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발표

한진이 최근 발생한 연이은 택배기사 사망 사고에 과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앞서 20일 한진택배 선정릉대리점 소속 택배기사의 갑작스런 사망에 사과문을 발표한 것에 빠르게 이어진 조치다. 한진은 임직원 일동 이름의 사과문을 통해 “당사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택배물량 급증에 따른 택배기사분들의 업무 과중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물량제한, 터미널 근무 환경 개선 등 근로조선 개선에 최우선의 역점을 두고 적극 실행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대책 발표는 사과문 이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방안이 정리된 것.

한진은 크게 4가지 방안의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심야배송 중단을 통한 초과근무 방지 대책 마련, ▲분류지원인력 추가 투입을 통한 택배 분류 업무 축소, ▲ 터미널 자동화 투자 확대를 통한 분류 업무 축소, ▲택배기사 건강보호 및 산재보험 조치 마련 등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심야배송 중단 및 물량 분산

한진은 먼저 오는 11월 1일부터 택배기사의 심야배송을 중단한다. 만약 배송하지 못하고 잔류되는 물량이 남을 경우 다음날 배송하도록 하기로 했다.

한진은 이와 함께 화요일, 수요일 배송에 집중되는 물량을 주중 다른 날로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택배기사들의 근로강도가 특정일에 편중되지 않게 하면서 수입은 기존 대비 감소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설날, 추석 등 물량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필요 차량 증차 및 인원을 충원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대책을 시행할 경우 배송지연 등 한진의 택배 서비스 품질 저하는 필연이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물량이 집중되는 이유는 주말을 낀 월요일에 이커머스 주문량과 집하 물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이 주문을 알아서 분산시켜주는 이상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화요일에 배송될 물량이 목요일에 배송되는 등의 배송지연이 발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진도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만, 당장은 물류 서비스 품질보다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한진 관계자는 “배송시간이 분산되는 것에 대해 최대한 화주사와 협의를 통해 양해를 구해나갈 것”이라며 “배송지연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에 조금 더 중점을 둬야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설명했다.

분류지원 인력 투입

한진의 두 번째 대책은 분류지원 인력 투입이다. 한진은 11월부터 단계적으로 약 1천명의 분류지원 인력을 전국 사업장 및 대리점에 투입한다. 분류지원 인력의 비용은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 이를 통해 앞으로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부담을 경감하여 배송에 전념하도록 지원체계를 갖춰나간다는 설명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분류지원 인력 비용의 회사 전액 부담이다. 3대 택배회사 모두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으로 분류지원 인력 투입 계획이 있음을 밝혔지만, 관련 비용을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고 밝힌 것은 한진이 유일하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관계자는 “업계 최초로 분류인력 투입을 발표한 CJ대한통운의 경우 이후 분류인력 투입비용을 택배사는 50%만 부담할테니 나머지 50% 대리점과 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선 지사를 통해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해오고 있다”며 “롯데택배 또한 기사 대리점 및 기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내용으로 분류인력 투입비용을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전가시켜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모호한 문구”라고 지적했다.

한진 관계자는 “1천명의 인력이 전부 투입되는 시점은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최대한 빠른 투입을 하려고 한다”며 “택배기사들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요구한 것이 분류지원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회사가 비용 전액 부담을 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이라 설명했다.

자동화 투자

세 번째 대책은 ‘서브터미널 자동화’ 투자다. 한진은 택배기사들의 ‘분류 작업 시간’을 근본적으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서브터미널 자동 분류기 설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까지 한진이 서브터미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95% 가까운 터미널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한 CJ대한통운에 비해서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한진은 2021년까지 적용 가능한 터미널을 대상으로 500억원을 투자하여 자동 분류기를 추가 도입한다. 이를 통해 택배기사의 아침 분류시간을 1시간 이상 단축하여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강도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한진은 보고 있다.

아울러 한진은 택배 네트워크 효율화를 위한 투자도 계속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3000억원 투자 규모의 대전 메가 허브터미널 구축뿐만 아니라 2023년까지 택배부문에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하여 효율적 네트워크 운영 체계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택배기사 건강보호 위한 조치 마련

한진이 내건 마지막 대책은 산재보험 가입, 건강검진 등 택배기사 건강보호를 위한 조치 마련이다. 한진은 전국 모든 대리점에 택배기사의 가입 현황을 즉시 조사하고, 대리점과의 협의를 통해 2021년 상반기까지 모든 택배기사가 산재보험을 100%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기서 100%란 산재보험 제외 신청을 한 택배기사까지 포함된 수치로 사실상 모든 한진 택배기사를 100%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물론 여기서 산재보험 가입비용을 한진이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택배기사는 택배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법상 대리점이 산재보험 비용의 50%, 택배기사가 나머지 50%를 부담해야 한다. 한진은 택배기사가 최대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대리점에 권고 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와 함께 한진은 택배기사의 심혈관계 검사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매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것은 한진 본사가 회사 부담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한편, 22일 CJ대한통운, 오늘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발표로 국내 3대 택배회사가 모두 택배기사의 업무를 줄이고자 움직이고 있다. 택배회사들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제기된 택배기사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이슈 제기와 여론 악화에 대해 더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택배회사들의 과로사방지 대책과 관련하여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발표문에는 공통적으로 ‘단계적’이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다음달에 할 건지, 내년에 할 건지, 5년 뒤에 할 건지는 전적으로 택배사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발표문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표내용을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입안하고 과정마다 검증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택배사와 대책위,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만관공동위원회 구성’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논평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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