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생활물류법 시행, 바뀌는 것
지금껏 B2B 화물운송 등을 포괄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됐던 ‘택배(택배서비스사업)’, 아예 법이 존재하지 않는 회색지대에 ‘자유업’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됐던 ‘이륜차 물류(소화물배송서비스사업)’가 양지에 나왔습니다. 오늘(7월 27일)부터 생활물류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시행됐기 때문입니다.
생활물류법이 규정하는 생활물류란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B2C, 혹은 C2C 물류를 이야기합니다. 생활물류법 제2조에 따르면 생활물류서비스란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소형ㆍ경량 위주의 화물을 집화, 포장, 보관, 분류 등의 과정을 거쳐 배송하는 서비스 및 이륜자동차를 이용하여 직접 배송하거나 정보통신망 등을 활용하여 이를 중개하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말이 좀 복잡하니 쉽게 풀어보면 대표적인 라스트마일 운송수단인 ‘택배’와 ‘음식배달’, ‘퀵서비스’, 이를 중간에서 중개하는 ‘플랫폼’이 생활물류서비스 적용 대상에 포함됩니다. 예컨대 CJ대한통운(택배), 인성데이타(퀵서비스), 바로고(배달대행)와 같은 라스트마일 물류업체 본사가 생활물류법이 적용되는 생활물류서비스 사업자가 됩니다. 생활물류법은 여기 더해 생활물류서비스 사업자와 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지역 영업과 물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영업점(택배 대리점, 퀵서비스 퀵사, 배달대행 지사), 사업자 또는 영업점과 계약을 한 종사자(택배기사, 퀵라이더, 배달기사)까지 법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합니다.
생활물류법의 탄생 배경
생활물류법이 탄생, 시행된 배경에는 ‘이커머스’의 빠른 성장이 있습니다.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주요 적용대상은 중대형 화물차를 활용한 B2B 간선 운송이었습니다. 예컨대 해외에서 선박에 태워 국내에 수입한 상품, 원자재가 담긴 컨테이너를 중대형 화물트럭을 활용해 공장, 물류센터 등에 적치하기까지의 과정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포괄하는 대표적인 사업 영역이었습니다. 물류의 시작점과 최종 목적지가 ‘기업’이었죠. 이 당시만 해도 ‘택배’는 그렇게 유의미한 규모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두 가지 큰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2003년 화물연대 파업입니다. 1997년 금융위기발 실업자 증가로 인한 화물기사 공급 증가, 태생적인 다단계 운송구조로 인한 단가 하락, 유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화물연대가 전국의 물류를 멈췄고, 1조원 이상의 국가적인 피해액이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04년 기존 누구나 요건만 충족하면 화물기사가 될 수 있었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신규 증차를 제한했습니다.
두 번째 변곡점은 이커머스의 파괴적 성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유통업계의 마이너리그였던 이커머스가 오프라인 유통을 쥐흔들고 있습니다. 이커머스에 당연히 따르는 상품 배송에 따라 ‘택배’도 덩달아 성장했죠. 하지만 법은 여전히 신규 증차를 규제하고 있었습니다. 1.5톤 미만 소형 화물차를 활용한 택배에 한해서는 역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한 이유이고, 택배업계가 오랫동안 ‘택배법’의 제정을 요구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물류법은 크게 ‘산업 진흥’과 ‘노동 권리 장전’, 두 가지를 목표로 두고 탄생했습니다. 이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와중 우리 생활에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 잡은 생활물류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육성, 관리, 진흥이 정부가 정한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이와 함께 물동량 폭증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내몰렸던 종사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생활물류법의 두 번째 목표입니다.
무엇이 바뀔까요?
먼저 소화물배송대행업 측면에서는 생활물류법 시행으로 당장 큰 변화가 관측되진 않습니다. 강제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업계의 자율적 개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법안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생활물류법의 시행으로 그간 자유업으로 운영됐던 배달 및 퀵서비스업에는 ‘우수 사업자 인증제’가 도입됩니다. 인증업체에는 소화물 공제조합 설립을 통한 이륜차 단체보험 가입 등 인센티브를 지원한다는 설명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안에 소화물배송대행업 우수사업자 세부 인증 기준을 마련하여 우수사업자 인증 신청을 받을 계획입니다.
