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10주년, 아이패드가 물리친 적들

아이패드 이전 태블릿의 정의는 윈도우-인텔 기반의 하판 없고 스타일러스 있는 노트북을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제품을 선보였고, LG전자는 무려 디지털 아이패드(정식 명칭이다)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때의 태블릿을 모래 칠판 이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최초의 윈도우 태블릿이라고 하나 오늘날 태블릿에서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항목을 다 갖추고 있다
LG전자의 디지털 아이패드(2001)

아이패드는 사실 아이폰보다 먼저 고안됐다. 멀티터치와 관성 스크롤을 시험하던 테스트 기기가 아이패드였는데, 이것이 작은 디바이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 태어난 것이 아이폰이었고 그것이 세상을 바꿨다.

최초로 등장한 아이패드는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며 큰 비판을 받았다. 더 큰 비판은 노트북 추종자들에게서 나왔다. 키보드도 없고 스타일러스도, 마우스 지원도 없는 아이패드보다 뭐든 할 수 있는 노트북이 낫지 않냐는 것이다(지금은 모두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아이패드가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백만장자를 수시로 배출하던 훌륭한 앱 마켓의 덕이었다. 그리고 10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3~4시간만 쓸 수 있었던 윈도우 OS의 공도 크다.

멀티태스킹 불가를 비판하는 2010년도의 밈

이후 태블릿PC의 기준은 아이패드와 비슷한 기기가 됐다. ARM 프로세서를 사용하며, 와이파이 기본 지원, 가능하다면 셀룰러까지. 별도의 앱이 존재하는 제한된 OS 등이다.

이후 MS와 안드로이드에 의해 아이패드 대항마는 수도 없이 등장했으나 실제로 대항마가 된 적은 없었다.

 

갤럭시 탭 7.7

최초의 갤럭시탭, 갤럭시탭 7.7은 아이패드와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가볍고 슬림하며 아이패드보다는 전자책 뷰어에 가깝다. 나쁜 외모는 아니지만 훌륭하지는 않았다. 아이패드 역시 당시 기술의 한계로 베젤이 두꺼웠으나, 물방울 디자인과 전·후면 투톤 설계를 통해 꺼져있을 때는 그럭저럭 모양이 나던 것과 달리 단점을 너무 극명하게 드러냈다.

당시 갤럭시탭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아이패드의 비율(4:3)과 다른 16:10 혹은 16:9 비율을 들고나왔었는데, 이유는 이것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비율이었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이자 당시로서는 훌륭한 앱 마켓이 아니었던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폰용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꽉 찬 영상을 볼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는 화면 비율이지만 세로로 들면 어색한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모델이지만 태블릿임에도 전화 기능이 있었다. 화면은 무려 AMOLED를 사용했다. 그걸 갤럭시탭 7.7을 산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이후 삼성은 갤럭시탭 S 시점에 이르러서야 죽어가는 자녀를 살려내고 전천후 뽀로로 머신이 탄생하게 된다.

 

모토로라 Xoom

안드로이드가 아이패드에 대응하기 위해 최초로 내놓은 OS 안드로이드 3.0 허니콤의 레퍼런스 모델이다. 최초로 물리 버튼을 모두 없애버린 제품이다. 그리고 줌도 함께 사라졌다.

PC의 강점 요소를 태블릿에 무리스럽지 않게 적용한 제품으로, 허니콤의 특징인 위젯과 바탕화면 등 2019년에 이르러서야 아이패드가 도입한 UI 요소들이 이미 도입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 크게 역시 10.1인치로 아이패드보다 빠르게 10인치를 돌파했다.

문제는 허니콤 출시부터 안드로이드 태블릿 전용 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당시 스마트폰은 다른 안드로이드인 진저브레드를 사용했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 앱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후 등장한 모든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같은 문제를 겪는다.

 

HP 터치패드

사용성 면에서 역대 최고의 태블릿 OS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터치패드의 webOS를 들 수 있다.

webOS는 PDA시절 날아다니던 팜(Palm)이 윈도우CE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OS다. 개발 책임자는 iOS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애플 출신의 존 루빈스타인이었다. 다만 webOS의 시장 진입이 늦는 바람에 HP에 인수된다. HP는 모바일용 OS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webOS 인수 후 자사의 대부분 제품에 탑재하려 했다. 터치패드는 그 흐름의 하나로 출시됐던 것이다.

webOS는 버튼 없이, 심지어 소프트키 없이도 조작할 수 있는 OS다. 화면을 쓸어올려 멀티태스킹 창을 활성화시키고, 화면 안에서 앱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iOS가 아이폰X 출시 시점에서야 도입한 인터페이스에 해당한다. 단순 아이콘이 아닌 카드 형태의 인터페이스를 도입했고 이것은 안드로이드의 카드 뷰에 영향을 줬다. 터치 감도 역시 뛰어나다.

