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이름값

월트디즈니가 국내 ‘디즈니플러스’ 론칭을 한 달 앞두고 군불을 뗐습니다. 14일 온라인 쇼케이스를 열고 신작을 스무개나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들 중에는 강풀 작가의 인기 웹툰 ‘무빙’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있고요, ‘비밀의숲’을 쓴 이수연 작가의 신작 ‘그리드’도 포함됐습니다. 요즘 K콘텐츠가 잘 나가니까, 스무개 신작 중 일곱개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는 디즈니가 만드는 영상 구독 서비스입니다. 넷플릭스와 유사한데요, 국내에서는 오는 11월 12일에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아마 신작이 아니더라도 디즈니플러스에 지갑을 열 사람은 꽤 될 겁니다. 디즈니와 픽사, 마블과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스타(연예‧로컬 프로그램)라는 쟁쟁한 콘텐츠 브랜드의 작품을, 이 빠진 부분 없이 한번에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니까요. 로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이랑 팔콘의 앤서니 매키가 한국팬들을 환영하는데,  그동안 내가 못본 시리즈가 뭐가 있었는지를 저도 모르게 챙기고 있더라니까요.

넷플릭스나 왓챠, 유튜브, 웨이브, 티빙처럼 먼저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영상 구독 서비스들은 긴장할만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콘텐츠 소비자에게는 신나는 일이죠. 선택지가 넓어지니까요. 물론 지갑도 얇아질 수 있으니까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일도 생기겠죠. 디즈니플러스의 초기 파급은 꽤 클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니플러스에 직접 가입하는 소비자 외에도, LG유플러스 IPTV 및 모바일, LG 헬로비전 케이블 TV, KT 모바일 같은 파트너들이 디즈니와 손잡았습니다.

디즈니가 공개한 신규라인업이나 구체적인 정보는 이 기사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리해놓겠습니다. 제가 하고픈 얘기는 조금 다른 거라서요. 시청자보다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맞춰졌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디즈니가 타깃으로 잡은 부분 중 하나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신작 라인업 공개와 함께 하나 더 발표한 게 바로 크리에이터를 상대로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름하여,

‘APAC 크리에이티브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 .

수백명의 아태지역 최고 창작자들과 디즈니의 세계적인 감독-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맞춤형 이니셔티브입니다. 아태지역 전역의 창작자들이 마스터 클래스, 라이브 패널 행사 등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최고 경영진이나 크리에이터들과 만남의 기회를 갖게 한다는 것이죠.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힌트만으로 설레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디즈니 사단의 최고 제작진이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거나, 혹은 의사결정권들과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걸로 읽히니까요. 지금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조지 루카스의 촬영 현장에 내가 갈 수 있다니!”는 꽤 흥분되는 일이겠죠. 물론 디즈니는 오늘 발표에서 조지 루카스 얘기를 하진 않았습니다. 파트너의 하나로 루카스 필름의 로고가 지나갔을 뿐이죠.

루크 강 아태지역 총괄 사장은 “글로벌 콘텐츠 및 미디어 분야에서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아태지역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에 영감을 불어넣고 이 지역 창작 생태계가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이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이, 디즈니가 할 수 있는 이름값이라고 보았습니다. 디즈니는 이날 일년에 얼마를 투자해서 한국의 콘텐츠를 발굴, 세계에 선보이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투자액을 공개하기 꺼려했죠.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야 투자하겠지만, 먼저 돈부터 제시하진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혔고요(물론 창작 생태계에서는 돈을 약속해주는게 매우 좋긴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디즈니가 창작자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줬다고 봤습니다.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는 창구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모두 훌륭하죠. 당장 가입자 수만 따지면 넷플릭스가 더 많기도 하고요.

하지만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태생이 다릅니다. 그래서 매력적인 요소가 있죠. 넷플릭스는 (비디오 테이프 시절부터) 영상을 유통하는 데서 저력을 키우다 제작까지 손을 댄거지만, 디즈니는 영상 제작에 핵심 역량을 갖고 온라인 영상 서비스에 뛰어든거니까요. 스타트업으로 친다면, 우리 회사에 쩌는 개발자가 있다. 걔랑 일해보지 않을래? 정도 아닐까요.

국내산 디즈니플러스용 TV 시리즈가 나오는 것보다 더 큰 소식을 기대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상상도 부미랑잇의 디즈니 합류를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마블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부미랑잇시네마틱유니버스’에는 500명이 넘는 히어로가 있다고 하죠. 이들 히어로가 디즈니라는 더 큰 물을 만나 뛰어놀게 생겼습니다.