반면, 택배 측면에서는 생활물류법이 가지고 오는 변화가 조금은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먼저 종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허가제로 관리돼온 택배업이 등록제로 전환됩니다. 정책적 목적에 따라 증차를 제한할 수 있었던 ‘허가제’의 제약이 택배업에 한해서는 사라집니다.
생활물류법은 ‘택배 본사’의 책임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생활물류법 제9조(영업점에 대한 관리)에 따르면 택배 본사는 영업점(대리점)의 안전 및 보건조치 여부를 본사가 직접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동법규 제8조(택배서비스사업자 등의 업무의 위탁 및 손해배상책임)에 따르면 택배 분실, 상품 파손 등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는 경우 택배 본사는 대리점, 택배기사와 연대책임을 집니다. 생활물류법 시행으로 종전 사고가 발생하면 위탁계약을 체결한 대리점,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택배기사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던 본사의 실질적인 책임이 강화된 것입니다.
생활물류법에는 택배기사(종사자)의 ‘근로 안정’을 위한 장치도 추가됐습니다. 생활물류법 제10조(택배서비스 운송 위탁계약의 갱신)는 택배기사의 중대한 귀책사유가 없는 한 6년간 택배사업자와 계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그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언제든 쉽게 해고될 수 있었던 택배기사의 근로 안정성이 생활물류법 시행으로 한 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택배업계에 적용되는 ‘표준계약서’ 마련도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과로방지 사회적 합의기구 최종 합의안에 따라 택배기사 분류작업 제외, 작업시간 제한, 불공정행위 금지 등 사회적 합의 주요사항을 표준계약서에 담았습니다. 법 시행 이후 택배사업자는 표준계약서 내용을 참고한 배송 위탁계약서를 마련하고 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게 국토교통부측 설명입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택배사들에 대한 등록제가 최초로 시행되고, 택배사 등록 요건에는 ‘표준계약서’ 적용 여부가 명시됐다”며 “만약 택배사들이 등록 요건 적용을 거부한다면 택배전용 번호판 ‘배 번호판’을 즉각 회수하는 등 택배업을 영유할 수 없도록 하는 강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표준계약서 도입의 의미를 평가했습니다.
공통된 변화는?
택배와 소화물배송대행업을 막론한 생활물류법 도입으로 인한 공통 변화도 있습니다. 먼저 이커머스 화주의 책임이 생활물류법에 명기가 됐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물류법 제34조(부당한 이익의 수취 및 제공 금지)에 따르면 그간 암암리에 행해져 온 소비자에게 물류비를 받은 물류업체가 그 일부를 ‘리베이트’, ‘백마진’ 형태로 화주에게 제공하는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됩니다. 화주가 물류업체 실계약 물류비 이상의 물류비를 소비자에게 받아서 편취하는 행위도 이제는 법으로 금지됩니다. 예컨대 1800원에 택배계약을 하고, 소비자에게는 2500원의 택배비를 받아서 남는 700원을 추가 수익으로 화주가 얻는 것은 법으로 규제되는 것입니다.
생활물류와 관련한 ‘표준계약서’는 택배뿐만 아니라 ‘소화물배송대행업’에도 도입됩니다. 생활물류법 제32조(표준계약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장관은 생활물류서비스에 관한 표준계약서를 작성과 사용을 권장할 수 있습니다.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사업자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인 지원을 우선할 수 있다고 법은 명기하고 있습니다.
생활물류법은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생활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육성, 지원을 한다는 계획입니다. 예컨대 지자체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 시 생활물류시설 확보방안을 관련 계획에 반영토록 하고, 낙후지역 물류시설 설치와 물류시설 첨단화를 지원합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새롭게 시행되는 생활물류법에 소비자 보호는 물론 종사자 처우개선, 산업의 육성 및 지원 사항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며 “생활물류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종사자를 보호하며 산업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 밝혔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