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아빠, 마인크래프트가 19금 됐대요”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초등학생 아들이 말한다.
“아빠, 마크가 19금이 됐대요. 저 마크 지워야 돼요.”
이 녀석이 말한 마크란 전 세계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다. 마크는 단순히 게임이라기 보다는 레고처럼 이것저것 만들어 볼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용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특히 여러 명령어를 조합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유사해서 코딩교육에도 유용하다. 어린이들에게는 유재석보다 유명하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도티’나 ‘잠뜰’은 마크를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성공했다.
마크가 19금이 됐다는 아들 놈의 말은 일부분 사실이다. 실제로 2014년 마인크래프트 개발사인 ‘모장 스튜디오’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한국 이용자들의 경우 만 19세 이상이어야 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MS는 보안을 이유로 기존 마인크래프트 계정과 자사의 엑스박스 계정을 통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셧다운제가 문제가 됐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심야(12시~6시)에 게임에 접속할 없도록 하는 한국만의 제도다.
MS가 셧다운제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국 이용자만을 위한 특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 세계에 공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MS는 한국만을 위한 특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한국인들은 성인만 계정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성인용 게임은 셧다운제를 위한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해 어린이날 기념 영상을 마크를 활용해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게임이 19금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게임 유저들은 이게 “다 셧다운제 때문”이라며 분노의 화살을 여성가족부에 퍼붓고 있는 상황이다.
셧다운제는 아동이 심야에 게임을 하는 것을 막아서 수면권을 보장하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아이들이 심야에 게임을 하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어 실효성도 없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만 갉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이들 수면권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 너무 투박하고 일방적이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종종 벌어진다. 디지털 환경에 대한 한국만의 규제가 글로벌 기업의 활동과 배치될 때 발생하는 문제다. 인터넷 기반의 경제 시스템에서 국경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국경 없는 세계에서 특정 국가만의 규제는 잘 통하지 않는다. 한국만의 규제는 의도한 효과는 발휘하지 못하고 그 규제를 무시할 수 없는 한국 기업의 발목만 잡는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한국의 게임사들은 셧다운제 시스템을 별도로 만들어야 하지만, 마크처럼 글로벌 게임사들은 간단히 이를 무시한다.
이런 일은 지난 10여년 동안 반복돼왔다.
한 예로 지난 2009년 유튜브는 한국으로 국가설정을 한 이용자들은 유튜브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했다. 당시 국내에는 인터넷 실명제라 불리는 ‘본인확인제’ 규제가 있었다. 댓글을 쓰기 위해서는 실명인증을 해야 했고, 인터넷 업체들은 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한국 이용자만을 위해 실명인증 시스템을 구축하길 원치 않았던 유튜브는 아예 한국 이용자들은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다.
이로 인해 유튜브만 국내 이용자들이 실명인증 없이 댓글을 달 수 있는 서비스가 됐다. 유튜브에서 국가 설정을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바꾸면 자유롭게 댓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동영상 서비스 시장은 판도라TV를 비롯해 국내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부터 유튜브 이용자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국내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귀찮고 하기 싫은 실명인증을 해야 했는데 유튜브에서는 실명인증 없이 댓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인터넷 실명제 버프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지금까지 국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건전한 인터넷 댓글 문화를 만들고자 만들어졌던 인터넷 실명제는 국내 동영상 시장을 유튜브에 넘겨주는 역효과만 내고 이후 2012년 위헌 판결을 받아 사라졌다. 국경이 없는 디지털 경제에서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우리만의 규제를 만드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아들에게 말했다.
“아니야, 마크가 19금이 된 것이 아니라 밤 12시 이후에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지 말고 자야 한다는 거야. 일찍 잘거지?”
“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