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사설 수리점에서 공식 수리를 제공하기까지

애플이 200여개국에서 개별 수리 서비스 제공업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한국도 대상 국가에 포함됐다. 그동안 애플 제품 수리는 애플스토어 혹은 애플 공인 서비스 제공업체(Apple Authorized Service Provider, AASP)에서만 가능했다. 개별 수리 서비스 제공업체 프로그램(Independent Repair Program)으로 부른다. IRP는 미국에서 2019년 먼저 시행됐으며, 캐나다와 유럽에서도 2020년부터 시범 운영했다. 현재 1500여개의 개별 수리 업체가 존재한다.

개별 수리 서비스 제공업체가 늘어난다고 해도 공인 서비스 업체의 서비스는 계속 유지된다. 즉, 소비자는 AASP든 IRP든 애플스토어든 집에서 가까운 인증 수리점에서 수리를 받을 수 있다. 가격 역시 기본적으로는 동일하다. 수리 가격이 조금 줄어들 여지도 있는데, 애플이 제공하는 부품(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은 정가에 공급되지만 다른 수리 부품 등을 애플이 인증한 제품을 썼을 경우 비교적 저렴하게 수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여지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개별 수리 서비스 인증은 AASP 인증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간소화된 것이다. 업체는 애플 인증 기술자를 1명 이상 상주시켜야 하는데, 인증 절차는 문서를 읽고 4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는 정도다. 이 과정은 무료로 진행되며 도구, 교육, 수리 매뉴얼 및 진단 시스템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인증 기술자는 지니어스 바의 지니어스처럼 제품 상태를 설명하고 진단해줄 수 있다. 특히 영어를 못해도 된다.

개별 수리 서비스 업체는 인증을 받고 난 후에는 사설 수리 업체처럼 행동할 수 없다. 프로그램의 문서에는 인증된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정기 감사나 검사에 동의해야 하는 문건이 있으며, 만약 비인증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벌금을 매기고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수리점을 검사할 수 있다고 한다.

애플의 IRP는 사실 해외에서 대두되고 있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있다. 수리할 권리는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대두되고 있는 소규모 수리 상점이 정품을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소매점이 수리할 권리를 갖고 있어야 소비자에게도 더 편리해진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에도 합당하다.

미국에서는 2019년, 수리할 권리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애플에 한해서만 한 청문회는 아니지만 미국 내 브랜드들이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데에 대한 청문회다. 요는 수리할 권리를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 역시 수리할 권리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EU에서는 지난 2020년 11월, 수리할 권리에 대해 의결한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 같은 의회의 결정에 따라 2021년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에 대한 수리할 권리 규칙을 발표했다. 따라서 유럽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10년 동안 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품 재고 단종 등의 문제가 10년 동안은 발생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 규칙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생각하면 현재에도 아이폰 4를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폰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5s까지만 수리할 수 있다.

프랑스는 EU 내에 있지만 조금 더 엄격하다. 프랑스는 2021년 1월부터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잔디 깎는 기계 등에 대해서 ‘수리 가능성 지수’를 발표하도록 한다. 수리 가능성 지수는 분해하기 쉽거나 부품 수명이 얼마나 긴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점수를 매긴다. 이 법안은 이미 시행되었으므로 현재 애플 프랑스는 수리 가능성 점수를 스토어에서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폰 12는 10점 중 6점을 받았고, 아이폰 11은 4.5~4.6점을 받고 있다. 아이폰 12의 점수가 높은 이유는 더 분해하기 쉽고 예비 부품 가격이 폰 값 대비 저렴하기 때문이다.

수리 가능 지수를 공개하는 애플 프랑스 스토어

프랑스가 이러한 법률을 도입한 이유는 프랑스 내 전자제품의 40%만이 수리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5년 내 이를 6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매년 1인당 16kg 이상의 전기 폐기물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은 고장 난 가전제품에서 나온다. 따라서 이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고 수리 가능성을 높이면 그만큼 전자 폐기물이 줄어든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권리 주장이 있었다.

프랑스의 시행과 EU의 정책으로 인해 애플은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고 수리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즉, 시민들이 아이폰을 더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가능성을 높여온 것이며, 애플은 이에 화답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쨌든 이로써 수리점들은 공식 부품을 정가에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에 존재했던 AASP는 정해진 물량, 즉 개인 수리점이 감당할 수 없을만한 물량을 구매해야만 했지만 이러한 제약이 많이 사라진 셈이다. 근처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도 좋은 결정이다. 특히 애플 매장이 없거나 공인 수리점이 적은 지역에서 공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애플 개별 수리 서비스 제공업체 프로그램은 이번 주말부터 support.apple.com/irp-program에서 지원할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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