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노동자 권익 위한 첫 민간 자율협약 체결, 의미와 숙제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장전을 위한 최초의 민간 자율협약이 6일 체결됐다. 지난 4월 출범한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1기 배달)이 약 6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 고민한 결과다. 1기 사회적 대화 포럼의 협약 당사자로는 민주노총서비스연맹(노동계 측 간사단체), 라이더유니온(배달기사 노동조합), 코리아스타트업포럼(기업측 간사단체), 우아한형제들(플랫폼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플랫폼사), 스파이더크래프트(배달대행사)가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양대 배달 플랫폼이 참가했으며, 비록 일부이지만 스파이더크래프트와 같은 배달대행업체도 협약에 참석했다.

협약서는 총 6개 장, 33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크게 ▲공정한 계약, ▲작업조건과 보상, ▲안전과 보건, ▲정보보호와 소통 등에서 배달 라이더의 권익 보호 방안을 담았다. 협약의 적용 대상은 ‘플랫폼 기업(배달 플랫폼)’, ‘플랫폼 노동 종사자(배달 라이더)’, ‘노동조합’이다.

공정한 계약 측면에서는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간 계약서 체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담겼다. 협약서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스스로가 원하는 시간과 업무를 수행할 권리를 가진 자’로 명기했다. 기업은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날짜나 시간을 지정하지 않으며, 원하지 않는 업무의 수행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종사자의 귀책 내지 규칙 위반에 따른 제재의 근거와 절차는 명확해야 하며, 기업은 종사자가 쉽게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두 번째 작업조건과 보상 측면에서는 ‘투명성’이 강조됐다. 기업은 종사자가 특정 업무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업무의 작업조건과 수행을 통해 얻게 될 보수를 명확히 알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종사자에게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업무를 배분하며, 혹 다른 업무를 제시할 경우 이에 관련한 기준을 종사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과 종사자가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상호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협약서에 담겼다.

세 번째 안전과 보건 측면에서는 배달 라이더들의 안전한 업무 수행을 위한 대책이 담겼다. 기업은 종사자에게 빠른 배달을 압박하거나 귀책이 없는 배달시간 지연을 이유로 제재하지 않아야 한다. 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다하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 독려, 적절한 교육 및 보호장구 제공, 종합보험 안내 등 종사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과 종사자 양측은 악천후 상황시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마지막 정보보호와 소통 측면에서는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간 커뮤니케이션 채널 마련과 관련된 내용이 담겼다. 기업과 종사자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고충을 처리하기 위한 창구를 마련하여 운영해야 한다.

협약서에는 정부 대상의 요구사항도 함께 담겼다. 협약에 참가한 주체들은 향후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정책을 정부에 요구해나간다. 합리적인 수준의 이륜차 종합보험료 마련, 안전운행을 위한 적정 배달료 근거 마련,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제도 확대 및 개편, 배달서비스업에 관련한 법률 제정 등이 요청사항에 포함돼 있다.

이번 협약에 참여한 기업과 노동조합은 협약 사항의 취지와 원칙을 유지, 실천, 발전시키기 위해 3개월 안에 상설협의기구를 설치, 운영할 계획이다.

협약의 의미

이번 협약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정책 마련의 ‘기반’이 됐다는 의미가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합의문에는 유니온이 주요하게 제기해 온 안전배달료와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배분의 문제, 그리고 모든 라이더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보장하고 교섭의 주체로 존중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며 “비록 원칙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이러한 과제를 공식적인 의제로 확정하게 된 점은 일정한 진전이라 평가한다”고 전했다.

협약식 자리에 참가한 정부와 입법기관 관계자들도 협약에서 논의된 내용의 정책 반영에 의욕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시발점으로 협약의 의미를 찾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본 협약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도”라며 “포럼이 제안한 정책과제를 적극 검토하고 전국민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고민하겠다. 다른 분야도 이러한 대화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본 협약은 역사의 징표를 남겼다. 향후 다른 플랫폼 분야로의 확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과 제도로 안착될 수 있도록 국회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숙제

앞으로 포럼이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도 있다. 첫 번째는 ‘자율협약’이 갖는 한계다. 협약서를 지키기 위한 노사의 행동은 권장 사항이지 의무가 아니다. 협약서의 내용 중 상당 부분도 ‘노력한다’, ‘준수한다’와 같은 단어로 채워졌다. 노사의 자율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향후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자율협약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참여 회사 사업팀이 협약서의 내용을 실제 구현 가능한지 면밀이 검토했다”며 “안 지킬 것을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협의체에 참가한 기업들도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협약이 적용되는 배달 라이더 네트워크의 ‘모수’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협약에는 양대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참석을 했지만, 이들이 직접 운영하는 라이더 네트워크의 숫자는 그렇게 크지 않다. 우아한형제들의 배민라이더스는 약 3000여명의 배달 라이더 네트워크와 2만명의 등록 배민커넥터 네트워크를,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의 요기요플러스는 약 400여명의 자체 배달 라이더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배달 라이더 네트워크는 플랫폼 입점 음식점이 계약한 ‘배달대행업체’가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향후 협약의 실질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스파이더크래프트 이상의 더 많은 배달대행사의 참여가 요구된다. 하지만 배달대행업체가 화주사(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단가 절감과 서비스 품질 향상 요구를 받는 을의 입장인 만큼 적극적인 협의체 참가는 어렵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 팀장은 “배달대행업체는 화주사의 압박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협의체 참가가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먼저 협약에 참가한 업체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후에는 다른 업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화주사 입장에서도 배달 생태계의 전체 발전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정부 또한 하나하나 메시지를 전해간다면 배달대행업체들도 참가할 여지가 생길 것”이라 설명했다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은 향후 ‘음식배달’을 넘어서 다른 플랫폼 노동 업종까지 노사 상생을 위한 대화를 계속해나간다. 2기 포럼에서 논의할 업종은 추후 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은 1기 포럼의 상설 협의기구를 만들고 안착시켜 모범 사례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포럼측의 설명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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