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느 물류센터를 가더라도 널려 있는 ‘파렛트’를 보았나.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파렛트의 역할은 실제로도 별 것 없다. 파렛트에는 지게차의 포크와 연결할 수 있는 구멍이 네 방향으로 나 있다. 지게차가 이 구멍에 포크를 꽂고 물건을 싣고 나른다. 끝이다.

바닥에 놓인 파렛트를 보면 측면에 큰 구멍이 두 개 있는 게 보인다. 지게차 포크가 들어가는 곳이다. 사진은 국내 모 대형유통업체의 물류센터 내부.

하지만 별 것 없어 보이는 이 기능이 물류 효율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생각해보자. 차량에 실린 30개의 박스를 일일이 나르는 것과 30개의 박스가 올려진 파렛트 하나를 지게차로 한 번 퍼 나르는 것의 시간 차이를.

물론 물류센터에 파렛트 하나만 놔서는, 혹은 한 업체만 여러 파렛트를 구비해 놔서는 큰 의미가 없다. 물류는 혼자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와 물류업체, 유통업체 등 가치사슬이 연결돼 완결된 물류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파렛트 또한 원자재 조달부터 제조, 유통, 소비자 전달까지 하나의 파렛트로 전달할 수 있는 ‘표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창고업체가 신나서 파렛트를 도입했다고 하자. 근데 공급업체에서 해당 물류센터로 입고되는 화물들은 파렛트가 아니라 박스 단위로 온다고 하자. 지게차로 퍼 올릴 수가 없다. 까대기로 쳐야 한다. 아무 의미가 없다.

또 다른 예로 창고업체가 신나서 파렛트에 올린 상품을 차량에 태워 협력 물류업체 터미널에 전달했다고 하자. 그런데 물류업체 터미널에는 지게차가 없다고 하자. 파렛트에 실린 상품을 한 번에 퍼 나를 수 없다. 여기서도 까대기로 쳐야 한다. 아무 의미가 없다.

한 대형 물류센터에 들어선 파렛트와 지게차. 파렛트 도입과 지게차 도입은 한 세트다. 애초에 파렛트는 지게차로 많은 박스를 한 번에 떠올리기 위한 기기다. 뭐 하나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진다.

파렛트 규격 통일 또한 이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금에 와서 가로, 세로 1100mm짜리 파렛트가 일반적이지만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표준화가 중요한데 업체 입장에서 그걸 돈 들여 하기엔 부담스럽다. 파렛트는 물류 목적으로 설계된 장비인 만큼 이동한다. 어디론가 이동한 파렛트를 다시 회수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지만 비용도 만만찮다. 더군다나 혼자서 파렛트를 이용해서는 의미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 협력업체와 함께 도입해야 하는데, 누가 그 파렛트를 사줄 것이란 말인가.

쿠팡에서 판매하고 있는 파렛트. 파렛트는 개당 4~6만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비즈니스 모델이 ‘파렛트풀’이다. 통일된 파렛트를 전국에 흩뿌리고 파렛트를 사용할 니즈가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양만큼 뿌려진 파렛트를 회수해서 공급하고 돈을 받는 모델이다. 업체는 필요한 만큼 파렛트를 빌려 쓰면 된다. 회수와 표준화에 대한 걱정은 아웃소싱 업체에 맡기면 된다.

로지스올이 이 영역에서 성장한 한국 기업이다. 로지스올은 지난 40여년간 1600여만개의 플라스틱 파렛트를 흩뿌렸다. 1~2조원 이상의 누적 투자를 해서 달성한 성과다. 이렇게 뿌려둔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내 16만여 업체에 제공하는 풀링 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 기준 로지스올은 그룹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징둥물류, 한국 업체 협력… 파렛트풀 시작한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의 물류자회사 징둥물류(JD Logistics)가 ‘파렛트풀’ 영역을 탐내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오픈 플랫폼 JD클라우드박스(JD Cloud Box)를 론칭했다. JD클라우드박스는 중국 전역의 파렛트를 표준화하고 ULS(Unit Load System) 구축을 추구한다. 어려운 말이니 쉽게 풀자면 한국의 로지스올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중국에서 하겠다는 거다.

징둥물류는 파렛트풀 비즈니스를 위해서 두 업체와 제휴를 했다. 하나는 유럽파렛트협회가 운영하는 이팔(EPAL)이다. 목재 파렛트풀 시스템에서는 글로벌 1위 업체라 평가 받는다. 또 다른 제휴업체가 한국의 로지스올이다. 플라스틱 파렛트풀 시스템에서는 마찬가지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은 업체다. 징둥물류는 지난해 두 업체와 MOU를 통해 양사의 파렛트풀 시스템 운영 노하우를 JD클라우드박스에 이전해 나갈 계획이다.

