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무색하게, 반도체 업계는 지금 수급난으로 인한 패닉에 빠진 상태다. 분야를 특정할 것 없이, 세계적으로 반도체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반도체 가격은 올라갔지만, 공급 부족으로 인해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위기 해결을 위해 부랴부랴 정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 살리기에 팔을 걷는다. 정부는 13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K-반도체 전략은 2030년까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골자로 한다.

전반적으로 생산라인을 개발 및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전략을 발표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고객사 확보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잔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ㄹ

반도체 수급난, 파운드리만의 문제 아냐

반도체 부족이 심화되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익명의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에 따르면, 반도체 부족이 심화되면 반도체를 사용하는 전자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제품 생산이 부족하면 생산 업체의 실적이 하락하고, 이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생산 업체는 생산 규모를 부득이하게 줄여야 한다. 시장이 적은 공급에 적응하면 반도체 수요도 사라지게 되고, 이는 반도체 시장의 축소를 야기한다.

시장 전문가는 “애플을 비롯한 업체들도 부품 공급 영향으로 인해 맥북이나 아이패드 등의 제품을 ‘없어서 못 팔고 있다’”며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되면 기업들은 부품 없이 사업을 운영하게 되고, 그 결과 생산 업체도 더 이상 업체 대상으로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해 매출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가 위치한 대만은 코로나19로 인해 봉쇄조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전문가는 “실제로 대만이 봉쇄조치를 단행할 시, 부품 수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반도체 수급난에서 이어진 공급 라인 축소는 파운드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1분기에는 2~3분기에 사용할 재고를 축적해 두고 사업을 운영했으나, 이번에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1분기에 재고를 대부분 소진했다”며 “이 같은 현상은 모든 분야에서 다 일어나고 있기에, 재고의 부족은 결국 유통사를 비롯한 반도체 시장 전반에 패닉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반도체 살리기 나선 정부, “510조원 이상 지원할 것”

이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도 반도체 산업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1년 안에 반도체 분야에 41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향후 2030년까지 510조원 이상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단일사업 중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원사업이다.

정부는 반도체 설비를 증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설비 지원을 한다. 그 중에서도 파운드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정책은 ▲K-반도체 벨트 조성 ▲인프라 지원 확대 등이다. 우선 정부는 K-반도체 벨트를 조성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소량·맞춤생산에 적절하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8인치 파운드리를 증설하고, 7나노 이하 공정을 위한 EUV(극자외선 노광공정) 생산능력도 확대한다. 5나노 이하 공정 양산도 추진한다.

삼성 평택캠퍼스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도 팔을 걷고 나선다. 삼성전자는 평택 캠퍼스 3라인을 본격적으로 건설에 착수해 2022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 이 생산라인에서는 EUV를 적용한 14나노 D램, 5나노 시스템반도체를 양산한다. 또한, 시스템 반도체 사업 활성화를 위해 2019년 발표했던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당시 공개했던 133조원 투자계획에 38조원을 추가해 총 17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할 방침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금보다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국내 설비를 증설하고, 인수합병을 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검토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EUV 공정 기술 확보를 위한 EUV 클러스터도 조성한다. EUV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은 세계에서 ASML이 유일한데, 이 EUV 장비가 없으면 첨단 공정을 도입할 수 없다. 그만큼 생산라인에 EUV 장비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ASML은 오는 2025년까지 총 2400억원을 투자해 EUV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300명의 인재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정부는 에칭 및 식각기술, 소재산업 관련 인프라도 구축해 소부장 역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생산라인 확보, 그 다음 단계는 ‘고객사 확보’

지금은 반도체 수급난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정책도 약간은 생산라인 및 관련 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춘 모양새다. 하지만 단순히 생산라인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좀 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생산라인이 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장비도, 생산라인 수요도 많지만 이를 공급할 클라이언트도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점에 미국에 생산라인을 증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팹리스 강자 미국의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중 미국 기업은 6곳이었으며, 1위는 미국 통신칩을 설계하는 기업인 퀄컴이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아메리칸 퍼스트 정책으로, 미국 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에게 지원금을 주는 등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는 파운드리 중심으로 외주를 주려고 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AMD,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팹리스 강자를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지난 3월 TSMC는 미국에 6개의 생산거점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는 “TSMC가 미국과 밀월을 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미국 진출이나 오스틴 공장 확장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계획된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다가오는 5월 20일 미국 상무부에서 주최하는 반도체 공급 부족 회의에 참석하는데, 업계에서는 회담 이후 미국 진출에 대한 청사진이 공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K-반도체 전략은 업계에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생산설비 증설에 머무르지 않고, 좀 더 중장기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평가다.

한편,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후공정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곳도 있다. 또 다른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TSMC는 에코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업력이 적은 만큼 레퍼런스도 부족하고, 후공정 에코시스템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레퍼런스를 키우고 후공정 업체와의 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 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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