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싸이월드에 쌓여있는 수많은 사진을 이젠 보지 못한다. 지난 2000년, 처음 디지털카메라라는 신기한 물건을 구입하고 신기한 마음에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려놨었다. 하지만 수백장일지 수천장일지 모르는 그 사진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싸이월드의 몰락과 함께 내 20대의 추억은 묻혀버렸다.

사실 나는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부터 싸이월드에 있는 데이터를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싸이월드의 데이터를 페이스북으로 옮겨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싸이월드의 데이터를 페이스북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면 나는 인생의 첫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여전히 볼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 . 만약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내가 다른 플랫폼으로 또 이동한다면 페이스북에 쌓은 데이터 역시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내가 갖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다. 이용하는 SNS 서비스를 갈아탈 때 내 데이터를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걸 데이터 이동권, 또는 개인정보 이동권이라고 한다. 개인정보의 주인은 서비스 업체가 아니라 이용자 개인의 것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데이터 이동권은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 처음 입법화되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이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다른 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나아가 이용자가 지정한 다른 사업자에게 정보를 이동하도록 서비스 업체에 요구할 권리도 갖는다.

우리나라도 개인정보 이동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통과된 신용정보법에 처음으로 개인정보 이동권 개념이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신용정보를 보유한 금융기관은 이용자가 마이데이터 업체(본인신용정보관리회사)로 데이터 이동을 요구하면 따라야 한다. 다만 이는 신용정보에 한정된 것이다. 신용정보란 “금융거래 등 상거래에서 거래 상대방의 신용을 판단할 때 필요한 정보”라고 법에 규정돼 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있는 내 사진이나 글은 신용정보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재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서 전방위적 데이터 이동권을 도입하는 법률을 준비중인데, 여야에 특별한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지난 달 8일 ‘데이터 기본법’을 발의했다. 데이터로부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데이터 산업발전의 기반을 만들자는 취지의 기본법으로,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률보다 상위법이다.

이 법안에 ‘데이터 이동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르면 개인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정규모(대통령령으로 정함) 이상의 기업이나 기관은 이용자가 요구할 때 본인이나 마이데이터 회사, 다른 개인데이터처리자에게 데이터를 전해줘야 한다.

이 법은 조 의원이 발의했지만 사실상 정부 입법안이다. 정부가 법을 만들어서 여당의 조 의원에게 발의를 부탁한 법이다. 정부가 법을 만들 때는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훨씬 간소한 절차로 발의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종종 여당 의원에게 법률안 발의를 부탁할 때가 있다. 정부 입법안이라는 것은 흐지부지 넘어갈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원 한두 명이 추진하는 법률안과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는 법률안은 무게감이 많이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야당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법이 발의됐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등 10인)은 지난 달 22일 ‘데이터의 이용촉진 및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도 데이터 이동권이 정의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이용자(데이터주체)는 개인데이터를 다른 서비스 제공자에게 전송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개인데이터의 전송요구를 받은 자는 지체 없이 개인데이터를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로 처리가 가능한 형태로 전송하여야 한다.

여야에서 모두 광범위한 데이터 이동권 개념을 포함한 법률안이 발의됐다는 점에서 머지 않아 데이터 이동권을 규정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현재는 개인정보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다른 법률 및 기관과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스타트업 등 기존에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지 못한 기업에는 큰 기회가 될 전망이다. 데이터 락인(Lock-In)은 새로운 서비스로의 이동을 꺼리게 만드는데, 데이터 이동권이 보장되면 훨씬 더 자유로운 서비스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이용자경험을 창출한다면 이용자를 보다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 뱅크샐러드 김태훈 대표는 “내 정보를 내가 마음껏 활용하지 못하는 환경이 모든 정보비대칭의 근원”이라면서 “정보 이동성이 확장되면 플랫폼 독점으로 인한 데이터 독점을 막는다”고 말했다.

반면 스타트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이용자가 원할 때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추가 비용이 부담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데이터를 구축한 회사도 데이터 이동권 도입이 껄끄럽다. 데이터는 절대적인 경쟁우위요소였는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데이터가 경쟁우위요소가 되지 못하면 데이터를 수집하고 쌓으려는 노력이 줄어들 우려도 있다.

또 외국 회사에 같은 데이터 제공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외국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제라면, 국내기업 역차별만 불러올 우려도 있다.

이진규 네이버 최고개인정보책임자(CPO)는 “(과도한 데이터 이동권 도입은) 데이터를 잘 쌓기 위해 노력한 ‘개인정보처리자’의 데이터 구축 동인(인센티브)를 빼앗을 수도 있다”면서 “전송요구권은 당초 유럽연합이 미국 테크 기업을 견제하여 ‘록인(lock-in)’을 해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기도 하며, 전송요구권이 헌법상의 ‘자기정보결정권’에 기반하여 보장되어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