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과의 갈등에서 나타난 오라클 현실

지난 주 IT업계에 신한은행과 오라클의 갈등 소식이 화제가 됐었다. 오라클이 신한은행이 DB 라이선스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며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소식이었다. 이 때문에 오라클이 신한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IT기업이 고객과 라이선스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SAP가 한국전력 등과 라이선스 분쟁을 벌였고, 마이크로소프트도 국방부와 문제가 있었다. 오라클 역시 크고 작은 분쟁을 겪어왔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사용량에 대해 벤더와 고객사 간 입장차이가 있는 것이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신한은행과 오라클의 갈등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DB 시장에서 영향력이 조금씩 축소되고 있는 오라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번 갈등은 신한은행이 오라클 DB의 ULA(Unlimited License Agreement)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오라클의 ULA란 무제한 라이선스를 의미한다. 정해진 기간동안 오라클 제품의 무제한 사용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오라클 ULA는 일반적으로 3년 계약을 맺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연장하거나 현재 사용하는 오라클 DB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그 수에 맞게 계약을 진행한다. 신행은행의 경우 이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계약은 많은 장점이 있다. ULA 계약을 맺은 이후 오라클 DB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늘어나도 추가로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될 기업의 경우 유용하다. 또 글로벌 소프트웨어의 경우 서버의 프로세서 성능에 따라 다양한 가격체계가 있는데, 이런 복잡한 것들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비용절감, 편의성, 단순성 등 혜택이 있어 많은 기업들이 ULA를 이용했다.

그러나 위험성도 있다. 기업의 IT 시스템이 특정 벤더의 기술에 락인 (Lock-In) 된다는 점은 언제나 리스크 요인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DB와 같은 핵심 소프트웨어는 쉽게 교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락인 효과는 더욱 크다.

주목할 점은 신한은행이 오라클 DB ULA 계약을 종료했다는 그 자체다. 앞에서 언급했듯 ULA 계약은 점점 더 많이 사용할 경우 유용하다. 그러나 점차 오라클 DB 사용이 줄어들 경우 불리한 계약이다. 즉 신한은행은 앞으로 시스템이 늘어나도 오라클 DB 사용량을 줄일 계획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신한은행뿐 아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오라클 ULA 계약을 종료했다. 금융권은 오라클 DB를 애호하는 가장 큰 시장인데, 은행들이 오라클 DB를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왜 오라클 DB 사용량을 줄일 계획인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클라우드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DB도 클라우드 상에서 이용하는 추세가 빨라지고 있다. AWS에 따르면, DB 서비스인 ‘오로라’가 AWS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제품이라고 한다. 오라클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아직은 후발주자다. 오라클이 DB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클라우드에서 더 많은 영향력이 필요할 듯 보인다.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MSA)’와 같은 새로운 구조도 오라클 DB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다. 과거에는 거대하게 시스템을 만들고 오라클 DB를 기반으로 구동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이크로 서비스라 불리는 작은 단위의 모듈을 만들고, 이를 레고블록처럼 조합해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한다. 마이크로 서비스들은 각각 DB와 연결돼 있다. 그 DB는 오라클 DB나 MySQL과 같은 관계형 DB가 될 수도 있고, NoSQL이나 하둡과 같은 빅데이터 저장소일 수도 있다.

마이크로 서비스와 같은 작은 모듈 중심으로 시스템이 구성되면, 오라클 DB처럼 비싸고 성능좋으며 안정적인 DB의 활용도는 낮아진다. 과거 모놀리틱(하나의 통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웬만한 시스템은 다 오라클 DB 로 깔았는데,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 시대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물론 오라클도 이와 같은 시대 변화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라클의 제품 라인업도 달라지고, 비즈니스 전략도 바뀌어 가고 있다. 영구적인 ULA(PULA)와 같은 라이선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라클이 아무리 선방한다고 해도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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