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가 25일 공개한 플레이제트(Z)는 ‘OTT 포털’을 표방합니다. 제품 자체는 TV에 꽂아쓰는 OTT 셋톱박스라고 보면 편한데요. 스마트TV가 아니더라도 OTT 셋톱을 꽂아서 인터넷을 연결, 웬만한 구독 콘텐츠를 (이론적으로) 거의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제휴한 구독 서비스는 총 다섯개로 웨이브와 티빙, 왓챠,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애플TV 등이 포함됐네요.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서비스 중 하나인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는 아쉽게도 리스트에 없습니다.

셋톱이 아니라 ‘포털’이라고 명명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OTT를 하나도 구독 안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구독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데서 착안했다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경계선’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가정해볼까요? 그런데 이 영화가 어느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는지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웨이브에도 들어가봐야 하고 왓챠에도, 티빙에도 들어가서 확인해봐야겠죠? 귀찮습니다. 그런데 이 단말에서는 검색 기능을 적용, 경계선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으면 알아서 어느 OTT에서 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실행으로 이어준다는 겁니다. 검색해서 결과물을 찾게 했으니 포털이 맞긴 맞군요.

몇가지 기능이 더 있습니다. ‘채널제트(Z)’ 라는 걸 집어넣었습니다. 굳이 IPTV를 신청하지 않아도, 서른개의 실시간 무료채널을 제공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스포츠, 뉴스 등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스마트TV를 구매하고는 싶지만 비싸서 부담스럽거나, 혹은 세컨드TV에 IPTV 요금을 내기 아까울 때 쓰면 좋다고 SK브로드밴드 측은 말합니다. 

아,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문제. 비용이 나오겠군요. 단말기 값만 받습니다. 일시불로 7만9000원인데, 3년 약정하고 사면 한달에 2200원이라고 합니다. IPTV처럼 별도의 월 콘텐츠 요금료가 없다는 걸 강조하는데요. 서른개 채널을 제공하지만 일반 IPTV와 비교하면 볼 수 있는 콘텐츠 수가 훨씬 적으니까 이 단말은 사실은 셋톱이고(그러므로 단말기 가격만 받고) 대신 덤으로 “서른개나 채널을 무료로 본다고?”에 중점을 둬야할 것 같습니다. 아, 여기에 게임이나 노래방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CO 담당이 플레이Z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IPTV 회사가 왜 OTT 단말을 만드나?

대략적인 플레이Z에 대한 설명은 끝난거 같군요. 그러면 이제는 SK브로드밴드가 왜! OTT 셋톱을 만들어서 파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플레이Z라는 셋톱박스 자체가 신기하다기 보다는, SK브로드밴드가 OTT 셋톱박스를 만들어 판다는 게 더 흥미롭거든요.

아시다시피 SK브로드밴드의 주력 상품은 인터넷과 IPTV고요, OTT는 IPTV의 적입니다. 코드컷팅 현상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사람들이 OTT로 몰려가면서 아예 집의 IPTV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적과의 동침 수준이네요.

“피할 수 없어서 접근했다. 우리가 안해도 이미 대한민국 국민의 70%가 OTT 서비스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OTT를 하지 않는게 과연 정답일까?”

SK브로드밴드의 김혁 미디어CO담당이 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IPTV를 하는 회사가 OTT가 더 잘팔려야 살아남는 하드웨어를 만들어 뿌리다니, 제살 깎아먹기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질문에 김혁 미디어 CO는 피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미 OTT가 대세가 됐으니 우리도 이 길을 가야 한다고 답한 거죠.

김혁 CO의 말을 들으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납니다. 카카오가 모바일 메신저를 장악하기 직전에, 우리나라 메신저 시장의 톱은 네이트온이었습니다. 네이트온, 기억 나시는 분? 나이가…. 여튼, PC 메신저 시장을 다 먹고 있던 네이트온이었으므로, 모바일에 기민하게 대응했다면 지금의 대기업 카카오는 없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당시 SK에게 문자 서비스는 좋은 수익원이었고, 카니발라이제이션이 당연히 따를 모바일 메신저를 그룹 차원에서 적극 밀어주지 않았죠.


