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이 다큐는 타다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큐가 끝날 무렵, 화면은 서울의 곳곳을 비췄다. 청계천에 우뚝 솟은 색색의 소라뿔 조형물, 고즈넉한 밤의 숭례문, 우주선이 내려 앉은 것 같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까지. 2020년 서울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갖가지 표정이 한데 짬뽕돼 뒤섞여 있다. 그 도시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백팩을 매고 성수동의 육교를 건너 출근하는 스타트업 대표도, 주황색 조끼를 입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 모여든 택시 기사도, 어쨌든 함께 살고 있다.

다큐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은 일명 ‘타다금지법’이라 불리는 여객운수법 개정안이 통과 되던 때의 이야기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타다 팀 VCNC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9월 30일, 극장 개봉을 보름 앞두고 열린 시사회에서 다큐를 연출한 권명국 감독은 “이 작품은 타다금지법이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은 한 스타트업 팀이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따라가보고 싶은 한 필름 메이커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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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타다’라고 하는 모빌리티 플랫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타다 베이직’이라는 서비스가 어떻게 없어졌는지를 다룬다. 후반부는, 핵심 사업모델이 하루아침에 ‘불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VCNC’라는 스타트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떻게 치열하게 노력하는가를 따라갔다. 카메라는 VCNC 내부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때로는 집요하다 싶을 만큼 타다팀의 고민을 담아냈다.

따라서 이 다큐는, 굳이 타다가 불법이었는지 아닌지를 세세히 따지지는 않는다. 양측의 팽팽한 논쟁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다.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의 불씨를 타시 키워서 “타다 베이직을 되살려내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흘러가는 상황에서 VCNC 팀이 무엇을 최선이라 결정짓고 어떻게 해결책을 도출하려 노력하는지를 화면에 옮길 뿐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카메라를 따라가면서 “내가 원하는 이동수단을 고르지 못하게 된 지금의 상황”보다 무언가 더 불편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타다를 불법으로 만든 2020년 3월 6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40일 앞둔 날이었다. 당시 법제 법사위원장이었던 여상규 전 의원은 여객운수법 개정안을 채이배-이철희 의원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가결 시켰다. 그날은 법원이 “택시보다 비싼 요금을 지출하고도 타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은 시장의 선택”이라며 타다의 합법을 선고한지 보름도 안 되던 날이기도 했다.

화면속 VCNC 팀원들은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1년을 넘게 이어온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불법이 된 상황을 믿기 어려워했다. 타다의 불법 여부가 거의 매일 미디어를 타던 그 때에, 이 논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목소리는 적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기술이 발전해서 계속해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는 때다. 다큐 속 이철희 전 의원의 말처럼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입장의 사람도 저런 입장의 사람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타다와 관련한 논쟁에서는 “타다가 불법이냐 아니냐”라는 기술적 논의가 앞섰고, 쫓기는 듯 내려진 결정에 정작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뒤로 숨어버렸다.

이 영화가 주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장병규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타다 사태를 돌아보며 그 본질을 “스타트업과 기득권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에서 찾았다. 스타트업은 미래의 비전을 약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비전이 사회에 더 큰 과실을 가지고 올 것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그 비전이 이뤄지기 까지는 고통도 따른다.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하고, 심지어는 생존에 위협받는 이들까지 생겨나기 때문이다.

시민의 합의체로 이뤄진 조직은, 미래의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당장 손해볼 수 있는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도록 노력하는 일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과실을 나누는 약속을 지키도록 감시하고, 그 사이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그런 일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리인이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사회 집단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 논란 뒤에 숨어서 권리자보다 큰 이익을 챙기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생각과 비전,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건 잘못이 아니다. 각 시대에 맞춰 지어진 건축물들이 각자의 자리에 위치해 지금의 서울을 이루듯, 지금 이 도시를 이뤄 세금내고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각자의 입장에 충실하게 살다보니 부딪히는 것이다.

나는 이 다큐가, 처음부터 끝까지 타다라는 사건과 창업을 뒤쫒고 있지마는, 결국에는 타다를 위한 다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다팀은 지금도 ‘타다 라이트’라는 택시 가맹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앞서 타다 베이직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 영화가 힘을 받는다면, 그래서 더 많은 관객이 ‘타다 스토리’를 보러 극장에 든다면, 아마도 지금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하게 충돌하는 가치를 조금더 차분히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어느 한 쪽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미래를 위한 일인지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그 사이 고통받는 사람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라도, 이 다큐의 가치는 충분하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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