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없는 날’이 이커머스판에 가져올 당장의 변화

오늘, 8월 14일은 사상 최초로 지정된 ‘택배없는 날’이다. 지난 7월 17일 국내 주요 택배사가 회원사로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오랜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우정사업본부(위탁배달원 한정), 로젠까지 택배 없는 날에 동참했다. 국내 5대 택배업체 소속 택배기사가 오늘(14일) 일제 휴일을 맞이했다.

‘택배없는 날’은 오랫동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택배기사들이 이룬 작은 쾌거다. 노동계는 ‘택배없는 날’ 도입을 시작으로 택배기사의 근무 및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는 “통합물류협회 및 주요택배사들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택배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이번 결정을 매우 환영한다”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주요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의 건강 그리고 처우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택배없는 날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택배없는 날 지정은)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이뤄진 일”이라며 “택배기사의 발걸음이 가벼울수록 집 앞에 놓일 택배에도 행복한 마음이 담길 것이고 코로나 극복도 빨라질 것”이라 평했다. 택배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위터에 남긴 택배없는 날과 관련된 코멘트

확실한 건 ‘택배없는 날’ 도입으로 대한민국의 이커머스 물류는 일시적으로 멈춘다. ‘8월 14일’ 단 하루의 휴일이 몰고 올 나비효과가 있다. 여론은 전반적으로 택배없는 날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산업계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불안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택배대란이 온다?

대한민국의 시장점유율 기준 5대 택배업체인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우체국택배, 로젠이 모두 ‘택배없는 날’에 동참하는 만큼 이커머스 업계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택배시장의 85% 이상을 이 5개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택배업체’를 이용하여 고객에게 배송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85% 이상의 이커머스가 일시적으로 멈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종전 택배기사에게 ‘쉬는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번갈아가며 쉬는 날을 정하며 동료 택배기사의 물량 처리를 분담했다. 하지만 모든 택배기사가 ‘일제 휴가’에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전국 고객에게 택배 박스를 분류하는 허브터미널, 택배기사의 지역 배송거점인 서브터미널이 함께 가동을 중단한다.

이커머스 업계에 미칠 파급은 ‘8월 14일’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8월 14일 배송이 멈춘다는 것은 전날인 13일 집하한 물량의 ‘배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 신선식품 등 유통기한이 짧은 품목의 경우 택배업체 차원에서 8월 13일 집하를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들이 바라보는 문제는 당장이 아니다. 택배업계에선 다가오는 다음주부터 ‘택배 대란’이 발생할 것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커머스 업체들이 ‘택배없는 날’에 함께 동참하여 쉬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 택배는 어제(13일)부터 마비됐지만 여전히 ‘이커머스 주문’은 가능하다. 이 말인즉 8월 13일(목)부터 16일(일)까지 총 4일치 주문이 쌓여서 빠르게는 임시공휴일인 17일(월), 늦게는 18일(화)에 맞춰 폭발적으로 발송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택배업체의 하루 처리량은 ‘한계’가 있다. 쌓여있는 물동량을 하루만에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고, 자연히 배송 지연은 택배없는 날이 끝나는 다음주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게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택배 대란’이다. ‘택배없는 날’ 전날인 13일부터 약 4~5일 쌓인 물동량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통상의 추석연휴, 구정연휴 이상의 물량이라는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대형 택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월 2일(토)부터 5월 5일(화)까지 이어진 샌드위치 연휴 동안 이 업체에 쌓인 잔류 물량은 970만개에 가까웠다. 이 업체는 이 잔류물량을 처리하고 택배 프로세스를 정상화 하고자 1주일 이상의 시간을 썼다는 설명이다. 이번 ‘택배없는 날’이 그 때보다 긴만큼 적체되는 물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게 이 관계자의 예측이다.

이 관계자는 “명절 택배도 마찬가지로 명절이 끝난 이후의 후폭풍이 더 무서운 것”이라며 “통상 택배업계에서는 8월 15일을 기점으로 휴가가 끝나고 시즌 신상품이 등장하여 물동량이 증가하는 시기로 보는데 앞서 5일 동안 머물렀던 물량과 새롭게 증가하는 물량이 겹쳐서 택배대란은 필히 다가온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의 손실은 필연?

