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사업 뛰어드는 지하철, 삶을 어떻게 바꾸려 할까?

2017년 12월 3일 오전 9시 35분.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신내 지하철 차량기지에 CJ대한통운의 택배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서울교통공사와 CJ대한통운이 지하철을 활용한 ‘네트워크 배송’을 시험해보자는데 합의한 후였다. 화물전용 열차는 차량이 가져온 택배를 싣고 새절역을 향했다.

새절역의 가운데 플랫폼은 하루에 두 번만 열차를 운영한다. 다른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시간에 맞춰 새절에 도착한 화물은 각기 목적지에 맞게 재분류됐다. 화물은 다시 승객열차에 실려 배송지 인근으로 옮겨졌다. 화물은 역사의 장애인 리프트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갔다. 역사 인근의 아파트까지 택배를 옮긴 것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된 실버 택배 전동카트다. 이날 실험에는 CJ대한통운과 서울교통공사 직원 스무명이 참여해 지상과 지하를 잇는 물류 배송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서울 지하철의 역사는 깊다. 1974년 청량리에서 서울역을 잇는 1호선의 탄생에서 시작했다. 지하철은 이후 서울과 수도권 전역을 거미줄처럼 이어가며 시민의 발이 되었다. 지하철이라는 인프라의 활용 범위를 확장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2017년 1호선부터 9호선까지를 통합 관리할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하고 난 이후의 일이다. 2014년에야 철도가 화물을 취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탓도 있다.

장경호 서울교통공사 물류사업팀장은 지난 13일 바이라인네트워크가 마련한 ‘이커머스 비즈니스 인사이트’ 컨퍼런스에 참석해 “지하철을 관장하는 공사가 ‘지하철공사’가 아닌 ‘서울교통공사’라 이름 붙은 것은 여객의 여행 목적 외에 다양한 교통과  물류, 모빌리티를 포함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미”라며 “지하철은 좋은 인프라지만 물류의 관점에서 제대로 활용해오지 못했는데, 교통공사가 3년전부터 그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물류에 주목한 이유는 이렇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 경제 활동인구 1인당 5회에 불과했던 택배 사용 횟수는 2018년 들어 1인당 92회로 늘어났다. 말 그대로 ‘급증’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성장이다.

장경호 서울교통공사 물류사업팀장. 장 팀장은 “교통공사의 핵심가치는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며 “그런 취지에서 지하철 인프라를 물류에 활용하는 것이 공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마어마게 늘어나는 택배 물량을 처리하기엔 서울시가 확보한 물류 부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유휴지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주택공급에 먼저 활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 한가운데가 아닌 수도권의 상황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일단 임대료가 높고, 지역 주민의 반발이 생기기 때문에 물류 시설 개발을 위한 부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복잡한 상황에서 찾은 대안이 서울교통공사가 가진 인프라다. 장경호 팀장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서울 외곽 전역에 물류 분류시설로 활용이 가능한 차량기지 면적이 총 28만 제곱미터다. 이는 군자, 방화, 신정, 신내, 수서 등 10개 도시철도 차량기지에 있는 유휴부지의 총 넓이다. 역사 내에도 빈 공간은 있다. 장기 공실로 분류된 상가 역시 물류 거점으로 쓸만한 곳이라 여겨졌다.

화물을 옮길 열차 공급도 가능해 보였다. 오는 2021년까지 폐차가 예정된 차량은 총 234량. 이를 개조해 4량을 하나의 화물 묶음 차량으로 만들면 하루 50편 이상의 배송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 인프라를 활용하면, 낮에도 제시간에 맞춘 당일배송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도심을 누비는 화물차량을 지하철이 대체할 경우 교통혼잡과 환경문제를 더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이다. 장 팀장은 “하루 움직이는 화물 차량이 1000대가 되는데 이 운행을 줄였을 때 교통량이나 환경 등 사회적으로 얼마나 편익을 줄 것인지를 연구하고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본격적인 물류 사업에 뛰어드는 계획은 2030년까지의 로드맵이다. 지금 당장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관점에서 편익을 돕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인물품보관함 활용이다. 공사는 이 공간을 활용, 개인 물품 보관 외에 택배를 보관하고 전달하거나 지하철 유실물을 전달하는데 쓴다. 최근에는 캐리어 유인보관소도 만들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을 주로 타깃한 공간이다. 짐을 공항과 호텔로 배송하는 서비스도 덧붙였다.

장 팀장은 “외국인 여행객이 많을 때 캐리어가 문제가 된다”며 “여행객이 숙소 체크아웃 이후 캐리어 때문에 소비나 여행을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행용 캐리어 보관소를 오픈, 공항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 내 빈 공간이나 공실을 활용한 ‘스토리지 룸’ 서비스는 현재 준비 중이다. 서울시내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집이 소형화가 되다보니 개인들이 짐을 보관할 창고를 주택 내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별도로 한 평짜리 창고를 돈을 내고 빌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데 역사에 스토리지 룸을 만들어 대여할 경우, 일반인이나 소상공인이 개인물품을 보관하는데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 팀장은 “개인물품을 보관하고, 카페 휴게공간으로도 쓸 수 있도록 스토리지 룸 사업을 2022년 완료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공간을 활용해 세탁 등의 서비스를 붙이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팀장은 지금까지의 스코어를 따져볼때, 공사의 물류 서비스가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한다. 지상의 복잡한 문제를 지하와 연결시켰을 때 가져올 수 있는 환경 개선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시 물동량의 1%만 전환을 시켜도 6700억원 규모의 사회적 환경 개선 효과가 나온다”며 “6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안정적인 당일배송 정착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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