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CJ대한통운이 자본 동맹을 맺으면 생길 일들

지난주의 화젯거리다. 네이버가 CJ그룹의 3개 계열사 CJ대한통운, CJ ENM, 스튜디오드래곤과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까지 고려한 긴밀한 협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복수 언론 보도를 통해 업계에 전해졌다.

네이버(위쪽)와 CJ대한통운(아래쪽) 양사는 해명 공시를 통해 언론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 양사의 입장을 종합해서 확인한 결과 네이버와 CJ그룹이 자사주 교환 방식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협업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맞다. CJ대한통운이 아닌 CJ그룹이 논의의 주체로 나왔으며, 거래 카드로 CJ그룹의 3개 계열사 ‘CJ대한통운’과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을 꺼낸 것도 맞다.

하지만 아직 양사의 구체적인 협업 방식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자사주 맞교환을 하나의 방식으로 논의한 것은 맞지만 네이버가 현금으로 CJ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살지, 돈을 섞지 않고 MOU만 할지 등의 구체적인 협업 방향은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본다.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등 콘텐츠 측면에서의 이야기는 오늘 시나리오에서 잠깐 옆으로 빼둔다. 물류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뽑아본다. 만약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이 서로의 지분을 교환한다면 양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물류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풀필먼트의 맥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풀필먼트’다. CJ대한통운은 올 4월부터 네이버 브랜드스토어 입점 업체의 풀필먼트를 수행하는 파트너사였기 때문이다. 현시점 기준으로 4개의 업체(LG생활건강, 애경, 라이온코리아, 생활공작소)가 CJ대한통운의 네이버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곤지암 물류센터가 아닌 동탄, 용인 양지 물류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풀필먼트 건까지 합치면 고객사의 숫자는 수십개가 넘어간다. 이를 종합한 월물동량은 100만건이 넘는다는 CJ대한통운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풀필먼트’란 상품 재고를 미리 물류센터에 입고하여 발생하는 고객 주문에 따라 최종 고객까지의 배송과 반품, 교환 등을 대신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쉬운 말로 이커머스 물류 대행이라 봐도 무방하다.

CJ대한통운은 약 3만5000평 규모의 곤지암 물류센터의 일부 공간을 네이버를 위한 풀필먼트 센터로 활용한다. 애초에 택배 허브터미널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이기 때문에 집하와 간선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어 오늘 자정까지 주문한 상품을 내일까지 배송할 수 있는 ‘로켓배송 타임라인’을 만들 수 있었다.(자료: CJ대한통운)

네이버가 ‘풀필먼트’를 본격 강화하고자 움직인 것은 지난해부터다. 네이버의 자체 오픈마켓 서비스(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등) 입점 판매자들이 알아서 했기에 균일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물류를 ‘풀필먼트’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풀필먼트 강화를 통해 네이버는 비교적 균일한 마감시간의 배송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쿠팡의 로켓배송처럼 오늘 자정까지 주문하면 내일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네이버가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네이버가 쿠팡처럼 직접 물류 인프라를 투자, 구축, 운영하여 풀필먼트 서비스를 만든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그저 잘 할 수 있는 물류업체를 연결해 준다. 예를 들어서 최근 네이버가 강화하고 있는 ‘전통시장 장보기’ 서비스의 물류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여러 물류업체들이 수행한다. 네이버는 업체별로 다른 물류 역량과 네트워크 특성에 따라 수행 업체를 선정했다. 또 다른 예로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서비스는 신뢰할 수 있는 대형 물류기업을 선호하는 대형 화주를 중심으로 연결해주고 있다는 게 네이버측 설명이다.

연결에서 긴밀한 연결로

네이버의 풀필먼트 구축 전략은 알리바바그룹의 물류 플랫폼 ‘차이냐오’의 방향을 계승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네이버가 직접 물류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수많은 물류 파트너의 서비스를 플랫폼에 모아서 물류가 필요한 입점 판매자들의 니즈에 맞춰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연결’이다.