로지스올은 지난해 12월 31일 징둥물류와 중국 사업 확대 교두보 마련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제 한국의 파렛트가 중국 전역 91%의 당일/익일 배송망을 갖췄다고 하는 징둥물류 네트워크로 유입된다. 사진은 지지에(吉芥) 징둥물류 부총재(왼쪽)와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오른쪽).

로지스올은 이번 MOU를 통해 징둥물류 네트워크에 파렛트를 공급할 계획이다. 그냥 파렛트는 아니고 RRPP(Recycled, Re-usable Plastic Pallet)라고 불리는 아이다. RFID 칩이 들어가 있어 위치 추적이 된다.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과는 달리 흩뿌려 놓으면 대륙 어디로 퍼져버릴지 모르는 중국의 환경을 고려했다는 로지스올측 설명이다.

중국의 파렛트풀 확산을 위한 선결과제는 한국에서 로지스올이 헤쳐나간 과정과 같다. 파렛트풀 비즈니스를 정착시키려면 우선적으로 파렛트를 이용해서 물건을 상하역하고 수송하는 체계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파렛트’가 깔려야 한다. 중국 1~2선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까지 연결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된다. 파렛트뿐만 아니라 파렛트를 싣고 나르는 지게차가 함께 현장에 투입돼야 한다.

표준화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일본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파렛트가 동시에 쓰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1100×1100 사이즈의 파렛트와 유럽에서 많이 쓰이는 1200×800, 1200×1000, 1000×1200 사이즈의 파렛트가 함께 굴러다닌다.

로지스올 관계자는 “중국도 그 사이 지게차 보급이 많이 돼서 파렛트를 사용할 수 있는 기반 환경은 만들어졌다고 판단했다. 인건비 인상으로 인해 자동화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며 “여기에 중국 국가 차원의 ULS(Unit Load System) 도입과 물류 표준화 니즈와 맞물려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로지스올이 얻는 것

사실 로지스올이 과거 중국 사업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중국 사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 않았다. 어차피 잘 안될 거라면, 잘 할 것 같은 중국의 업체에 노하우를 공유하고 로지스올의 파렛트를 공급을 하든, 판매를 하든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이라 판단했다. 이번 MOU를 체결하게 된 배경이다.

징둥물류가 MOU를 통해 로지스올에 제공하는 몇 가지 이익이 더 있다. 로지스올은 징둥물류 네트워크에 재활용 포장재를 공급하는 방식의 협업도 추진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재활용 가능한 ‘포장’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지금껏 1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택배 박스를 수거해서 재활용한다면 비용 절감과 친환경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징둥은 우선 ‘농산물’과 ‘가전제품’ 카테고리를 대상으로 재사용 가능 포장재를 도입한다. 예컨대 농산물을 산지에서 수거할 때 재사용 포장재로 담아서 자사 물류센터로 입고 받고, 그 포장재 채로 유통망이나 소비자까지 전달하는 개념이다. 그렇게 전달된 박스는 징둥물류 택배사원이 수거한다. 징둥물류는 한국 택배업체들과 달리 배송직원을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회수가 용이하다는 평가다.

양사는 우선 중국 네이멍구(내몽골) 자치지역을 대상으로 빠르면 올해 3월 회수 가능한 포장재의 시범 사업을 한다는 계획이다. 이 곳에 로지스올이 회수가 가능한 포장재를 공급한다. 전자제품의 경우 별도로 회수 가능한 포장재를 개발하여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CJ ENM 오쇼핑부문은 지난해 11월 환경부와 손잡고 유통 포장재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포장재 재사용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밝혔다. 이 포장재의 회수, 재새척, 오쇼핑 물류센터 전달 업무를 ‘로지스올’이 맡는다. 이 노하우가 중국에도 도입될 수 있다는 로지스올측 설명이다.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은 “중국은 지리적 특성을 감안한 물류기기 회수 관리가 중요하다”며 “로지스올이 장기간 축적해온 사업 역량과 IoT 기반의 스마트 물류 시스템 적용을 통해 중국 시장에 적합한 ULS 풀링 솔루션을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지에 징둥물류 부총재는 “중국 시장 내 물류 표준화율 제고를 위해, 향후 로지스올과 협력을 기반으로 현장에 파렛트 및 용기 적용을 확대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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