OTT가 카카오보다 덜 무서운 상대는 당연히 아닐 겁니다. 김혁 미디어CO는 OTT 이용자와 이용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변화를 일컬으면서 “간과하거나 더 이상 내일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연한 현실로 다가왔다”고 표현했는데요. 내부적으로 느끼는 심각도는 이 말에서 드러나네요. SK브로드밴드가 이날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국내 OTT 이용자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지난해 10월 기준 2490만명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70%가 이미 OTT를 경험해봤다는 또 다른 출처의 통계수치도 언급했습니다. “이정도 빈도라면 사실은 유료 방송에 필적하고, 이미 그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고도 말했는데요.

플레이Z가 나온 것은 이런 명확한 현실 인식 때문입니다. IPTV나 유료방송을 하는 사업자들이 OTT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죠. 일단은 현재로서 OTT 파편화로 인한 사용자의 불편이 이 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들이 TV를 떠나는게 아니라 TV에서 활용하는 서비스만 바뀌고 있는 것인데요. 이 TV의 시청 환경을 바꾸는데서 기존의 방송 사업자도 기회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본 것입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선 덜 유명하지만 ‘로쿠’라는 기업을 아시나요? 사람들은 OTT라고 하면 넷플릭스 같은 회사만 떠올리지만 사실상 로쿠는 OTT 시장의 숨은 승자로 일컬어집니다. 플레이Z와 비슷하게 OTT 스트리밍용 단말을 만들고 있는 회사인데요. 25일 기준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11억달러(약 26조원)입니다. OTT와 경쟁하지 않으면서 OTT에 올라타 성장하고 있는 회사의 성공 레퍼런스,  게다가 국내에서는 이 스트리밍 단말을 강하게 드라이브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 SK브로드밴드가 카니발라이제이션 염려에도 신사업에 뛰어들게 한 이유죠. 물론, SK그룹내 계열사에 웨이브가 있다는 것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SK브로드밴드는 일단 플레이Z를 내놓고 모든 시장 가능성을 본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빗장을 닫을 필요가 없죠. 우선, 브로드밴드 망만 고집하지 않고요. 갈등이 있는 넷플릭스도 언젠가 대화를 통해 파트너로 끌어들이겠다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미 플레이Z 출시에 앞서 애플TV 셋톱박스에 Btv를 탑재한 것도 SK브로드밴드에는 실험이었습니다. 두곳에서 나오는 사용자의 이용 데이터를 분석해 앞으로 IPTV가 살아나갈 길을 찾겠다는 전략을 SK브로드밴드는 세우고 있습니다. 김혁 미디어CO는 IPTV의 추후 변화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두고 “올해 안에 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혁 미디어CO의 손에 들린 조 자그만한 단말이 플레이Z 입니다.

 이게 잘 될까요?

딱히 안 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호매틱스의 OTT 셋톱박스 가격이 인터넷에서 9만9000원 정도입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안 되는 거요? 여기에도 안드로이드 OS가 돌아갑니다. 즉, 구글플레이에서 해당 앱을 내려받아 쓸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가 안 된다고 했던건, 선탑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콘텐츠를 검색해서 바로 앱과 연동해주는 검색 서비스가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게다가 SK브로드밴드의 제품이니 아무래도 외산 제품보다야 고장났을 때 한국어로 물어보기 쉬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익이겠죠. 아시다시피 이 제품은 한번 판매하면 그 뿐, 소비자로부터 추가적인 요금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SK브로드밴드는 ‘광고 모델’을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로쿠 역시 전체 매출의 80%를 광고에서 따오고 있거든요. SK브로드밴드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관전자 입장에서는 꿀잼이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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