차이냐오는 연결에서 ‘긴밀한 연결’로 나아갔다. 연결된 업체들에 돈을 섞어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물동량의 약 70%를 4통1다(중통, 위엔통, 바이스, 선통, 윈다)라 불리는 5개 중국 택배업체가 수행하고 있다. 4통1다는 모두 차이냐오의 네트워크에 소속돼 있다. 2018년 기준 중국 택배시장의 64.7%를 점유하고 있는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알리바바그룹과 자본이 섞여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4통1다 투자 현황(자료: 플래텀 차이나리포트, 2019)

네이버 또한 그렇다. 연결에서 긴밀한 연결로 나아간다. 네이버는 올해 3월부터 총 6개의 풀필먼트 역량을 내재화한 스타트업(위킵, 두손컴퍼니, 딜리셔스, FSS, 아워박스, 브랜디) 대상의 투자를 발표했는데, 이들 모두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입점 판매자를 위한 물류를 수행하는 파트너다. 세분화해서 보자면 위킵과 두손컴퍼니, FSS 세 업체는 비신선 카테고리 화주, 아워박스는 신선 카테고리, 딜리셔스와 브랜디는 패션 카테고리 화주의 물류를 수행한다. 네이버가 이들에게 각각의 물류 서비스가 필요한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연결해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물론 네이버가 아무하고나 돈을 섞지는 않는다. 하지만 네이버가 수많은 물류업체 투자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연결’을 통해 충분한 성과가 증명된다면 투자를 기반으로 돈을 섞고 ‘긴밀한 연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브랜디’는 네이버 투자가 발표되기 이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동대문 패션 셀러들의 풀필먼트를 시범 테스트하던 사업자였고, 최근 네이버로부터 100억원의 단독 투자를 유치했다.

CJ대한통운과의 긴밀한 연결

확정되진 않았지만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지분 교환이 성사된다면 ‘긴밀한 연결’ 측면에서의 의미가 생긴다. CJ대한통운은 국내 택배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1위 사업자다. 알리바바그룹이 서로 다른 5개 택배업체에 투자하면서 확보한 점유율을 국내에서는 CJ대한통운 하나면 비슷한 수치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가 기존 투자한 풀필먼트 서비스 업체 입장에서는 서비스 완성을 위해서 ‘택배’와의 연결은 필수고, 여기 CJ대한통운이 활약할 여지가 있다.

택배보다 더 큰 의미는 ‘풀필먼트’에서 찾아야 한다. 이미 CJ대한통운이 과점하여 성장 여력이 다소 떨어지는 ‘택배’와는 달리 풀필먼트의 성장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숫자를 비교해보자면 현재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서비스는 월 100만건의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 숫자만 봐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CJ대한통운이 하루에도 800만개가 넘는 물량을 택배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갈 길이 먼 숫자이기도 하다.

CJ대한통운 곤지암 물류센터에 설치된 택배 분류기(사진: CJ대한통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이커머스 주문에는 ‘택배’가 필수로 따라간다. 그리고 택배 이전에 필수적으로 붙는 과정이 물류센터 안에서의 ‘풀필먼트’다. 그간 이 과정을 이커머스 판매자가 자사물류를 구축하여 처리하든, 3PL업체에게 맡기든 알아서 했을 뿐이다. 말인즉, CJ대한통운 입장에서 풀필먼트란 앞으로 택배 물동량만큼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신시장이다. 괜히 경쟁사인 한진도, 롯데글로벌로지스도 ‘풀필먼트’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 풀필먼트 성장을 위해서 수많은 화주를 공급해주는 허브가 될 수 있다. 당장은 규모가 있는 브랜드스토어 화주만 CJ대한통운 풀필먼트를 이용하고 있다지만, 중소화주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물량’을 모은다면 CJ대한통운 풀필먼트로 유입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개설된 스토어 숫자만 35만개가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물류를 수행하고 있을텐데, 이들에게 네이버가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를 연결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허브터미널을 운영하는 택배업체니까 가능한 주문 마감시간 ‘자정’을 무기로 말이다. 이건 기존 3PL업체나 자사물류를 통해 제공 받지 못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다수의 화주가 CJ대한통운 풀필먼트를 이용하고자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물론 그래도 안 이동하는 화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대응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방법이 있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충분히 모인다면 쿠팡 로켓배송과 같이 ‘빠른 배송’ 마크를 붙여서 풀필먼트 관련 상품만 모아두는 전용탭을 만들 수 있다. 네이버 검색 알고리즘상 높은 물류 품질(빠른 배송)은 우선 노출의 기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빠른 배송 상품들이 우선 노출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판매자 입장에선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CJ대한통운 풀필먼트를 이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수 있다.