그러나 여전히 앱은 없었다. 결국 HP는 터치패드를 폭탄 세일로 마감하며 태블릿 시장에서 철수했고 마지막 불꽃을 틔웠다.

webOS는 이후 LG전자에게 인수돼 사상 최고의 TV OS가 된다.

 

넥서스 7/넥서스 10

구글을 무조건 나쁜 기업으로 볼 수는 없지만 태블릿 시장에서 구글은 나쁜 기업이 맞다. 경쟁사들이 자사 OS를 사용해 보릿고개를 건너는 동안 천천히 구경하다 플래그십 제품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잘 만들었다.

넥서스 7은 안드로이드 태블릿 눈물고개였던 2011~2012년 이후 등장한 제품이다. 그리고 또한, 저렴했다. 199달러로 누구나 구매할 수 있었다. 설계는 구글이, 제작은 에이수스가 담당했다.

사악한 기업 구글은 다른 제조사가 허니콤과 진저브레드의 이원화로 망해가고 있는 것을 보고 4.0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서 두 OS를 통합했으며, 4.1 젤리빈에 이르러 넥서스 7을 내놓았다. 젤리빈은 거의 최초로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안드로이드 OS다. 프로젝트 버터가 처음으로 도입된 OS로, CPU와 GPU를 공동 사용해, 화면을 쓸어넘길 때 아이패드에 비해 버벅거리던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다. 이 좋은 걸 자사 태블릿에 먼저 적용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테그라 3 칩셋이 적용된 덕분에 2세대 제품은 현재도 여러 차량의 내비게이션 겸 대시보드로 활약 중이다.

넥서스 10과 더불어 너무 낮은 가격으로 등장해 다른 제조사의 태블릿 개발 독려는커녕 태블릿 제조에 손을 떼게 된 계기가 된다. 이후 넥서스 역시 9, 픽셀 C, 픽셀 슬레이트 등으로 변화하다 결국 더 이상 태블릿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선언에까지 이른다. 이제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살려낼 방법은 단 하나다. 태블릿이 아닌 폴더블이다.

별개로 스마트폰 제품인 넥서스 5 등과 함께 퓨어 안드로이드의 매력을 널리 전파한 제품에 해당한다.

 

서피스 RT

윈도우는 훌륭한 OS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윈도우 모바일 OS는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서피스 RT의 OS는 윈도우 RT로, 사실상 윈도폰 OS에서 파생된 태블릿 OS다. 그런데 윈도폰 7과 윈도폰 8, 윈도우 RT의 빌드가 모두 다르다. 한마디로, 세 OS는 모두 호환되지 않는다.

윈도폰과 서피스 RT가 남긴 유산은 유려하다. GUI와 아이콘으로 세상을 평정한 윈도우가 모바일에서 선택한 건 타일 UI였다. 윈도우는 이것을 메트로 UI 혹은 스타일 UI로 불렀다. 아이콘 대신 각 정보를 포함한 타일이 움직이는, 카드 뷰 이전의 플랫 디자인이었고 이것이 모바일 플랫 디자인의 시초가 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너무 극적인 변화였고 사람들이 윈도우에서 바라는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각 타일은 정보를 담고 있고 심심하지 않게 움직이는데 이것이 사용자들에겐 너무 어려운 UI였다

서피스 프로는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제품이었으나, 서피스 RT는 별도의 앱을 사용해야 했으므로 앱이 없었다. MS 오피스 머신으로 여겨지던 서피스 RT는 학생할인을 통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졌을 줄 알았으나 서피스 3까지 나왔고 서피스 3는 출고 버전에 따라 윈도우 10을 탑재하게 된다.

서피스 RT의 유산은 윈도우 10에도 남아있다. 태블릿 모드다. 그러나 태블릿 모드는 양치질 후의 귤만큼 쓸모가 없다. 이후 MS는 ARM 서피스를 잠정 포기했다가 몇 년 뒤 서피스 프로 X라는 걸작을 내놓게 된다.

 

한 줄 요약: OS를 잘 만들자. 개발사를 돈 벌게 해주자.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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