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내 1조원 규모 펀드 만들 것” 하나벤처스, 김동환 대표

스타트업을 움직이는 두 축을 꼽으라면 사람과 돈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 적절한 자금을 투자받게 되면 – 그리고 기회를 잘 잡는다면- 소위 말하는 ‘유니콘’이 탄생한다. 따라서, 이 ‘돈’을 움직이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올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내년에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난달 27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하나벤처스를 찾았다. 김동환 대표가 사령탑을 맡은 이 조직은 태어난 지 만으로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 6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흑자를 냈다. 김 대표는 골드만삭스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을 거치며 증권, 벤처투자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에게 하나벤처스의 운영 방향과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지난달 27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하나벤처스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A부터 Z까지, 모두 아우르는 벤처투자사 지향

“벤처캐피탈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할 돈과 그 돈을 운용하는 사람”

하나벤처스에는 최근 시니어급의 투자심사역이 두 명 충원됐다. 회사가 커지고 있다고 운을 떼니까 김 대표는 “12월 말에 두 명이 더 들어온다”고 답했다. 연말까지 열세 명이 되는 건데, 지난해 대여섯 명이 꾸려온 살림과 비교하면 일 년 사이 두 배가 넘는 규모가 됐다. 성장이 빠르다고 말했더니 김 대표는 “내년이나 내후년의 성장계획에 비하면 아직 사람이 적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지금보다 사람이 50%는 더 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큰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곳들은 80명, 90명의 심사역이 활동한다.

VC에 왜 더 많은 심사역이 필요할까?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서다. 시장에 돈이 많을 때는 어떤 스타트업이 더 좋은 곳인지 가려내기 까다로워진다. 창업하는 곳도 많아진다. 그만큼 심사역의 수와 안목이 중요해진다. “시장에 돈은 많은데 사람을 모시는 게 더 어렵다”는 김 대표의 말이 엄살이 아니다.

특히나 하나벤처스는 성장 단계와 분야를 막론하고 투자를 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씨드부터 프리 IPO 단계까지 투자를 하는데, 지난 2년간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시리즈A까지가 전체의 70%를, 시리즈 B 이상이 30%를 차지한다. 분야도 특정하지는 않는다. ICT와 바이오 전 분야가 투자 대상인데, ICT 내에서도 제조, 서비스, 게임, 유통, 커머스, 핀테크를 모두 포괄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심사역 역시 각 단계별, 분야별로 특기가 있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투자 생태계에서는 조금 드물어 보인다. 통상 특정 단계나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 VC를 그동안 언론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리 스테이지에 만난 회사의 다음 투자를 따라가려고 해요. 국내 벤처캐피탈은 그걸 잘 안 하죠. 투자하고 다음 단계에 회사의 밸류를 높여 비싸게 투자를 받으려고 하지, 자기네가 따라가려 하진 않아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김 대표에 따르면 요인은 여러 가지다.  어느 회사가 잘 될지 보는 눈이 없으면 투자를 많이 해서 모수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잘 되는 곳을 골라보는 눈이 있다고 하면, 그곳에 더 많이 몰아주는 게 가능하다. 그다음에, 재원이 충분해야 후속 투자를 따라갈 수 있다. 이 일을 아무 회사나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벤처스의 포트폴리오

 

따라서 하나벤처스는  3년 후인 2024년 초까지 펀드 규모를 1조원으로 키우는 걸 목표로 삼았다. 현재 하나벤처스의 펀드 규모가 2100억원 규모니 3년 후 다섯 배 성장을 노리고 있다. 1조원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벤처투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큰 투자는 외국 자본이 한다고들 말을 하잖아요? 그걸 극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투자를 크게 받아 회사 가치가 1조원이 되는 소위 ‘펀딩 유니콘’ 말고, 투자자금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리를 잡은 회사가 조 단위 가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수백억원 단위의 투자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런 투자를 리드하려면 최소한 운용 자산이 1조원 규모가 되어야 해요.”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로 성장을 위한 점프를 하려면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대표들이 투자 설명회를 돌아다닌다. 자신의 서비스와 제품이 어떻게 가치가 있고 가능성이 있는지를 투자자들을 앞에 두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에 300억원, 500억원씩 집행할 수 있는 투자사가 있다면 스타트업 대표의 수고는 줄어들게 된다.

예컨대 작은 규모의 투자사 열 곳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300억원을 만든다면, 스타트업 대표는 같은 금액을 모으기 위해 열 번, 스무 번의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한 곳의 투자사가 한 번에 300억원을 집행한다면 스타트업 대표는 투자 설명에 쏟을 시간과 노력을 제품이나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해 쓸 수 있다. 이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1조원 펀드의 힘이라는 것이다.

