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콘텐츠로 젊어질 수 있을까?

“참 억울할 것 같다, KT 내부에 계신 분들이”

김철연 KT 스튜디오지니 공동대표가 23일 열린 KT그룹 미디어 콘텐츠 사업전략 발표에서 한 말이다. 김철연 대표는 CJ ENM과 네이버를 거친 후, 그룹 콘텐츠 전략 사령탑의 일원으로 지난달 KT에 합류했다. CJ ENM과 네이버는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온 회사들이다. 그에 반해 KT는 보수적 이미지가 강하다. 통신으로 성장한 회사라, 콘텐츠의 문법을 잘 읽을 수 있을지 외부에서는 KT를 반신반의하며 바라본다.

그는 “사람들이 KT 너무 느리지 않아? 보수적이지 않아?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간혹 있는데, 제가 들어와서 한달동안 느낀 KT는 굉장히 빠르고 탄력적이며 융통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 KT 대표는 이 말을 “제가 그 억울한 사람 중 하나”라고 웃으며 받았다.

(맨 왼쪽부터 순서대로)KT 커스터머 부문장 강국현 사장, KT 구현모 대표, KT 스튜디오지니 김철연, 윤용필 공동 대표

이 억울함은, KT가 그룹 내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제대로 끌고 갈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외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데서 온다. ‘구조’로만 본다면 국내에서 KT만큼 탄탄한 시스템을 갖춘 곳은 드물다. 일단, 콘텐츠를 제작한 후 상영해 투자회수까지 끌고오는 전 단계별 계열사를 모두 갖췄다.

위의 사진들은 KT가 이날 발표에 쓴 자료들이다. 계열사인 스토리위즈를 통해 웹툰과 웹소설 등 원천 IP를 확보하고, 이를 스튜디오 지니를 통해 제작한다. KT는 그룹 안에 콘텐츠를 배포할 통로도 여럿 가졌다. 우선 스카이TV라는 채널과 유료방송 플랫폼인 올레TV, 스카이라이프가 있다. 모바일 OTT로는 시즌을, 음원유통 플랫폼으로는 지니를 확보했고, 판권 판매를 하는 KTH도 갖췄다. 심지어 현대HCN 인수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구현모 대표는 “HCN 인수가 마무리 되면 1300만 정도 유료방송 가입자를 가진 국내 최대 플랫폼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도 탄탄한 구조를 갖췄음에도, 콘텐츠 사업에 있어 KT는 박한 평가를 받아왔다. 물론, 이유는 있다. KT를 비롯한 통신사들이 “콘텐츠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말해온 역사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전국에 보편화되던 시점이라, 미래 먹을 거리는 콘텐츠에 있다고 보고 계열사간 협력과 시너지를 강조했었다. 나름의 성과는 있었지만, KT를 콘텐츠 회사라 느끼게 할 만한 변화는 아니었다. 또, 웹툰 웹소설 시장이 성장하면서는 이를 전담할 플랫폼 스토리위즈를 만들었으나 그룹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는 읽히지 않았다.

다만, 이번의 KT 발표는 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단지 말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OTT의 성장이 코드커팅을 이끌면서 콘텐츠 제공업체와 플랫폼 제공업체 간 경계가 붕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통신사의 주요 사업인 IPTV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다. 매출 측면에서도 통신사에 콘텐츠 사업은 중요하다. 지난해 KT그룹이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3조1939억원으로, 지난 10년간 연평균 15% 수준씩 증가해왔다.

따라서 KT는 지난해 10월, 그간의 통신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해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로 거듭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그룹내 콘텐츠 전략을 이끌 조직으로 ‘KT 스튜디오지니’를 발족했다. 수장으로 KT 내부에서 윤용필 스카이TV 대표를, 외부에서는 김철연 네이버 엔터서비스 조직장을 불러 앉혔다. 구 대표는 김철연 대표를 일컬어 “어렵게 모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룹의 전체 미디어 전략을 짤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 외부 전문가를 앉힌 것은 KT 나름으로서는 이번엔 진짜 잘해보겠다는, 우리가 달라졌다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구 대표를 비롯해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KT 그룹 사장단은 전부 정장을 벗고 청바지를 입었다.

다음은 KT의 이날 발표에 따른, 앞으로 KT가 할 일의 목록이다.

– 기존의 콘텐츠 비즈니스와 전혀 다른 새로운 ‘With KT’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

– KT그룹이 보유한 플랫폼 간 유기적인 협력을 주도해 각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토대로 국내외 유력 제작사 및 플랫폼 사업자들과 상호 호혜적 파트너십 맺기

– 글로벌 OTT의 제작 하청 기지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의 우려를 국내 자본과의 상생으로 해소하고,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

– 이를 위해 KT 스튜디오지니는 자체 플랫폼이 없는 순수 제작사를 비롯해 국내외 OTT, 모바일 플랫폼 기업 등과 과감하고 광범위한 협력을 도모

– 현재 KT 스튜디오지니는 흥행 작품으로 실력을 증명한 바 있는 제작사 10여 곳을 비롯해 중소 제작사 10여 곳과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의 협력을 추진 중

– 그 동안 콘텐츠 제작사의 IP를 대가로 제작비를 지원하고, 제작비 중 일부를 마진으로 주고 받아 온 업계의 일반적인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

– KT 스튜디오지니는 콘텐츠 수익뿐만 아니라 IP 자산 까지 제작사와 공유하며 흥행한 콘텐츠가 제작사의 실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

– 국내 창작자들의 육성. 신진 창작자와 제작사를 발굴해 올레 tv, Seezn(시즌)에서 방영될 ‘숏폼 콘텐츠’ 제작을 맡기고, 이를 토대로 향후 대작 콘텐츠까지 제작할 수 있는 ‘메가 크리에이터’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

– KT 스튜디오지니는 2023년 말까지 원천 IP 1,000여 개 이상, 드라마 IP 100개 이상의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구축.

– 미디어 빅데이터를 통해 성공 키워드를 분석하고 흥행 예측률을 높혀 성공률이 높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

– 외부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한 전문 인력의 영입과 육성도 함께 추진할 방침.

– IP 펀드를 조성하고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스토리위즈의 원천 IP 확보와 개발에 속도.

– 30여 개 타이틀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KT그룹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공.

– 스카이티브이의 실시간 채널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핵심 대작(텐트폴, tent pole)’ 드라마를 제작하고, 시청률 순위 10위권 내 진입을 목표.

– KT 스튜디오지니의 첫 작품은 올해 3분기 내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 콘텐츠 제작 물량은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

– 이외에도 국내외 다양한 플랫폼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 콘텐츠 판로를 확장할 계획.

 

KT의 말마따나 넷플릭스 같은 해외 자본의 한국 시장 침투율이 커지고 있다. 또, “대형 제작사 중심으로 구성된 주요 OTT 사업자들의 콘텐츠 라인업에 중소 제작사들이 합류하는 것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KT같은 그룹이 시장에 자본을 수혈하고, 콘텐츠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상생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것은 국내 콘텐츠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일이다. IP 자산 공유 등 수익 배분과 관련해서는 나름의 파격적 결정도 보이는데, 이는 후발주자로서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으려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구현모 대표는  “KT그룹 역량을 미디어 콘텐츠로 집결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해내며 K-콘텐츠 중심의 글로벌 시장 판도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겠다”고 말했다. KT가 콘텐츠 시장에서 어떤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볼 일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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