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물류자회사, 설립할 수 있을까
2020년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26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물류업계에서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는 해묵은 주제인 대기업 화주사의 물류자회사(2PL) 설립과 관련된 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포스코(POSCO). 포스코는 지난 5월 연 1억6000만 톤에 달한다는 그룹 물량과 3조원의 물류비에 대한 운영, 관리를 총괄하는 자회사를 연내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스코는 물류자회사를 통해 기존 분할 운영되던 물류 운영을 통합하여 효율성을 만들고, 철강사업 본연의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운, 물류업계는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 계획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다. 포스코가 모회사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물량을 자회사에 몰아주고, 기존 직접 계약하던 물류기업들을 물류자회사의 재하청 업체로 전락시키면서 비용을 전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종국에는 포스코가 물류자회사를 통해 ‘해운업’에 직접 진출함으로 기존에 협력하던 물류업체와 경쟁하는 모습을 예측하는 의견도 함께 제기된다. 실제 항만물류업계는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한국선주협회 등의 이름을 빌려 포스코의 물류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진출을 반대하는 업계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26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포스코의 물류자회사가 생기면 막강한 시장 지배적 위치를 기반으로 해운물류 기업에게 끊임없는 저가의 운임을 강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운선사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 모두가 고통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류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포스코는 지난 90년대 거양해운을 설립했다 시장에서 철수한 적이 있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해운업 진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현재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 설립 반대의견을 무마하기 위해서 해운업에 진출을 안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예전 현대그룹이 물류자회사 설립 이후 해운업에 진출한 것처럼 해운업을 건드리게 될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배경 설명은 이쯤하고, 포스코의 물류자회사는 과연 연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을까.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온 국회와 포스코, 정부는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공유한다.
국회의 입장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포스코의 2PL 물류기업 설립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였다. 우리나라의 물류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 정책이 3자 물류기업(3PL)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여태까지 다른 대기업의 물류자회사 설립 선례를 봤을 때 갑질, 일감 몰아주기 등 여러 시장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여러 부작용 중 하나로 ‘갑질 횡포’가 지적됐고, 실제 시장 교란행위, 물류 경쟁력 악화 등의 문제들이 언급됐다”며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업 물량을 받아서 제 3 하청업체에 넘기는 하나의 포워더 기업 역할밖에 할 수 없을텐데, 이런 식의 물류회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이야기 돼왔다”고 말했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대기업 물류자회사가 모기업 물량을 무기로 해운기업에 계약 파기를 운운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등의 갑질 행위로 인해 해운법이 개정된 선례가 있다”며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를 만들어 들어온다고 하면 여러 가지 폐단이 상상되고, 해양수산부에서도 대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권선동 국민의힘 의원은 “포스코 말마따나 특별히 물류비 절감을 할 이유도 없고, 물류체계만 개선을 한다고 하면 굳이 물류자회사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물류비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겠다고 말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물류자회사는 경영실적 개선을 위해서 운송사에게 물류비를 전가할 수밖에 없다. 모회사에서 실적을 요구하면서 쪼는데, 전문 경영인 입장에서 임기 연장하려면 뻔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스코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슈퍼갑 화주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화주가 물류산업에 뛰어들면 당연히 비용절감을 추구할 것이고 사회적인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렇다면 포스코 물류자회사 설립이 그 갈등을 넘거나 덮을 만한 사회적인 효용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입장에서 그 효용은 포스코 자사의 비용절감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포스코의 입장
26일 농림축산시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포스코측 증인으로 김복태 포스코 물류통합 TF팀장(전무)이 출석했다. 김 팀장은 국회의 지적에 포스코 물류자회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의견을 관철하면서, 업계에서 우려하는 해운업 진출이나 물류 단가 조정 등의 변경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김 팀장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해운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굳이 포스코가 물류자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철강업계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물류 자회사 설립으로 중복 업무에 대한 비효율성을 없애고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게 포스코측 입장이다. 이와 함께 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기술을 물류자회사 설립과 함께 적극 도입한다는 게 포스코의 계획이다.
포스코는 신설 물류자회사의 ‘해운업’ 진출설에도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혹여 물류자회사를 만들더라도 저단가 요구 등이 없이 기존 물류업체들과의 계약 관리 조건을 그대로 이관하고 변동 없이 운영한다는 게 포스코의 강조사항이다. 김 팀장은 “특히 원료전용선은 20년 장기계약으로 돼있기 때문에 운임이나 계약조건은 현행 그대로 유지할 것이며, 제품과 관련해서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 입찰된 낙찰 가격을 가감 없이 지불할 예정”이라며 “포스코는 지금까지도 선화주 상생 모범기업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물류 자회사들과 계속해서 상생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 말했다.
굳이 중복 업무를 통합하는 데 ‘물류자회사’가 필요하냐는 국회의 지적에는, 검토를 했지만 집중력을 유지하고 합의(컨센서스)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별도의 법인을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게 포스코측 설명이다.
김 팀장은 “일본, 중국, 유럽의 주요 글로벌 철강사들은 모두 물류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회사 운영을 통한 효율성 증대를 통해 철강 본연의 경쟁력을 개선하고 있다”며 “포스코도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입장에서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철강업계 상황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봤다”며 물류자회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부의 입장
첨예한 논란이 이어졌지만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을 막을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현행법상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을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추구하는 물류산업 육성 원칙이 ‘3PL(3자물류회사)’ 육성에 맞춰진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정부는 포스코의 방법이 정부의 방향과는 어긋난다고 본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석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유감스럽게도 현행법상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이 정부의 기본 물류 정책 육성 방향과 어긋나는 것은 맞다”며 “정부가 3자 물류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물류기업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전문성 제고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일으킴으로 여러 부가가치를 만들어서 지역과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자 함인데, 포스코의 방향은 그런 차원과는 맞지 않는다. 아무튼 더 많은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양수산부가 우려하는 바를 전달만 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결국 기존 방향대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고 그 이후 한참 동안 갈등의 소용돌이가 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에서도 해양수산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당연히 관련부처에 의제로 올려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이것(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은 분명히 갈등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에서 입장을 정리한 다음에 포스코의 물류자회사 설립의 효용이 높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고, 갈등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회사를 설득해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문 장관은 “문제제기 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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