배송지연은 모든 이커머스 판매자에게 악영향을 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택배 서비스 중단으로 상품을 팔지 못해 생기는 손실도 크겠지만, 다음 주부터 다가올 고객 클레임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선식품은 그 특성상 유통기한이 짧다. 배송지연으로 인해 상품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신선식품이기 때문에 느린 배송에 대한 고객 클레임율이 높다. 고객이 오늘 주문한 상품이 내일 배송되더라도, 요즘 같이 더운 날에 냉매가 녹아 있다면 그대로 환불 및 반품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신선식품 이커머스 업체 대표는 “택배없는 날의 취지는 좋지만, 신선식품 이커머스 업체는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당일배송이 안 되면 반품 등 고객 컴플레인이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구조이고 고객 환불 및 폐기에 대한 책임은 택배사가 아닌 우리가 감당한다”며 “택배없는 날 이전부터 택배업체들은 신선식품은 먼저 배송되도록 조치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지역으로 넘어가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실제 택배기사님들은 자신이 설정한 배송루트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신선식품이라도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다음주 물량 적체와 배송 지연이 예상되는 만큼 업체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물량 적체와 배송 지연이 예상되는 와중, 이커머스 업체들은 저마다의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첫 번째는 비상근무 돌입이다. 취재 결과 임시공휴일인 월요일(17일)부터 출근을 하여 잔류된 물량을 우선 처리하고자 준비하는 업체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체국택배 위탁배송원을 제외하고는 17일(월)부터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재개되는 만큼, 그 시기에 맞춰서 이커머스 화주사의 물류 담당자들도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신선식품을 다루는 한 이커머스업체 물류팀 관계자는 “어제(13일)부터 택배사 출고가 막혔다. 택배사 허브터미널과 서브터미널이 모두 멈춘 것”이라며 “통상 대형택배사의 경우 일요일에도 터미널 업무를 해서 일요일 출고 처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요일 출고도 막혀서 임시공휴일인 월요일에도 모두 출근하여 최대한 쌓인 주문량을 처리할 계획”이라 전했다.

‘택배’가 아닌 대체 물류망을 수배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일택배라고 불리는 ‘퀵서비스’와 ‘용차’를 활용하여 최대한 물량을 처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한 편의점 당일택배 서비스의 경우 13일(목), 14일(금) 물동량이 평소대비 30~40% 이상 늘었다는 전언이다.

한 이륜차 물류업체 대표는 “택배없는 날을 맞이한 고객사의 패턴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큰 업체의 경우 물량을 전체적으로 줄이고 택배기사와 같이 쉬는 경우가 많고, 작은 업체의 경우 택배로 나가던 물량을 이륜차 물류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며 “양상은 조금씩 다른데, 평소 하루 5~6개씩 물량을 보내던 업체가 14일에는 30개를 보냈다. 반면, 평소 하루 300개를 보내던 업체의 물량이 100개로 줄기도 했다. 택배없는 날과 관련하여 바로 물량 처리가 가능한지 묻는 신규 고객 문의도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택배없는 날에 웃는 이들

택배없는 날은 이커머스 플랫폼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온다. 분명한 건 택배없는 날을 기점으로 이커머스 플랫폼 진영은 ‘두 개’로 양분된다는 거다. 하나는 여전히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택배망이 아닌 자체물류망을 보유한 이들로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배달의민족의 B마트 등이 여기 속한다.

이들은 자체배송 인프라를 활용하기 때문에 택배없는 날 이후에도 정상배송이 가능하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샛별배송’, SSG닷컴의 ‘쓱배송’, B마트는 배민라이더스의 이륜차 물류망이 배송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택배없는 날 이후 대부분의 이커머스 채널의 ‘배송 지연’ 은 필연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를 원하는 소비자는 이들 플랫폼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여 선점한 업체들이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컨대 물류를 내재화한 이커머스 업체들에게 택배없는 날은 경쟁업체의 물동량을 뺏어오고 충성고객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자체배송망을 보유한 이커머스 플랫폼이라고 모든 배송이 빠른 것은 아니다. 이들 업체들이 전국 배송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업체 아웃소싱을 혼용한다. 예컨대 쿠팡은 5대 광역시를 제외한 로켓배송 물량을 택배업체 ‘한진’에 위탁한다. 마켓컬리도 직접 배송하는 서울, 인천, 경기 일부 샛별배송 권역을 제외하고는 택배업체에 배송 업무를 위탁한다. SSG닷컴도 택배배송을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배송망이 없는 지역의 경우 여타 판매자와 똑같이 배송 지연의 여파를 맞을 전망이다.