∎ “독점 막는다고 투자 안 되는 것 아니다”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인수합병에 조건을 걸었다는 뉴스였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합병하면 시장 독점이 되니 딜리버리히어로에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다. 이 일을 놓고 여론이 크게 두 개로 갈렸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시장 독점이 되니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스타트업 엑시트의 길을 막아버리면 누가 큰 규모의 투자를 하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 논쟁은 단순히 배달의민족 인수합병 하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 경제라는 것은 통상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게 배달이든 모빌리티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또 국내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새 행정부도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등 거대 IT기업에 반독점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큰 규모의 투자를 하려는 입장에서는 이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결국 회사가 커지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생기죠.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를 보면 어디든 독점에 대해서는 다 제약을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려면 독점이 생기지 않도록 시장의 룰이 정해져 있어야 하고, 잘 지킬 수 있게 원칙을 만들어야 해요. 제가 싫은 것은, 이럴 땐 해주고 저럴 땐 안 해주는 거죠. 그런 불확실성이 싫은 겁니다. 독점이 시장에 나쁘다는 건 다 알죠. 그러면 어떤 게 독점인지, 그 기준에 대해 정확히 해야 합니다. 여론에 맡기고 이런 것 말고요.”

의외였다. 사실 김 대표에게서 공정위를 비판하는 발언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에게서 나온 것은 ‘예측 가능한 규제’의 필요성이고 ‘공정한 시장경제’였다.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 있다고 팔이 안으로만 굽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시장에 어떤 지켜야 할 독점 기준과 룰이 있다면, 독점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커졌을 때 회사는 사업 다각화를 한다든지 하는 대책을 세울 수 있어요. 시장에 정확한 룰이 있어서 어느 기준을 넘어 쪼개도록 원칙이 세워져 있다면 쪼개야 한다고 봅니다. 서비스가 너무 좋고, 시장에 경쟁이 없다면 그런 기업은 시장의 룰러(Ruler)가 되는 거겠죠? 그러나 그조차도 시장의 어느 원칙을 위배한다면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기준이 있는 규제는 지켜야 하죠. 다만, 나쁜 것은 기준이 없는 규제입니다.”

정확한 룰이 있고 이를 시장에서 잘 따른다면 기업이나 투자자 모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으므로 투자는 지속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장 나쁜 것은 규칙 없이 여론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스타트업과 관련한 여러 정책 결정에서 여론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타다 때도 그랬다.

“기업의 이익을 여론전으로 결정할 순 없죠. 중요한 것은 소비자 편익이 무엇이냐 아닌가요? 독점은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막자고 하는 겁니다. 거기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엑시트 여부나 유니콘 육성 등은 이 논의에서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만 봐야 해결책도 더 빨리 나올 수 있죠.”

∎내년 투자 시장은 ‘리스크온’, 스타트업에 기회 많아

김 대표는 올해 투자 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코로나’를 꼽았다. 코로나로 인해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체적으로 보면 투자 액수 자체는 줄지 않았으나 투자를 받았다는 곳의 수는 줄었다. 통상 투자사와 스타트업이 초반에 ‘끈끈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면 미팅을 많이 하는데, 코로나 시국에서는 대면 미팅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것이 전체 투자 건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화면으로 볼 때와 직접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상대방의 열정이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요. 와이파이로는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죠(웃음). 한계가 있어요. 내재적 역량이 강한 분한테 비대면 미팅은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외에 올해 또 다른 특징으로는 거대담론의 실종을 언급했다. 투자분야에서 큰 물줄기의 변화가 올해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만 해도 4차사업이라든가 인공지능, O2O 같은 큰 흐름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런 키워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키워드가 나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다만, 내년 투자 시장은 좋을 거라고 예측했다. 유동성이 많이 풀렸기 때문에 ‘리스크온(risk-on, 주식이나 고금리 통화처럼 리스크가 큰 자산에 자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리스크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을 뜻함)’ 상황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기에도, 또 잘 되어 커진 회사가 엑시트 하기에도 리스크온인 상태가 좋아요. 다만, 이런 상태에서는 실력의 진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 대상을 더욱 신중하게 봐야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김 대표는 젊은 창업자에게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의사결정에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 자신도 지금까지 오면서 수많은 결정을 했고, 또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기도 했다. 조급하지 않게, 3년 후의 미래를 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한다. 이 이야기는 김 대표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하나벤처스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2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