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만년 2등, AMD가 인텔을 넘어선다고?

편집자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을 기업 전략과 경쟁 구도, 시장 배경과 엮어서 설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략과 성장 배경을 알면 왜 그 제품을 출시했는지, 회사의 전략과 특성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시장 상황과 전망을 살펴볼 수도 있죠. 하나씩 함께 파고 들어가보면 언젠가 어려웠던 기술 회사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CPU 양대 산맥, 인텔과 AMD가 최근 지난 4분기 실적을 모두 발표했습니다. 양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성장세를 보였는데요, 특히 인텔의 성적은 월가의 시장전망치를 상회했습니다.

인텔은 지난해 4분기 매출 205억달러(약 24조7230억원), 순이익 46억달러(약 5조5476억원)를 달성했습니다. 월가가 예상한 인텔의 4분기 매출은 192억달러(약 23조1590억원), 순이익은 32억달러(약 3조8598억원)였는데요, 이를 훌쩍 넘어선 것입니다. 매출에는 SK하이닉스로의 메모리 사업 매각 대금도 반영됐습니다. 매출로만 따지면 사상 최대입니다.

AMD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AMD의 지난 4분기 매출은 48억3000만달러(약 5조8250억원), 순이익은 9억7400만달러(약1조1747억원)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9%가량 상승했습니다.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양사 모두 높은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양사 모두 순이익은 하락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AMD 실적과 관련해 “AMD의 2021년 연간 제품 판매량은 5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며 “리사 수 CEO가 취임한 이후 투자자들은 AMD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데, 이는 AMD가 인텔을 능가할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실적만 놓고 보면 여전히 인텔이 AMD에 비해 우세해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AMD가 단기적으로 우세하지만 결국 인텔이 반도체 왕좌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앞서던 인텔, 추격하는 AMD

과거에도 프로세서 시장에는 ‘1위는 인텔, AMD는 2인자’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AMD가 인텔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1978년 IBM이 컴퓨터 표준 CPU로 채택한 8086 프로세서를 출시했습니다. IBM 컴퓨터에 8086 프로세서를 탑재하면서 그 수요가 증가했고, 인텔은 몇몇 기업에 라이선스를 제공해 8086 프로세서를 2차 생산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때 위탁생산을 담당했던 기업은 AMD, NEC, 후지츠 등 10개 기업입니다.

이후 인텔은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라이선스를 타사에 유출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1985년 공개한 인텔 80386 프로세서부터 라이선스를 타사에 제공하지 않기로 하고, 전량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AMD는 인텔에게 라이선스를 제공받던 시절에 설계도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했고, 지속해서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었죠. 쉽게 말해 AMD는 인텔 아키텍처를 베껴 프로세서를 개발했기 때문에 x86 아키텍처 부문 경쟁업체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AMD는 1996년 처음으로 자체 x86 가정용 프로세서 ‘K5’를 출시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1999년에는 K7 애슬론을 공개했는데요, 이 제품은 인텔의 동급 CPU보다 성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K7 애슬론 덕분에 AMD는 인텔로부터 시장점유율을 빼앗아올 수 있었습니다. 판도를 뒤집기 위해 인텔도 2000년  펜티엄 4 프로세서를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설계 방향을 잘못 설정해 해당 칩은 성능은 낮아지고, 발열이 심해졌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인텔은 설계 부문에서 연이어 실수했고, 결국 2006년에는 프로세서 시장점유율을 AMD에게 절반가량 내줬습니다.

인텔 AMD 역대 시장점유율 차이 (출처: 패스마크)

결국 인텔은 2011년 펜티엄 시리즈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인텔 코어 i 프로세서를 출시했습니다. 인텔은 i 프로세서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단순히 트랜지스터와 클럭(CPU가 데이터를 한 번 처리하기 위해 주어지는 신호) 수를 무작정 늘리지 않고, 아키텍처를 확장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꿨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인텔은 지금까지 i 프로세서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인텔·AMD 암흑기와 리더의 중요성

인텔이 i 프로세서로 성장하는 동안, AMD는 대항마를 오랜 기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졌고, 자금난을 겪으면서 보유하고 있던 생산라인을 매각했습니다. 지금 AMD에 생산라인이 없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이때 떨어져 나온 생산라인이 세계 3위 파운드리 기업 ‘글로벌 파운드리(GF)’입니다.

이후 2014년, AMD는 리사 수(Lisa Su)를 새로운 CEO로 영입하면서 기사회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사 수는 판매하고 있던 그래픽카드 가격을 낮춰 가성비를 강점을 내세웠고, 이후 콘솔 게임 시장에도 손을 뻗어 기기와 프로세서를 함께 판매했습니다. 이 같은 전략으로 AMD는 적자를 탈출했습니다. 이후 AMD는 프로세서 개발에 주력했는데, 그 결과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인텔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라이젠(RYZEN)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리사 수를 영입하면서 AMD는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인 2013년, 인텔에는 회사를 암흑기로 이끈 핵심 인물 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가 CEO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는데요, 크르자니크 CEO는 이를 인식하고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더불어 반도체 연구인력을 대폭 축소하는 큰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이 때 인텔을 나온 인재는 대부분 AMD, 삼성전자, TSMC 등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그는 프로세서의 보안상 약점도 은폐하려다 언론에 들통나 결국 사임하게 됐습니다.

인텔은 크르자니크 사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회복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6년간 하락세를 걸었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은 꽤 걸릴 전망입니다. 최고재무책임자 출신 로버트 스완(Robert Swan)이 2년간 인텔 CEO를 담당한 이후, 지금은 30년 간 인텔에 몸담았던 팻 겔싱어(Pat Gelsinger)가 인텔 수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팻 겔싱어 CEO는 취임 직후 ‘IDM 2.0’을 선언하면서 다시 프로세서와 생산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로써 현재 인텔은 팻 겔싱어가, AMD는 리사 수가 이끌고 있죠.

짧게는 AMD, 길게는 인텔이 우세

앞으로 1~2년 간은 프로세서 시장에서 AMD가 우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텔은 6년 간 몰락의 길을 걸어 왔는데, 이를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CEO가 새롭게 취임한 이후 그 효과를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2~3년이 걸립니다. 팻 겔싱어가 CEO로 취임한 지 1년 정도 됐으니,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반사이익은 AMD가 얻는 것이고요.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현재 인텔 내부에서도 마진에 대한 문제를 지속해서 논의하고 있다”며 “인텔은 현재 내실을 다져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AMD에 비해 내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텔이 우세하다는 분석입니다. 인텔은 AMD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텔은 생산라인을 자체 보유하고 있지만, AMD는 모든 제품을 파운드리에 위탁생산해야 합니다. AMD는 TSMC 선단 공정을 주로 이용하는데, 현재 TSMC 선단 공정 생산라인은 2023년까지 예약이 모두 차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반도체 기업도 대부분 TSMC 선단 공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라인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따라서 AMD는 생산 측면에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AMD는 리사 수가 취임한 이후 콘솔, 셋톱박스 등을 기반으로 회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인텔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프로세서는 결국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칩을 효과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인텔은 프로세서를 개발하며 오랜 기간 소프트웨어 기술도 함께 개발해 왔기 때문에, 더 유리하다”며  “AMD가 자일링스 인수를 시도했던 것도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이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함을 암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텔과 AMD는 사업 특성상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양사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AMD가 인텔 시장점유율을 능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입니다. 해당 전문가는 “인텔이 AMD에 비해 전반적인 에코 시스템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에, AMD가 만약 인텔을 따라잡으려고 한다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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