쿠팡은 5대 광역시 이외 지역의 로켓배송을 일괄 8월 18일(화) 도착 예정으로 조정했다. (사진위) 마켓컬리는 12일부터 15일까지 ‘택배배송’ 지역의 주문을 불가능하게 막았다. 샛벽배송은 여전히 배송된다.(사진아래)

쿠팡 관계자는 “(한진 등이 배송하는) D+2일 로켓배송 지역의 배송이 지연된 것은 맞다”며 “하지만 그 비중은 쿠팡 전체 물량과 비교했을 때 크지 않다. 택배없는 날 이후에도 대부분의 로켓배송 상품은 정상배송 될 것”이라 말했다.

필연적으로 멈추는 이들

두 번째는 택배망을 사용하는 이들이다. ‘오픈마켓’이라고도 불리는 네이버쇼핑,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G9), 11번가, 위메프, 티몬, 카카오커머스 등이 여기 속한다. 이들 업체의 경우 대부분의 물량을 ‘입점 판매자’가 알아서 섭외한 물류업체가 처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섭외한 물류업체는 대부분이 택배업체다. 플랫폼이 물류에 관여하지 않는 이 업체들은 택배없는 날 이후 플랫폼 전반적인 배송 지연 현상이 발생할 전망이다.

티몬은 상품설명 페이지 최상단에 “8월14일(금) 택배없는 날 및 8월17일(월) 임시공휴일로 인하여 출고 및 수령이 배송예정일자보다 1~2일 가량(주말/공휴일 제외) 늦어질 수 있으니 구매시 참고 부탁드린다”는 내용을 고객에게 공지했다. 이와 함께 티몬 파트너센터 공지사항을 통해 입점 셀러에게 상황 변화를 알리고, 배송지연 패널티를 제외함을 공지했다.

플랫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택배 없는 날 이후의 변화를 준비했다. 먼저 종전 배송속도가 느린 판매자에게 부과했던 ‘패널티’를 택배없는 날 기간에는 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네이버쇼핑, 11번가, 위메프, 티몬, 이베이코리아는 모두 택배없는 날 기간 동안 판매자를 대상으로 ‘패널티’를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셀러들은 알아서 공지사항에 배송지연 안내 공지를 하던가, 아무것도 안 하던가 선택하고 있다. 사진은 한 네이버 입점 판매자의 배송지연 안내 공지이고, 기자가 운영하는 헬개미마켓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선택은 판매자의 몫이고 플랫폼은 강요하지 않는다는 게 네이버의 방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쇼핑의 경우 판매자가 알아서 물류를 하는 구조이고 모든 택배업체가 파업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판매자분들이 자율에 따라서 배송지연 안내나 물류 서비스를 조정하도록 한 것”이라며 “발송지연이 다음주까지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판매자 대상 배송지연 패널티는 13일(목)부터 18일(화)까지 부가하지 않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베이코리아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베이코리아는 판매자 공지를 통해 “8월 14일(금) 출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셀러 휴무일로 설정하신 셀러분들이 있으시나 아직 설정을 하지 않은 셀러분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어, 내부적으로 해당일을 택배 휴무일로 적용되도록 처리할 예정이오니 업무에 참고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지했다. 이베이코리아 상품상세 페이지에서는 일괄 8월18일(화)~8월19일(수) 출발예정으로 자동 날짜가 변경 노출되도록 조정했다.

이베이코리아가 입점 셀러 대상으로 공지한 내용. 이베이코리아는 이와 함께 ‘택배 없는 날’에 맞춰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이 돈을 걷어 스마일배송 전담 택배기사에게 마스크와 감사 카드를 선물했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택배기사들의 노동을 존중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베이코리아측 설명이다.

중개형 마켓플레이스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만든 ‘빠른 배송’ 서비스도 일시적으로 멈췄다. 이 업체들의 빠른 배송 서비스는 구축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배송의 말단은 ‘택배업체’가 처리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베이코리아가 물류센터에 판매자의 상품을 재고로 보관하여 익일 배송하는 ‘스마일배송’, 당일 발송률이 높은 판매자만 입점하여 구축한 11번가의 ‘오늘발송’, 위메프의 직매입 상품군을 모아논 탭인 ‘원더배송’은 모두 발송 지연을 공지했다.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스마일배송 상품의 예상 도착일을 18일 화요일로 일괄 노출하고 있다. 11번가 또한 오늘발송탭에서 지금 주문시 8월 18일 화요일에 발송됨(19일 수 도착보장)을 공지했다. 원더배송 역시 12일 오후 10시 이후의 주문건에 대해서는 17일 월요일부터 순차적으로 발송한다고 공지했다.

택배없는 날을 알리는 11번가의 배송지연 공지

이커머스 플랫폼 한 관계자는 “(택배없는 날 이후) 풍선효과처럼 뒤에 몰려올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참 힘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택배없는 날’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택배기사들의 노동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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