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직 내려놓고 딥노이드 CMO 된 의사 이야기

의료계에 디지털 헬스케어 바람이 분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 이전 2018년 즈음에만 해도 의료계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라고 하면 원격 의료부터 떠올리고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의료 인공지능(AI)의 경우에는 의사를 대체할 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단 3년만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의료 AI는 영상의학과 이외 모든 의학 분야에서 인기있는 연구 주제다. 원격 의료에 대해서도 의사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 산하기관 서울시의사회에는 최근 원격의료연구회가 구성됐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도 올해 처음으로 원격의료연구특별위원회가 마련됐다. 상장한 국내 AI 기업 10여 곳 중 3곳은 의료 AI 기업이다. 뷰노, 제이엘케이, 그리고 딥노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의료 AI는 의료 영역에 적용하는 AI를 뜻한다. 즉, 사용 주체인 의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의학은 물론 의료 AI 관련 법제도와 병원 사정도 잘 알아야 한다. 통상 의료 AI 기업에서 의사가 일하는 이유다.

최현석 딥노이드 CMO(Chief Medical officer)는 작년 6월 1일부터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의대 졸업부터 인턴, 전공의, 군의관 생활, 교수 생활 10년까지 쉬지 않고 의사로서 앞만 보고 살아왔다. 2021년부터는 대학병원 밖으로 나와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 영상의학과장으로 일하면서 분야를 넓혀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실 영상의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아직 의료영상 AI에 대한 염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영상 AI는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최 CMO의 철학이다.

의사라는 평탄한 길에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헬스케어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해 최현석 CMO를 만나봤다.

최현석 딥노이드 CMO 겸 서울의료원 영상의학과장

언제부터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2002년에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에 지원했는데 당시 국내 대학병원에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이 도입되던 시절이었다. 최형식 현 헤셀 대표가 1994년 현재 인피니트헬스케어인 메디페이스를 설립해 PACS를 국산화했다. 의사라는 직업에 국한되지 않는 행보가 인상적이었고 나도 언젠가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처음 하게 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활동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지?

2015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부과제 중 빅데이터 조성과 딥러닝 적용에 대한 주제가 있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 헬스 등의 키워드도 그때부터 자주 접하게 됐다. 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부교수일 때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뇌혈류 측정 과제를 KAIST 배현민 교수팀과 함께 진행했다. 2017년에는 대한영상의학회에서도 의료 영상 빅데이터와 AI에 관심을 가지고 학술프로그램과 교육과정을 준비했다. 2021년부터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총무이사로 일하고 있다.

2015년 당시 의료 AI 관련 과제는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당시에는 인공지능 과제가 흔치 않던 초창기였다. 딥러닝 관련 주제를 제시하기만 하면 가점을 받고 선정 확률도 높고 주목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모두가 다 하는 주제가 됐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정도로는 약하고 적용을 해서 환자 예후를 좋게 만들고 도움을 준다 정도는 돼야 한다. 단순 개발을 넘어 환자에서의 성과까지 내야 인정을 받고 있다.

의사로서 현재 서울의료원 영상의학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교수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나?

2011년부터 서울성모병원에서 교수생활을 했고, 2019년부터는 모교인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2021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대학병원 밖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료원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이고, 신종 바이러스 질병이 대유행하는 시대에 AI의 역할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처럼 시스템이 우수한 병원에는 명의도 많고 진료 인력도 충분하기 때문에 AI 도움이 절실하지는 않다. 서울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은 대학병원과 비교하자면 인력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각종 국가 재난 상황에 대응해야 하기에 AI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

대학병원이 의료 AI와 관련이 깊은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세브란스병원 뇌신경영상의학과에 뇌 영상을 판독하는 교수 인력이 10명이 있다면 서울의료원은 1명이다. 판독해야하는 영상의 양, 일의 양을 보면 전문의 한명 당 일의 양은 서울의료원이 오히려 많다. 1명 인력이 휴가를 가거나 병에 걸리면 대체할 사람이 없어진다. 대형병원은 전문가도 많고 배우려는 전공의와 전임의가 많기 때문에 판독 가능한 인원이 15명까지 될 수 있다. 인력이 적은 쪽, 전문가가 부족한 쪽에 의료 AI가 필요하다. 중소병원, 공공병원에서 AI를 수요기관이라면 대형병원에서는 AI를 직접 개발하는 공급기관쪽에 가깝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아산병원의 닥터앤서 사업이다. 전국의 퍼져있는 중소병원, 공공병원에 영상의학과 부족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필요한 쪽은 대학병원이 아니라 오히려 이쪽이다.

의사일을 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일까지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의사라고 하면 진료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대학병원에서는 연구, 교육, 진료, 행정에 관한 일을 한다. 대학병원을 나오면서 많은 일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미팅이 줄고 온라인 회의가 많아지면서 시간과 공간 제약이 많이 줄었다. 현재 서울의료원에서 의사일을 80~90% 정도 하고 나머지는 AI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딥노이드 CMO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여러 기업 중 딥노이드를 선택한 이유는?

딥노이드와는 뇌혈관 자기공명영상에서 뇌동맥류를 자동으로 찾아주는 딥뉴로(DEEP:NEURO)를 함께 개발하면서부터 최우식 CEO와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병원을 나오면서 기업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딥노이드는 다른 AI 회사와 다르게 플랫폼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코딩 없이 AI 연구와 교육이 가능한 딥파이(DEEP:PHI), 개발된 AI를 효과적으로 병원에 적용하기 위한 딥팍스(DEEP:PACS), 개발된 AI의 확산과 거래가 가능한 딥스토어(DEEP:STORE)가 딥노이드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딥노이드 CMO로서 어떤 일을 하나?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사업기획실은 AI 개발보다는 적용과 확산이 목표다. 개발과 허가는 김태규 CTO와 최종문 CMO가 주로 담당한다. 개발된 AI가 의료시스템에서 잘 돌아가게 하는 일, 의사와 환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일, 의료시장에서 환영받는 제품을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찾아가서 AI 제품 설명회를 하면 관심 있는 교수들이 연락이 온다. 여기서 진전되면 병원에서 우리 제품을 연구용, 나아가 임상용으로 쓸 수 있고 좀 더 대중화되면 병원에서 구입을 하게 된다. 한 대형병원에서 구매가 일어나면 다른 경쟁병원이나 지방, 중소병원에서도 구매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선순환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병원 내 사정이나 병원 교수들의 사정, 기업 입장을 모두 잘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의료 AI가 시장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고, 그 이득이 기업과 의료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브란스 신경외과와 긴밀히 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세브란스 신경외과는 신경외과 중 국내 최고이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이다. 세브란스 신경외과 교수들 중 융합연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뇌혈관 자기공명영상에서 뇌동맥류를 자동으로 찾아주는 딥뉴로를 개발하고, 식약처 허가를 받고, 임상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다. 현재 딥뉴로에 대해서는 단일기관 임상 연구를 마치고 다기관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기관 연구는 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이대서울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의학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AI를 이용해 MRI를 판독했을 경우의 진단 정확도’ 연구를 작년 11월 발표했다. 영상의학과 의사 이외 의사가 의료 영상 AI를 사용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도 AI를 MRI 판독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SCI급 국제학술지인 미국신경영상의학회지(AJNR)에 게재됐다. AI가 의료 분야에 적용될 경우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임상 의사는 판독을 위해, 영상의학과 의사는 더욱 고도화된 분석을 위해 의료 AI를 사용할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박성은 기자<sag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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