요컨대 CJ대한통운은 큰 노력 안 들이고 수많은 화주를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입할 수 있어 이득이고, 네이버는 큰 돈 안 들이고 그간 약점으로 지목됐던 ‘균일한 빠른 물류’ 카테고리를 확대할 수 있어서 이득이다. 양사가 서로의 지분을 교환했다고 가정하면 양사의 성장 자체가 양사의 이득을 담보하기 때문에 또 이득이다.

반네이버 연합군이 온다?

물류업계에서는 ‘네이버-CJ대한통운 연합군’의 탄생을 분명한 위기로 보고 있다. 일례로 3PL업체 입장에서 우려되는 것은 네이버의 CJ대한통운 풀필먼트 밀어주기다. 이것이 현실화 된다면 그들의 고객사가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네이버 입점 판매자 중에서는 3PL업체를 통해 물류 프로세스를 구축해놓은 업체들이 이미 존재한다. 이들이 이동한다는 것은 CJ대한통운은 신규 고객사 확충을, 또 다른 누군가는 기존 고객사를 잃는다는 의미다. 마치 아마존의 풀필먼트 진출로 북미 3PL업체들의 상당 숫자가 사라졌듯,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재현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체들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류업계에서 보는 대표적인 기회는 기존 CJ대한통운을 이용하던 이커머스 고객사의 이탈이다. 네이버의 경쟁사인 이커머스 업체들이 CJ대한통운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반연합군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베이코리아 스마일배송처럼 기존 CJ대한통운을 이용해 왔던 규모가 있는 업체라면 2, 3위 택배업체와 함께 새로운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은 CJ대한통운의 경쟁사인 물류업체 입장에서는 신규 대형 화주사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커머스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네이버가 직접 물류를 한다고 하면 네이버가 기존 협력하던 물류사의 뒤통수를 치는 정도의 느낌이겠지만, CJ대한통운의 지분 인수는 그 느낌이 다르다”며 “CJ대한통운을 이용하던 경쟁사 입장에서는 CJ대한통운이 가진 물동량 빅데이터를 언제든지 네이버가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함의하고, 그것은 이커머스 마켓플레이스 판매자의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네이버가 대세니 CJ대한통운이 자신감을 보인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택배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호시탐탐 쿠팡의 물량을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자본이 섞인다면 앞으로 CJ대한통운이 쿠팡과 무엇을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네이버와 CJ대한통운 연합에 반기를 든 새로운 연합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 때 CJ대한통운이 아닌 택배업체들에겐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경쟁업체들 입장에서 준비할 시간은 있다.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의 자본 동맹이 현실화 되더라도, 곧바로 네이버 물량의 CJ대한통운 풀필먼트 밀어주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곤지암 풀필먼트센터 공간부터 한계 처리량(Capacity) 문제로 별도의 물류 인프라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으로 파악된다. 곤지암 물류센터 자체에 공간이 없다기보다는 ‘풀필먼트’를 위한 공간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CJ대한통운은 추가적으로 유입되는 고객을 어떤 방식으로 쪼개서 유치할지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고자 부족한 물류센터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한데, 이런 것들은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대형택배업체 관계자는 “CJ대한통운과 네이버가 동맹전선을 구축하고 곤지암 물류센터에서 풀필먼트 사업을 한다면 판매자들의 서비스 품질은 분명 좋아질 것이다. 곤지암 물류센터를 허브로 두고 익일배송, 당일배송 등 배송 타임라인을 다변화하는 전략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장 네이버가 대규모 물동량을 CJ대한통운에 몰아주긴 어려울 것이다. 최근 CJ대한통운 택배에서 대두되던 품질 문제도 있고, 캐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 2대 주주가 됐는데 물량 밀어주기를 한다면 불공정 행위 이슈가 나올 수도 있는데 앞으로 지켜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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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노력없이 이런 고급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게 참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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