)과 친서방 군사동맹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입 의사를 표현한 것도 그 일환이죠. NATO는 서방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 동맹인데요,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대항하는 포지션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과거 속국이었던 국가가 순식간에 서방 손을 잡으려 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겠죠.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아직도 독립국으로 보지 않고, 자국 내 지방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가운데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편 끝자락에 위치한 크림반도 지역을 임의로 독립시킨 후 자국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침공으로 간주 했고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사이는 처음부터 좋지 않았네요.

지정학적 관점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서방 진영으로 진출할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하는 포지션인 NATO에 가입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서방 진영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방 국가에게 자국의 진영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는 우크라이나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거부하고, NATO의 동진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친서방 국가가 러시아 주도의 천연가스 수송관 노드스트림(Nord Stream) 건설 프로젝트를 가로막은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노드스트림은 유럽 발트해 아래에 위치한 천연가스 수송관으로, 모두 러시아에서 독일로 직접 이어집니다. 프로젝트는 총 두 차례에 걸처 진행됐는데요, 처음 건설된 노드스트림1은 2012년 10월 8일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드스트림 2의 경우에는 2021년 6월부터 1호, 2021년 9월부터 2호 파이프라인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방 국가는 노드스트림 운영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유럽 내에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동부 유럽의 운송료 가격이 인하해 운송 생태계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노드스트림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크게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독일도 현재 운영하고 있는 노드스트림2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결국 이번 갈등의 본질은 서방 진영 대 러시아 진영 간 갈등입니다. 미국과 EU는 외교적 협상을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무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진짜로 무기를 들어버리면 이는 세계전쟁을 하자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재 정세를 보면 갈등은 극심해지고 있고, 미국과 주변국은 강력한 제재를 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소재 수급’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이 당장 우리나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보고서와 언론에 나오는 상황은 모두 다 ‘사태가 악화됐을 때’, 즉 정말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발했을 때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양국 간 긴장감이 고도화되고 실제 포격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전쟁 발발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시 반도체 공급을 중단시킬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제재 대상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장비, 소프트웨어, 디자인 등 미국 기술이 접목된 기술이 모두 포함됩니다. 러시아가 미국 기술을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러시아가 입게 될 기술적 타격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미국과 주변국은 노드스트림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을 막는 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러시아는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입니다. 미국은 네온, 팔라듐과 같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가 미국 경제 제재에 맞서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가 수출길을 막으면 미국과 주변국은 반도체 소재 수급난을 겪게 되고,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겠죠.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을 위한 소재 수급에는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네온, 크립톤과 같은 희귀가스를 수입하고 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 수급의 어려움으로 해당 소재의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온은 7나노 공정 이상에 사용되는 DUV(심자외선) 노광장비에 적용된 레이저에 사용되며, 크립톤은 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부식시켜 없애는 식각 공정에 사용됩니다. 증권가는 2014년~2015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네온가스 가격이 평소보다 10배 이상 폭등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러시아 현지에 있는 기업은 부품 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기업 중에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 40개 기업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대러시아 수출을 차단하면, 앞서 언급한 기업들이 부품 공급을 받지 못하거나, 비싼 가격을 주고 우회 공급을 해야겠죠.

유럽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기업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천연가스는 전체의 40% 정도 됩니다. 특히 독일은 탈원전 이후 천연가스를 에너지원으로 삼으면서, 천연가스의 5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유럽 내 에너지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에도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기아자동차 등 국내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 각 기업은 유럽 지사에서 높은 에너지 비용을 충당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기업은 아무리 매출이 잘 나와도 늘어난 에너지 부문 지출로 수익성 측면에서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 동맹 양극화되나

기술 동맹도 더욱 양극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기술 산업에서는 미국·유럽·일본·대만이 한 편, 중국·러시아가 한 편으로 나뉘어 있었거든요.

미국과 유럽, 일본, 대만은 지속해서 반도체 동맹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선 인텔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아시아에 몰려 있는 생산 역량을 분산시키겠다고 밝혔죠.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대만 TSMC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TSMC도 두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무역보복으로 반도체 경쟁력을 잃은 바 있는데, 따라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4개국은 기술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질세라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의 무역 제재 속에서 협력과 상생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9년부터 중러 과학기술 혁신의 해 행사를 개최해 5G, 원자력, 항공우주 등 다방면에서의 기술 협력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미국에게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라며 아직 건재함을 드러내는 것이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으로 두 동맹은 양극화되고, 폐쇄적이 될 전망입니다. 유럽, 일본 등 국가는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가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미국의 대러시아 수출 규제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만은 아직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반도체 시장 관계자는 “대만도 미국의 규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러시아가 소재 수출길을 막으면, 다른 서방 국가는 다른 공급처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100% 러시아로부터 수급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실제로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소재 공급망 다변화를 주문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국가 간 협업이 더 활성화되겠죠.

그 가운데 우리나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우리도 주요 서방국의 러시아 제재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며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외교적 조치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규탄 목소리는 인지하고 있으며 동참 가능성도 있으나, 러시아와의 관계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과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전쟁이 발발한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극심해질 것입니다. 전쟁 그 자체가 끔찍한 것은 당연하고요. 상황이 평화로운 방향으로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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