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뜨거운 감자 ‘CVC’ 삼킨다

일반 지주회사가 기업내 벤처캐피탈(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뀔 전망입니다. 유력 대권 후보인 이낙연 의원을 비롯해 김태년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여명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CVC 활성화’ 토론회에 참석해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CVC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대규모 투자’를 기대할 수 있고, 대기업은 ‘혁신의 마중물’을 만들 기회가 될 수 있어 양측이 모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CVC는 오랫동안 법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의식한 듯, 이낙연 의원은 이날 토론 모두에서 “CVC는 대단히 논쟁적인 현안”이라는 말로 운을 떼기도 했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함께 토론에 참여한 같은당 김병욱 의원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가 주최하고 김병욱, 이원욱, 김경만 의원실에서 공동주관했다.


CVC, 금산분리라는 둑을 무너뜨릴 것인가

정부는 지난 1일 열린 6차 비상경제회의에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는데요, 여기에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방안 검토’가 포함됐습니다. 발맞추듯 김병욱 의원이 5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죠. 여기에 CVC와 관련한 법안이 들어갔습니다. 골자는 “일반지주회사의 주식소유가 금지되는 대상에서 CVC를 제외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본을 소유하는게 문제라면, 예외적으로 ‘벤처캐피탈’은 금융자본에서 열외로 두자는 뜻이죠.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전향적인 부분이죠? 열외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뚝 떨어진 경제지표가 있습니다. 이낙연 의원은 “스타트업을 활성화하자, 벤처기업을 더 많이 키우자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코로나19 사태는 그 필요성을 더욱 높였다고 생각한다”면서 “벤처기업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할텐데, 그 투자금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문제”라고 CVC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죠. 경제 활성화를 하려면 대기업이 돈을 풀어 투자를 해야 하는데, CVC 허용이 그 물꼬가 될 거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의견이 늘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국회에서 CVC 허용을 놓고 토론회를 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20대 국회에서 두 차례 관련 토론을 열었지만 이번처럼 큰 관심을 모으진 못했습니다. 민주당의 입장도 미적지근했죠. 스타트업 진영은 꾸준히 CVC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금산분리가 와해될 것을 우려한 여론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대놓고 “일반지주회사의 금융기관 소유 금지를 없애자”는 등의 주장은 하기 힘듭니다. 대기업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거나 사익을 편취하는 등의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보아온 역사에서, 금산분리는 아예 산업과 금융을 분리시켜 이같은 악습을 뿌리뽑고자 만들어 놓은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물론,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CVC의 악용을 막을 버팀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도현 국민대학교 교수는 “CVC의 도입이 이른바 오너의 일감 몰아주기, 상속 등의 터널링을 완화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는 공정거래에 관한 법과 제도에 의해 보다 엄격이 규율하는 것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통과하면 인터넷전문은행법에 이어 또 예외를 만드는 사례가 됩니다. 당연히 반대 목소리가 나옵니다.  시민단체인 경제실천연합회는 즉각적인 반대성명을 냈습니다. 경실련은 “금산분리 원칙은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를 활용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시키기 위함”이라며 “재계의 지속적인 요구를 수용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벤처지주회사를 공정거래법에 이미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지주회사의 CVC를 허용하려는 것은 금산분리의 원칙을 허물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또 다른 논점들

금산분리 완화 외에도, 논점은 더 있습니다. 첫번째는, 기존에 있는 ‘벤처지주회사’라는 제도를 고쳐쓰면 되지 굳이 CVC를 허용해야 하느냐는 물음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장이죠. 벤처지주회사는 지주회사가 소유한 자회사 가운데 벤처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50% 이상인 지주회사를 말하는데요, 정부가 벤처투자의 회수와 재투자 촉진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벤처지주회사법이 생긴지 오래 됐으나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걸 방증한다고 비판합니다. 펀드 결성이 불가능하게 막혀 있으므로 VC 특유의 모험 감수 투자가 어려운데다, 스타트업 지분의 20% 이상을 보유하게 하는 등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이죠. 또, CVC에 외부 자본의 참여를 허락할 것인가도 관심사입니다. 계열사만 펀드에 참여할 수 있게 막아놓는다면 균형 있는 외부 의견 수용이나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하죠.

이에 대해  이승규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은 “벤처지주회사 제도는 금산분리의 원칙을 지키면서 최대한 CVC와 비슷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은 CVC 없어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 과장은 “미국 사례를 보면 모기업이 펀드에 100% 참여해 단독 운영한다”면서 “외부 LP 자금을 모집하면 운영하는 회사들이 LP에 정기적으로 펀드와 관련한 보고를 해야 하고 활동에 제약이 따르므로, 이에 대한 허용이 곧 획기적 벤처 투자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유보적 입장을 보였죠.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 지금 돈줄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도 유니콘 스타트업은 꾸준히 등장하지만, 인수합병이나 IPO의 비중은 미국의 절반 이하에 불과합니다. 특히 큰 돈이 필요한 후기 투자에서 한국의 자본은 1%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거죠. 최 대표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설립 금지는 사실상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를 막는 것으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모두 허용하고 있다”며 “금산분리 및 대기업 악용 우려는 취지에 맞는 별도 방안을 통해 제한하고, CVC를 허용해 기업 본연의 역할인 투자를 가속화해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쨌든 지금 분위기는 CVC 허용으로 갈 것 같네요. 이날의 토론은 정부와 여당이 CVC 허용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았다는 걸 알렸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꾸준히 반대 입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토론에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과 관련한 토론회에 집권 정당의 의원이 10여명이나 참여해 발제를 지켜보는 것도 드문 풍경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날 여러번 나왔던 이야기는 되새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CVC 허용을 말하는 의원들도, 이 개선안이 대기업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은 우려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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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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