디즈니플러스가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로컬의 콘텐츠 슈퍼스타들과 협업하는 사례들이 계속해 나올텐데요. 원천 IP를 본다면, 국내에서도 가능성 있는 회사들이 떠오릅니다.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웹툰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겠죠. 무빙의 강풀 작가도 이날 쇼케이스에 참여해 “한번에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거니까, 한국형 히어로물을 잘 만들어보도록 하겠다”고 했는데요. 새로운 유니버스의 출연을 신나게 상상해봅니다.

 

디즈니플러스가 공개한 여러 사실들

– 국내 서비스 시작일: 2021년 11월 12일

– 가격: 월 9900원/ 연 9만9000원

–  사용 가능 기기: 모바일 및 태블릿 기기(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및 태블릿과 애플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 터치), 스마트 TV(최신 펌웨어 하이센스TV, LG TV, 2016년형 타이젠 이상 삼성전자 TV) 및 커넥티드 TV(구글 TV 및 안드로이드 기반 TV, 애플 TV 4K, 애플 TV HD, 크롬캐스트플레이스테이션 4, 플레이스테이션 5, 엑스박스 원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에스)

– 최대 4개 기기에서 동시 접속 가능, 최대 10개의 모바일 기기에서 다운로드를 지원. 시청 제한 기능을 통해 자녀들을 위한 인터페이스 설정 가능. 7명까지 사용자에 맞춰 프로필 설정.  그룹워치(Group Watch) 기능으로 온라인에서 함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음.

–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콘텐츠 브랜드(6개):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스타

– 디즈니를 통해 공개하는 한국 작품(스타를 통해 공개)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 ‘런닝맨’의 최초 공식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김종국, 하하, 지석진 등 ‘런닝맨’ 오리지널 멤버들과 매주 새로운 스타 게스트들이 새롭고 재미있는 게임을 선보인다.
<설강화>: 배우 정해인과 블랙핑크의 지수, 그리고 2019년 흥행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제작진이 팀을 이뤄 선보이는 로맨틱 멜로 드라마로 올해 방영 예정작.
<블랙핑크: 더 무비>: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데뷔 5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디즈니+와 영화관에서만 공개.
<너와 나의 경찰수업>: 경찰 대학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사랑과 도전을 담은 드라마로, K-팝 스타 강다니엘의 첫 연기 데뷔작이다.
<그리드>: 많은 수상 경력을 보유한 이수연 작가가 집필한 새로운 미스터리 스릴러다.
<키스 식스 센스>: 키스를 하면 미래를 보는 초능력을 가진 여자의 재기 발랄한 직장 로맨스 드라마로, 동명 인기 웹소설 원작으로 한다.
<무빙>: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액션 히어로 스릴러로, 세 명의 10대들이 선천적 초능력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 초대형 드라마.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주연.

– 한국 외 아태지역 주요 콘텐츠 라인업

<도쿄 MER: 달리는 응급실>: 일본 TBS 방송국과 특별한 협업으로 선보이는 의학 드라마로, 연기파 배우 스즈키 료헤이와 카쿠 켄토가 주연을 맡았다.
<BLACK ROCK SHOOTER DAWN FALL>: 음악, 액션 피규어,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로 제작된 바 있는 <블랙★록 슈터>의 리부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Summer Time Rendering>는 주간 소년 점프+(Shonen Jump+)에서 누적 1억 3천 뷰 이상을 기록한 최고 인기작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YOJOHAN TIME MACHINE BLUES(가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의 새로운 속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와 다수의 국제 수상 경력을 보유한 사이언스 사루(Science SARU) 프로덕션 스튜디오가 함께 작업한 최신작이다.
<Susah Sinyal (or Bad Signal)>: 동명의 인기 영화를 각색한 코미디 드라마로, 인도네시아 웨스트 자바 지역의 고급 리조트 호텔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Small & Mighty>: 연애의 조건 이후 인기 배우 진백림의 첫 대만 드라마 복귀작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를 담은 코미디 드라마다.
<Delicacies Destiny>: 인기 드라마 <연희공략: 건륭황제의 여인>을 성공시킨 베테랑 작가 우정(Yu Zheng)이 새롭게 선보이는 음식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중국 시대극이다.
<Shipwreck Hunters>: 디즈니+의 첫 호주 다큐멘터리로, 호주 서부의 광대한 해안선을 배경으로 대표적인 난파선 미스터리를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부미랑잇(Bumilangit)에서 첫 번째 TV시리즈를 공개할 예정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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